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우리를 인간답게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조금 빨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생리를 시작했고, 몸은 또래보다 먼저 자라났다. 어른이 된 지금 돌아보면 그저 성장의 한 과정이었을 뿐인데, 그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겨드랑이에 털이 나는 것이 그렇게 싫었고, 나만 유독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친구들이 아직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혼자 먼저 겪고 있다는 감각이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만들었다. 가슴이 발달하면서 입게 된 윗속옷은 보호 장치라기보다 표식처럼 느껴졌고, 남자아이들이 웃으며 끈을 잡아당기던 장면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신체의 변화 앞에서, 나는 나를 드러내는 법보다 숨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완벽하게 나를 사랑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버리지는 않았다. 불편함과 수치심,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안은 채로도 어떻게든 하루를 넘기고 다음 날을 살아냈다. 언젠가는 이 모든 감각들이 지나갈 것이고,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편안한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 믿음은 크지 않았지만, 내가 나를 데리고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충분했다.
자라면서 인간관계는 또 다른 결핍이 되었다.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이 나를 이간질했고, 어느 날 갑자기 관계의 바깥으로 밀려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원래 꿈꾸던 문과 대신 이과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선택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살아남기 위해 가장 덜 아픈 길을 택했던 것 같다. 그 선택 덕분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사실에는 감사하지만, 동시에 그 시절의 나는 공부보다 상황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기 전, 나는 늘 관계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크게 성공하지도, 특별히 반짝이지도 않았지만, 그 시간을 건너왔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낙방할 때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엄마의 소개로 핸드폰 매장에 들어갔고 2년 정도 일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스트레스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컸고, 결국 나는 도망치듯 그만뒀다. 미용을 배워볼까 고민하던 어느 날, 친구를 따라 간호학원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등록하게 되었다. 계획된 선택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저 다음 발을 디딜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간호조무사가 되었다. 14년이라는 시간을 그 이름으로 일해왔지만, 그 이름을 온전히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에 덧씌워진 사회적 시선과 무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나 자신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소개하는 순간마다 망설였다.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의료 쪽에서요”라거나 “병원에서 일해요”라고 둘러댔다. 간호조무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상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내가 평가받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먼저 나를 숨겼다. 숨기지는 않되, 당당해지지도 못한 채 어딘가에 걸쳐 있는 상태. 그것 또한 내가 오래도록 안고 온 결핍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나 자신에게 허락해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계속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배우고, 나의 언어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언제나 결핍의 연속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핍들은 나를 멈추게 하기보다는 조금씩 앞으로 밀어냈다. 남들보다 빨랐던 몸, 어긋났던 관계, 세 번의 낙방, 도망쳤던 직장, 우연히 시작한 직업, 그리고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 미래까지. 그것들은 모두 나를 완성하지 못한 흔적이 아니라,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든 이유였다.
나는 이제 결핍을 고쳐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결핍은 나를 부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나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왜 아팠는지, 무엇이 불편했는지, 나는 어떤 환경에서 숨이 막혔는지를 끊임없이 묻게 했다. 그 질문들은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었다. 결핍은 나에게 자기 인식의 통로였고, 그 통로를 지나며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의 윤곽을 그려나갔다. 완전하지 않았기에 멈추지 않았고, 부족했기에 삶을 더 오래 붙들 수 있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아무 결핍 없이 자랐다면, 나는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불완전함은 나를 흔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인간답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각, 인정받지 못한 재능, 놓쳐버린 기회 같은 것들. 그 결핍들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타인을 이해하게 하며, 삶의 무게를 감당하게 만든다. 결핍이야말로 우리를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질문하고 성찰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힘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나의 결핍을 완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밀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조심스럽게 안아보려 한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시간들이었으니까. 어쩌면 삶은 완성되는 방향이 아니라, 계속 보듬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고 있다. 그 과정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내가 참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