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태양(5학년 5반)
#01.
신규 시절 갑작스럽게 1학년 보충수업을 들어간 적이 있다.
신규 때이지만 내가 맡은 5학년 5반은 꽤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 반이었다.
허리를 펴고 앉는 것, 책상 위에 불필요한 것을 올려두지 않는 것, 다음 시간 교과서를 미리 펼쳐두는 것,
종이 울리면 바로 자리로 돌아가 수업을 준비하는 것
모든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었다.
1학년에 한 시간 들어가라고 했을 때, 저학년은 처음이라 귀엽고 작은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문을 열면 아이들이 사슴 같은 눈으로 “안녕하세요!" 하겠지?
1학년 교실에 가까워지니 괴성을 지르며 성난 타조의 모습으로 복도를 뛰어가는 아이들이 몇 명 보였다.
교실에 도착하니 앞뒷문과 창문이 모두 열려있고, 잡기 놀이를 하며 교실을 빙글빙글 도는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는 티슈곽에서 휴지를 계속 뽑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카프라 놀이기구를 칠판에 하나씩 던지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바닥에 터진 우유가 가방에 튀었다며 울고 있고, 한 명은 나를 보자마자 무언가를 이르러 나오고, 한 명은 본인이 만든 점토를 들고 나와 무엇을 만든 건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 명이 정원인지, 몇 명이 교실에 있고 몇 명이 복도로 뛰어나갔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하는 내 목소리는 시장에서 개 짖는 소리보다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40분 동안 인간이 늙을 수 있는 만큼 가장 많이 늙었다.
이제 3교시는 우리 반으로 가야 하는데 쉬는 시간에도 교사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다음 선생님을 기다렸다.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학교가 커서인지 다음 보결 선생님이 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인수인계를 간략하게 하고 우리 반에 올라가도 7분은 늦을 것 같았다. 슬슬 우리 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10분, 지나버린 수업시간 7분, 합이 17분 동안 교실에 교사 없이 아이들끼리 있는 것이다. 우리 반 교실은 또 얼마나 난리가 나있을까.
복도를 지나니 다른 반은 모두 수업 중. 다행히 복도에 나와있는 아이는 없다. 제발 평범한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문을 여니 28명의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펼쳐놓고, 우리가 약속한 목소리크기 1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웃기지만 나는 그때 울컥해서 살짝 눈물이 나왔다.
신규 때나 있을법한 감정이지만 그때는 1학년에서 생각지 못한 상황에 크게 당황한 것, 수습하니라 마음 졸이며 애쓴 것, 좋은 수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우리 반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이 이렇게 그림같이 있어주다니.. 신규 마음에 어찌나 고맙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선생님 운다!"
아이들이 이런 걸 절대 놓칠 리 없다.
나는 말했다.
"얘들아, 인간이 4년 만에 1학년에서 5학년으로 크는 것은 기적이다."
#02.
신규 때 만난 5학년 5반은 다가올 내 10년을 바꿔놓은 반이다.
그때는 학급이름을 안 정할 때였는데 돌아간다면 5(오)렌지 태양이라고 지어주고 싶다. 5를 고쳐서 태양 모양으로 대충 만들고 5렌지 5(태)양이라고 우기면 된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오렌지 태양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난 영원히 널 이곳에서 만나!
할 만큼 내 마음속에는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한 시간이다.
그 때는 이 시간이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줄 잘 몰랐다.
아이들은 자란다. 돌이켜보면, 덕분에 나도 많이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