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의 시간 위에서 사는가

일과 정체성을 다시 묻다

by 수아했어오늘도

사람은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그 긴 시간을 '나 아닌 상태'로 견뎌야 할 때 어느 순간 균열이 생긴다는 것을,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균열이 처음 일어났을 때조차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 분명 하루가 지나갔는데 정작 나는 그 하루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나를 데리고 사는 느낌보다는 정해진 흐름에 휩쓸려 그날의 나를 어딘가로 흘려보내는 기분이었다.


출근하면 직장인의 리듬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선임의 성격에 맞춰 목소리를 조정하고, 동료들의 기분에 따라 표정을 바꾸고, 때로는 진짜 감정을 미뤄두고 괜찮은 사람의 얼굴을 꺼내 들었다. 처음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누구나 겪는 일이라 믿었다. 문제는 그 사회적 나를 입고 벗는 일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것만 남고 나는 점점 흐려졌다는 것이다. 퇴근해 집에 와도 나는 여전히 그 얼굴을 쓰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도, 혼자 있어도, 적절한 반응을 본능처럼 골라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바깥의 박자에 너무 오래 몸을 맞추다 보면 사람은 자기 내부의 리듬을 잃는다는 것을. 일이 힘든 게 아니라, '나의 속'과 '세상의 속도'사이에 아주 조용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 틈은 처음엔 미세했지만 점점 내 하루 전체를 흐리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샌가 '적절한 말'을 먼저 고르고, '괜찮은 표정'을 먼저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내가 잃어버린 건 일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감지하는 감각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월급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시간을 내어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나도 그 구조를 받아들였고 문제없이 작동했다. 다만 내가 버거워했던 건 그 구조 안에서 '내 리듬'을 완전히 지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장에서의 하루는 늘 '해야 하는 일'로 가득했지만, 내 마음은 '하고 싶은 일'을 그리워했다. 누구도 내 시간을 가져간 적은 없지만 어쩐지 하루의 대부분을 잃은 것만 같았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선택한 일에는 집요하게 달라붙는 편이었다. 밤새 글을 쓰거나, 관심 있는 주제를 파고드는 일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다만 그게 '내 시간'일 때만 그랬다. 누군가 정해준 시간표 안에서는 똑같은 일도 전혀 다른 무게로 느껴졌다.


그 무렵부터였다. 내 안에서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다른 삶을 향한 열망이 자라기 시작한 것은. 남들이 말하는 '더 좋은 직업'을 꿈꾼 게 아니다. 그저 내 시간 위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설계하고, 내가 선택한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는 몰랐다. 다만 확실 한 건, 나는 '내가 쓴 문장으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 정해진 형식이 아닌 내 언어로 말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닿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는 것. 그 욕망이 어느 순간 두려움보다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무게가 퇴사를 결심하게 했다.


퇴사한 지 3주. 나는 오랜만에 '빈 시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엔 해방감이 있었지만 며칠 지나니 자유와 공허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회적인 나를 벗어던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너무나 어색한 내가 보였다. 친구를 만나도 말수가 줄었고, 가족과 대화할 때도 뭔가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 있을 때조차 '내가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제야 깨달았다. '사회적 나'란 모습이 전부 가짜는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도 나의 일부였고, 다만 그것만 남았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타인과 관계 맺는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 둘 다 진짜였다. 단지 나는 그 사이의 균형을 잃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내가 아니라,

'여러 겹의 나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법'인지도 모른다.


집에 오래 머물다 보면 문득 내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든다. 밖에 나가고 싶다가도 막상 나가려니 귀찮고, 사람이 보고 싶다가도 말수가 줄어든 나를 의식하게 된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것이다. 집에만 있는 것을 못 견뎌했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직성이 풀렸다. "뭐라도 해야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돼." 나를 다그쳤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흐려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흐림은 나태가 아니다. 변화가 자리를 잡기 전, 기존의 결이 잠시 흐려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그 흔들림을 억지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어떤 모양인지 조용히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노트북을 켜고 빈 문서를 열어 아무 목적 없이 문장들을 쏟아냈다. 매끄러운 글은 아니었지만 누가 초안부터 잘 쓰던가. 쉼 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다 문득,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감이 없어도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는 내 행위에서 내가 찾던 나 다움의 리듬을 찾은 듯했다. 이게 내가 찾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게 일이 될지, 돈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이 리듬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알았다. 나는 누군가의 시간표가 아닌 내 시간 위에서 살아가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직 다음 장면이 선명하진 않다. 하지만 이제 나는 어렴풋이 안다. 스스로에게서 멀어지지 않는 한, 이 고요한 시간도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