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목소리에 자리를 내어주다
나는 종종 말하기를 망설였다.
상대의 얼굴을 먼저 살피고,
그 말을 꺼냈을 때의 공기를 미리 상상하는 쪽이었달까.
사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침묵했던 게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쉽게 말하지 못했다.
어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되돌릴 수 없고,
또 어떤 말은 관계의 흐름을 바꿔버린다는 것을
나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으로 배워버린 뒤였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낯을 가리는 편이고, 사람들 앞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듣고 그에 맞춰 반응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무심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 감정을 꽤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감정을 말로 옮기는 데에는 늘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그 고민이 길어질수록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곤 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 내가 처음에 무엇을 느꼈는지조차
스스로 헷갈리거나 잊어버리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말보다는 글이 편했다.
글은 천천히 쓸 수 있었고,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꺼내놓을 수 있었다.
말은 터져 나오는 감정을 감당하기 벅차 간혹 나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글은 누군가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즉각적인 반응을 견디지 않아도 되었다. 고쳐 쓸 수 있었고, 멈출 수도 있었고, 필요하다면 끝내 내보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줄곧 말 대신 글을 택했고,
그 선택은 오래도록 나를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글은 나를 이해하게 해 주었지만,
관계 속의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혼자 있을 때는 분명하게 알고 있던 마음이,
누군가 앞에 서면 다시 흐려졌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정리해 온 감정들이 입술 근처에서 멈췄고, 결국 말 대신 침묵이 남았다. 글 속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던 내가, 관계 안에서는 자주 사라졌다.
이해와 표현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간극이 존재했다.
그 간극은 단순히 언어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 앞에 선 나와 혼자 있는 나 사이의 온도 차이에 가까웠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내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누군가의 시선이 닿는 순간 그 감정은 갑자기 설명되어야 할 무언가, 정당화되어야 할 이유가 되었다.
- 이 정도로 불편해해도 되는 걸까?
-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감정보다 먼저 입을 막았다.
말하기 이전에, 나는 내 감정에게 자격을 묻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도 않았고,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바로 묻기보다는 시간을 두는 쪽을 택했다.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조금만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직접 말하지 않는 대신,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거나 태도를 바꾸는 식으로 반응했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는 침묵이 가장 덜 다치는 선택이라고 믿었다.
말하지 않은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쌓였다.
침묵은 관계 사이에 얇은 막을 덧대듯, 우리를 조금씩 다른 온도 안에 가뒀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계의 결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상대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나는 설명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더 깊이 혼자가 되었다.
관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제야 조금 늦게 깨달았다.
내가 어려워했던 것은 말하기 자체가 아니라, 말해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내 마음을 꺼냈을 때 생길 수 있는 오해와 실망, 관계의 변화가 두려워서 나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 왔다. 침묵은 안전했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깊숙이 숨기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아주 작은 연습을 하고 있다. 정리된 감정만 말하려 하지 않는다. 흐릿해도, 모순적이어도, 느낀 것을 그대로 꺼내본다.
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을 때,
예전처럼 바로 “응, 괜찮아”라고 답하지 않는다.
한 박자 늦더라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라고 말해본다. 그 한 문장이 관계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나를 더 선명하게 남긴다는 걸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말 앞에 서면 여전히 마음이 한 박자 늦어진다.
입 밖으로 나오기 전,
말은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방향을 바꾼다.
종종 문장은 매끄럽지 않고, 표현은 어딘가 모자라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그 서툰 말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말 뒤에 숨어 있던 내 마음을 끝내 밀어내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요즘, 타인의 말보다 한 발 앞에 내 감정을 세워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조용해도, 흔들려도, 사라지지 않게.
어쩌면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간극 안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느끼지만 말하지 못하는 감정들, 지키려다 잃어버린 자신들, 안전과 이해받을 기회 사이에서 망설이는 순간들. 그 모든 침묵 앞에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감정에 자격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란 거창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나를 무시하지 않는 것, 느꼈던 마음을 스스로에게조차 부정하지 않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비로소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모두 설명하지 못해도, 적어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