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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9. 2024

겨울 밤의 노래

몇 해전 겨울이었고, 대학 동창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이었다. K와 나는 새벽에 자동차에 들어가 좌석을 뒤로 눕히고 잠시 누워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삼삼오오 하얀 담배연기를 내뿜는, 차갑고도 짙은 검정의 겨울밤이었다.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 밤에는 자동차에서 함부로 틀어놓은 노래만이 세상에 흘러 다녔다.


노래는 90년대의 유명한 발라드곡이었고, 노래를 우리를 타임머신처럼 1990년대 어느 날로 돌아가게 한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그런데 그 날의 노래는 나에게는 이상한 체험이었다. 예전처럼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다시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노래의 간절함이 나의 피곤한 마디마디에 번졌다. 어쩌면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간접적인 형식으로도 외로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노래가 끝나갈 무렵에 반복버튼을 누르면서 K에게 말했다. 한 번 더 들을까, 라고.


  그러자 K는 뒤척이며 나에게 말했다.

  나쁜 놈, 이라고.


  어이없어 하는 나에게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슬픈 노래를 한 번 더 듣는다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야.


  그 때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던가, 아님 입을 삐죽 내밀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수척한 두 사람의 새벽에는, 대신에, 노래만 있었다.


“나는 노래가 삶을 지배한다고 믿는 편이다. 군대 생활의 치욕과 억압과 불편을 잠시나마 견디게 해주는 것은 군가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는 일과 은혜를 받는 일을 동일시한다. 교사로서 교육 운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민중가요를 지독히도 편애했다. 80년대를 ‘현장’에서 보낸 이들이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노래가 나를 달구는 연탄불이었다.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는 대중가요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해서 북한 방송 듣듯이 혼자 듣던 가요가 있었다. 조용필의 "Q"다.” -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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