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진다는 것에 대하여
퇴사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 일주일쯤은 이상하리만큼 부지런했다. 출근하던 시간에 눈을 떴고, 하루를 계획했고, 해야 할 것들을 목록으로 적었다. 이제는 나의 시간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단정하게 만들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그 단정함은 서서히 풀어졌다. 알람 없이 눈을 뜨는 날이 늘었고, 계획은 머릿속에서만 맴돌다 사라졌다. 특별히 할 일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는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느슨해졌다.
느슨함이라는 감각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은 편안함이었고, 다른 한쪽은 불안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는 나를 쉬게 했지만, 동시에 삶이 너무 조용해져서 의미를 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바쁘지 않은데 마음은 바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시간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채워진 시간에 익숙해져 있다. 일정표에 빼곡히 적힌 약속들, 퇴근시간에 쫓기는 업무들, 누군가의 요청에 응답해야 하는 순간들. 그 안에서 우리는 쉼 없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텅 빈 달력과 아무도 찾지 않는 전화기,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발걸음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나의 시간’을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의 나는 하루를 붙잡아 두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의식들을 만든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흐를 때, 머릿속에 얽혀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풀어진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두고 그 멜로디에 몸을 맡긴다. 샤워를 마친 뒤에는 밤공기를 마시며 짧은 산책을 나간다. 목적지는 없다. 그저 발이 가는 대로 걷다 보면 세상이 조금 덜 낯설게 느껴진다. 큰 깨달음은 없지만, ‘아직 괜찮다’는 감각만은 남는다.
노트북 화면을 켜놓고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순간도 있다. 커서는 깜박이는데 손은 움직이지 않고, 생각은 흐르다 말다 한다. 그러다 문득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을 테니까. 나는 늘 밖으로 나가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카페에 앉아야 글이 써질 것 같았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나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지, 살아 있는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 머문다.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창밖의 빛이 바뀌는 걸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는 이 공간에서, 나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들도 이렇게 많은데, 나는 왜 그동안 그것들을 ‘하지 않는 시간’으로만 분류해 왔을까.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움직이고, 생각은 쌓이고, 감정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진행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은 정말 공백일까, 아니면 침전일까. 계속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멈춰 섰을 때 비로소 가라앉아 모습을 드러내듯, 이 느린 시간은 나를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정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필요한 긴장과 습관, 남의 리듬에 맞추느라 쌓였던 피로들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앉는 시간.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해왔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식어버린 커피의 맛도 예전만큼 초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뜨겁지 않아도 괜찮고, 당장 향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시간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나를 다시 느끼기 위한 여백이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서 나로 존재하고 있다.
나는 요즘 삶을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이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로 이어질지 애써 정의하지 않는다. 모든 경험을 성장의 서사로 포장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물러나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지금일 수 있다는 것, 의미는 나중에야 비로소 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루를 정리하지 않는다. 잘했는지 묻지 않고, 의미를 따지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숨 쉬며 지나왔다는 사실만을 가만히 인정한다. 샤워를 하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 이 작은 의식들이 나를 다시 숨 쉬게 한다. 거창한 각성이나 극적인 변화 없이도,
하루는 그렇게 살아진다.
어쩌면 일상 속 사유란 대단한 질문이 아니라 이런 태도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는 다짐, 느슨해진 나를 나무라지 않고 불안해하는 나를 재촉하지 않는 마음. 그 안에서 삶은 다시 제 호흡을 찾는다. 아직 확신은 없고 방향도 흐릿하지만, 나는 지금 이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를 다시 배우고 있다.
이 정도의 사유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