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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la Oct 31. 2023

"거리"의 엄밀한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

2021.Dec. 해군사관학교 NA view 기고글

올해 9월 15일 도산 안창호함에서 발사에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그리고 10월 21일에는 목표 궤도에 안착은 하지 못했지만 목표 고도까지의 발사에는 성공한 누리호 등으로 현재 대한민국은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다. 이런 장거리 미사일의 성공은 궤적 계산에 달려 있으며, 여기에 더해 시작 위치와 목표 위치까지의 정확한 거리 정보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이 멋진 로켓들은 그저 작은 반짝임과 함께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거리, 즉 길이는 어떻게 정의되고 사용되고 있을까? 이를 위하여 모두에게 의미가 있으면서 불변해야 할 거리 단위 “1”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단위에 대한 약속은 각 나라별로 다양한 기준으로 존재했다. 그중 미국 단위계에서 쓰이는 피트(feet, ft)가 있다. 말 그대로 발 하나의 길이를 의미하며, 정확한 자가 보급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내 몸에 붙어있는 유용한 단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1피트는 미묘하게 값이 달라 물품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시기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1피트는 30.48센티미터로 정해져 있으며, 미국에서 기반된 산업인 디스플레이와 전함 함포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피트 및 인치(1/12피트)로 표기된다. 다른 단위로는 국제 단위계로 정해져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미터법의 미터(meter, m)가 있다.      


치수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메트론에서 유래된 이름인 미터는 1790년 프랑스에서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지구 표면 길이의 10,000,000분의 1”로 정의되었다.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길이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바다 위의 길이 역시 재어야만 했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의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육지에서 잴 수 있는 최대한의 길이를 재어 그 값을 전체 길이로 비례하여 측정하기로 한다. 육지에서의 길이를 재기 위해 1792년 프랑스의 들랑브르와 메솅이 이끄는 두 팀은 삼각측량을 이용하여 됭케르크에서 바르셀로나까지의 길이를 측정했다. 7년 후(!)인 1799년에 마침내 1미터의 표준 단위가 백금으로 만들어져 대중에게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이를 통해 자오선(북극-남극을 가로지르는 지구의 둘레)의 길이는 40,000,000m로 딱 떨어지게 정의되므로 1미터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길이의 정의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후에 위성기술을 이용하여 정밀하게 잰 지구 둘레의 길이는 정확히 40,000,000m가 아니었다. 실제 길이는 40,007,863m로서 기존 미터의 정의(자오선 길이의 40,000,000분의 1)를 따르게 된다면 1미터의 길이는 처음 길이보다 0.2mm(1000mm=1m)정도가 더 길어져 버리게 된다. 이런 차이로 1미터의 기준이 두 가지가 된다면 정밀한 측정 혹은 큰 단위 거리의 계산에서는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미사일의 최고 고도를 200,000m로 생각하는 경우 두 번째 미터의 정의를 따르면 기존 길이보다 40m(이 단위는 첫 번째 미터의 단위로 보았을 때의 meter)가 더 높아지게 된다. 만약 미사일 발사각까지 고려한다면 여러 문제가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미사일의 발사각이 10도이며 최고 고도가 200,000m의 경우 탄두의 도착 위치(최고 고도/tangent(발사각))는 대략 200m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사용되고 있는 미터 단위는 그대로 유지하되 정의를 바꾸어 엄밀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1960년에 1미터의 정의는 “진공에서 크립톤-86 원자가 고에너지에서 저에너지 상태로 변화할 때 발생하는 복사 파장 주기 길이의 1,650,763.73배”로 바뀌었다. 하지만 엄밀한 1미터를 정의하는 문제는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립톤 원자는 온도 변화에 따라 해당 범위 파장의 길이가 1,000,000분의 1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단위가 변경되는 것을 막고자 1983년에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거리”로 1미터를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터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워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고 있는 길이의 단위 속에 그 엄밀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역사가 있었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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