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괜찮아

흔들림을 붙잡지 않고, 조용히 두는 일에 대하여

by 수아했어오늘도

사람 때문에 흔들리는 일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일은 힘들어도 끝이 있었지만, 관계는 달랐다.

말 한 줄, 표정 하나, 사소한 뉘앙스가 하루의 온도를 아래로 꺾어버리곤 했다.


예전의 나는 그럴 때마다 괜찮은 척했다. 속은 금방이라도 요동칠 것 같은데도 겉으로는 잔잔한 물결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밤이 오면 마음의 바닥이 금세 드러났다.


침대에 누우면 초조가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켰고, 불안은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결론부터 떠올랐다.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을까, 상대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별것 아닌 일에 밤이 흐릿해지고, 마음은 점점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흔들리는 감정을 억지로 붙잡으려 할수록 그 파동은 더 거세진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의 나는 감정을 잡아두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조용히 두려고 한다.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밤 산책을 나선다.

차가운 공기 속을 걷다 보면, 내 안의 소란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한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강가에 비친 불빛들처럼 흐트러진 마음도 조금씩 잔잔해지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면 작은 조명을 켜고 책을 펼친다.

문장 사이로 손끝이 스며들 만큼 천천히 넘기다 보면, 글자들이 내 호흡을 맞춰주듯 다정하게 흘러오고, 어떤 문장은 혹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진득하게 마음에 머문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방 안의 공기까지 한 톤 낮아져 있고, 마음도 조금은 정돈되어 있다. 마치 긴 하루의 먼지를 문장 하나가 조용히 털어준 것처럼.


샤워하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밀려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따뜻한 물줄기 사이로 좋아하는 노래를 입 밖으로 흥얼거린다. 익숙한 멜로디가 날 선 마음을 둥글 거리게 만드는 순간이다.


가끔은 억지로라도 웃어본다.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그런 작은 동작.

우스워 보이지만, 그 사소함이 얼어붙은 마음의 근육을 풀어주고 생각의 무게중심을 천천히 옮긴다.


이제 나는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 한다.

하루를 통째로 내어줄 만큼, 마음의 파동에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찾아온 감정들을 나의 잘못처럼 붙들지 않고, 그저 그 파동이 잦아들 때까지 조용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


흔들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흔들림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흔들림을 품고도 하루를 조금 더 살아내려고, 조금이라도 더 웃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붙잡지 않고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려 노력 중이다.


마음의 물결은 여전히 온다. 하지만 그 파동도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그 말을 곱씹으며.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