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하고, 그 반대는 그로 인한 부정적인 멘트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어차피 정답이 없다는 것은 양쪽 모두 안다. 의미 없는 소모전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그냥 각자 떠들기 좋아해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성격이라는 것을 논쟁의 당사자들은 격하게 공감하고 있다. 망각이라는 것을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입하면 논쟁은 더 분리되고 심화될 것이다. 너무도 많은 각자의 사연들이 쏟아져 나올 테니...
그렇다면 떠들지 말고 각자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자.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망각하는 편인가. 그 반대의 편인가. 아니면 망각하고 싶은 편인가. 간직하고 싶은 편인가.
어떤 물음에도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는 입장이라면 이번에도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라는 식의 소프트하면서도 뭉글뭉글한 대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망각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조그만 억지를 부리자면 내 생각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망각하고 있다고 본다.
생물학자나 심리학자가 아니기에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한 사례들과 경험들과 나의 작은 바람이 그렇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은 잊혀야 하는 감정이고 언제 가는, 어떤 순간에는 묻어야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망각한다는 것을 변해버린다는 것과 좀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해!’라고 따지듯 묻는 섬세한 사람들의 외침을 이해한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은 마치 파릇한 식물이 시들듯이 힘이 없어지고 쭈글쭈글해지며 수명을 다하는 것과 같은 비유에서 사랑만큼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매우 바르고 정직한 생각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망각이라는 것은 그 뜻과는 좀 다른 비유를 들고 싶다. 대상에 대한 사랑의 성질이 변한다기보다, 이 사랑에서 저 사랑으로 옮겨 갔다기보다 마치 남해안 땅끝 어느 해수욕장의 수많은 조약돌이 모난 곳 하나 없이 반들반들 해진 것처럼 깎아지고, 때론 깨지기도 하면서 처음의 뾰족하고 단단했던 사랑이 닦여지고 무뎌지며 차곡차곡 내 감정의 한 부분에 쌓이는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 ‘(푸핫!) 그게 그거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고, 변하는 사랑을 좋게 포장하려고 애쓴다고 측은하게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답이 없는 논쟁이고, 떠들기 좋아하는 당사자가 곧 ‘나(글 쓰는 사람)’라는 전제하에 읽는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는 면죄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사랑은 망각되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