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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Nov 10. 2023

     일상을 회복시키다

   "조직 좀 떼어내겠습니다." 위내시경 검사 중에 의사의 말이 들렸다. 검사를 끝내고 창구로 가자 직원이 위 벽에 울퉁불퉁한 게 보여 떼 내 조직검사 들어가니 일주일 뒤에 결과를 보러 오라고 했다. 나는 투명 칸막이에 머리를 바짝 대며 그게 안 좋아 보이냐고 물었다. 그녀 그건 의사가 알려줄 테니 그때 와서 들으란다. 그녀가 내  눈을 피하며 대답한 거 같아 찜찜한 기분으로 위층에 올라가 유방 촬영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한쪽 가슴을 잡아당겨 판 위에 올려놓고 호떡 누르듯이 이리저리 아프게 눌러 사진을 여러 차례 찍었다. 촬영을 끝내고 윗옷을 입으며 말했다. 병원에 오는 게 무섭다고. 그러자 그녀도 마찬가지란다. 자기도 병원에 근무하지만 직원 검진받을  때마다 두렵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얼른 위로받으며 나왔다.


 혈액 검사등 남은 검사를 끝내고 가정의학과 의사와 하는 상담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또 추해지고 있었다. 의사의 여러 질문에 대답을 끝내고 물었다. 위 조직검사를 한다는데 그러면 대부분 암이냐고. 그녀는 그렇진 않다고,  일주일 뒤에 와서 담당 의사의 얘기를 들으라고 했다. 나는  밖으로 나와 건조한 병원 복도를 오갔다. 듣기 원하던 그렇진 않다는 말을 잡고서. 그러나 그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기울며  불안해졌다.

   

꿈이 불길하더라니. 아침에 검진받으러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같이 걸으며 남편이 새벽꿈에 처갓집 식구들이 다 보이더라고 말했을 때 돌아가신 오빠가 누군가의 묘지 앞에서  나와 둘이 연도를 하던, 그날 같은 새벽에 꾼 내 꿈 얘기는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려고 이리도 불길한가.


울퉁불퉁하다는 말이 자꾸 따라다녔다. 오래전에 가입해 둔 암 보험 진단비와 치료비 보상 한도가 얼마나 되더라 궁금했으나 증권을 꺼내보진 않았다. 십여 년 전, 작은 아이가 대학에 입학해 스무 살이 됐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안도했었다. 두 아이 다 성인이 됐으니 혹여 내가 지금 세상을 뜨게 되더라도 아이들은 어미 없는 세상을 잘 헤쳐나갈 거라고,  이젠 됐다고. 지금 두 아이는 서른을 훌쩍 넘어 제 앞가림들 하며 살고 있으니 내 생의 미련은 접어도 되리라.   

 

그러나 정말 이상 없다는 확신의 말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했다. 매달리지 않고 나를 잡아줄 말을.. 드디어 찾아냈다. 나의 표정을 자꾸 살피는 남편에게, 언젠가 단골로 다니던 한의원 의사가 앞으로 내 건강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던 얘기를 스치듯 전하며 나도 안심시켰다. '젊은 이들이 지금 네 마음을 보면 웃겠다, 품위 좀 지켜라.' 허둥대는 자신에게 몰래 채근하기도 했다.  

   

건강검진은 깊은 가을에 받 게 못된다. 베란다 너머로 휘돌아 부는 바람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뭇잎과, 이미 떨어져 바람과 함께 휘돌며 딸려가는 낙엽의 풍광을 내려다보다가 거실로 들어오며 나 세상 떠나는 날은 벚꽃 비 날리는 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 한 번 깜빡하니 백 년이더라는 빠른 세월에 일주일은 왜 이리 더디 가는가.

    

심란한 날들을 보내고 결과를 보러 병원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운전하는 남편도 옆에 앉은 나도 말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트롯이 나오자 그가 볼륨을 조금 높였다.

  

 예전 그 한의사의 예견이 옳았다. 노트북 화면을 내게로 돌려 위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의사는 별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같이 들어간 남편이 감사하다고 그녀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병원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가 우산을 씌워주며 말했다. 자기도 걱정 많이 했다고,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고. 우리는 차를 타고 농장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그에게, 그동안 미뤄오던 연명치료거부 신청을 해놓자고 말했다.

   

농장에 도착해 일상 시작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아직도 붉어가느라 애쓰는 고추를 따고 내일 매장엔 뭐를 낼까 생각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찬바람에 서걱대는 호박넝쿨 아래에서 간신히 크기를 키워가는 조롱호박이 보였다.

   그때 옆 농장 김여사 내외가 들어왔다. 오늘은 밭에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고 물으며. 우리는 농막으로 들어가 탁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남편이 이 사람 검진결과 보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 주간  맘고생 좀 했다고 말했다. 괜찮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그들이 손뼉 치며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다 익어 뽑아놓은 쥐눈이 콩대를 어떻게 해야 콩이 잘 빠질까 물었고, 바닥에 비닐을 넓게 깔고 위에 돌을 놓아 거기에 콩대를 들고 마구 면 잘 빠져나온다는 대답을 그들이 했다. 나는 돌에 쳐대는 대 주머니 안에서 쥐눈만큼 작고 쥐눈처럼 까만  콩들이 튀어나와 이리저리 또르르 굴러다니는 상상을 하며 쥐눈이 콩처럼 또르르 웃었다.       


만추의 해는 짧아 저녁을 먹고 나니 밖이 깜깜했다. 나는 플래시를 들고 남편은 호미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내일 매장에 낼 도라지를 캐기 위해서.  도라지 뿌리를 다치지 않게 캐려면 그는 아래로 조심조심 파 들어가야 하고 나는 그 지점을 잘 비춰줘야 한다. 어려서부터 주위 산만한 내가 어느 순간 거기에 집중 안 하고 지점을 비껴서 비추고 있었나 보다.  남편이 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 "거좀 잘좀 비춰봐라, 지금 어딜 비추고 있어!" 나는 플래시의 방향을 확 틀어 그의 등을 향해 쏘곤 상하좌우로 흔들어대며 냅다 소리쳤다. "하이고 참, 또시작이네 또시작이여!"

  

 이로써 우리 만 하루도 안 일상을 완전히 회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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