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일상 속에서의 만남
사람은 언제나 나를 가장 지치게 했다.
일은 정해진 만큼 해내면 끝이 났지만, 관계는 끝이 없었다. 누군가의 말은 공기처럼 흘러 다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잦아드는 듯하다가도 불쑥 떠올라 하루의 표정을 바꾸곤 했다. 점심 식사 후 자리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아까 그 이야기 들었어?"라고 묻는 순간부터 하루는 이미 기울었다. 나는 그 질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대답이 아니라 동의, 공감이 아니라 편.
특히 누군가의 편 가르기 앞에 서면 늘 곤란해졌다.
겉으로는 "네 생각은 어때?"라 묻지만, 실은 내 말에 동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부정하면 까칠해 보였고, 긍정하면 내 말은 또 다른 어딘가에서 왜곡되었다. 어느 쪽이든 결국 우스워지기 십상이었다.
관계는 참으로 쉽고도 어려웠다. 기분이 좋을 땐 한없이 가까워지지만, 조금의 틈만 생겨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금세 멀어진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침묵이 오해를 불러와 사이를 멀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그렇게 될 인연이라면 흐르는 물처럼 스쳐 지나가길 바란다. "일이 힘들어 못 버티는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어 못 버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실 나는 과거에 그러질 못했다.
누군가 감정적으로 밀어붙이면 나도 감정적으로 맞받아쳤고, 돌아와서 후회했다. 제 3자를 비난하는 말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다. 또 어떤 날엔 대 놓고 동조하진 않더라도 모르는 척, 못 들은 척 피해 갔다.
누군가 내 뒷말을 했다는 소문을 타인에게서 들었을 때, 확인도 없이 곧이곧대로 믿고 관계를 끊어버린 적도 있다.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보호해 준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를 잃는 방식이었다.
후회는 조용한 선생이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앉혀 둔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나는 그 질문 옆에 작은 답을 붙였다. "말은 칼이 아니라 방향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말의 길이와 질서를 바꾸기로 했다.
감정으로 밀려올 때는 긴 설명 대신 짧은 문장 하나를 꺼낸다.
"그럴 수도 있지."
"이건 나중에, 필요한 자리에서 다시."
이 말들은 회피가 아니라 멈춤이다. 멈춤은 도망이 아니라 숨을 돌려주는 통로였다. 멈춘 뒤에야 비로소, 내 말이 나를 대표한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한때 나는 '진실'은 크고 화려한 문장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진실은 짧고 정확한 자리에서 나온다.
확인하지 못한 추측은 두고, 확인 가능한 사실만 남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사람을 해석하기보다 상황을 묘사하고,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게 말의 무게를 줄이면, 마음의 무게도 줄어든다.
가벼운 관계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순간에도 나는 문장을 바꾸었다. 예전의 나는 자동으로 "괜찮아,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 그 문장은 곧 원망으로 번졌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내가 못할 것 같은데."
경계가 분명해질수록 고마움은 늦게라도 돌아온다. 거절은 끝이 아니라 지속을 위한 설계다.
저녁이면 나는 작은 의식을 반복한다.
하루 동안 마음에 걸린 문장을 한 줄 적는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문제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한 번의 호흡 사이로 탁한 말들이 가라앉고, 위쪽의 물이 맑아진다. 그 맑음 위에서 나는 내일의 한 줄을 연습한다.
"지금은 여기까지만." 이 문장이 나를 구한다.
감정이 올라올 때, 피곤이 말로 번질 때, 소문이 길을 찾을 때 이 짧은 한 줄이 길을 바꾼다.
물론, 나는 완벽하지 않다.
어느 날은 다시 오래된 습관으로 돌아간다. 불필요한 해석을 보태고, 안 해도 될 말을 한다. 그러면 다시 후회가 몰려든다. 그럴 때면 나는 예전처럼 나를 책망하지 않고, 말의 방향만 고쳐 잡는다. 다음번에는 이렇게 말하리라, 조용히 마음속에서 리허설한다.
일상에서 스쳐 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가볍고 따뜻한 예의를 남긴다. 웃으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와 같은 고마움을 표한다. 이 짧은 예측 가능성이 생각보다 오래 안전을 느끼게 한다. 깊은 위로는 아니어도, 발 앞의 한 걸음을 비추는 작은 불빛.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원래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고 한다. 조심은 움츠림이 아니라, 정확히 사랑하려는 태도이다.
누구의 편도 서지 않으면서 일을 흐리지 않는 법, 확인할 수 있을 때만 단정하는 법, 감정이 깊어질수록 문장을 짧게 고르는 법, 그 사이에 생긴 작은 여백이 오늘의 나를 지킨다.
우리는 내일도 수없이 스칠 것이다.
이름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 서로의 하루를 조금 덜 아프게 만드는 정도의 예의,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필요할 때, 말을 잠깐 내려놓자.
그 고요 속에서,
숨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비로소 나는 다시 나로 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