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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Nov 07. 2023

공포의 열경기

깜박깜박 ADHD 엄마라서

엄청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기였던 말랑이는 10개월 정도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열경기를 했다.

나는 그때 살면서 겪은 공포를 다 끌어모아 합친 것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어쩌면 아빠가 죽을까 봐 무서웠던 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열경기라는 걸 말로만 들어 봤지, 직접 한 번도 겪어보거나 본적 도 없었던지라 우리 아기에게 그런 상황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말랑이는 그날 열이 오르는 감기에 걸려 있었는데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평소와는 다른 울음소리를 내며 깼다. 평소에는 자다가 깨도 거의 울지 않는 편이라 이상한 기분에 바로 가보았는데 아기의 눈이 초점을 잃고 허공으로 치켜뜬 채 뒤집혀 있는 거다. 몸은 축 늘어져 있고 입술은 숨을 못 쉬어 새파랗게 질려서 한 1-3분 정도 경기를 했던 것 같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어떻게 정신줄 놓지 않고 119에 전화해서 병원까지 갔는지 자세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신이 조금 들고 보니 말랑이는 집 근처 어린이 전문 병원에 입원해 있고, 나는 집에서 입던 수유복 그대로 머리를 산발한 채로 꼬물이와 함께 병원 대기실에 있었다. (이 시절 꼬물이는 항상 양갈래 삐삐머리였는데 한쪽만 묶은 반쪽 삐삐머리를 하고, 옷은 반대로 뒤집어서 팔은 하나만 끼운 채로 걸쳐 입고, 손에는 언제 챙겼는지 집에서 먹다 남은 뻥튀기 한 봉지까지 들고서)

 이런 경우는 만 3세 이전에 아주 드물지 않게 생긴다고 한다. 아직 뇌에서 열을 조절하는 기관이 덜 발달되어 생기는 증상으로 만 5세가 되면 대부분 거의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열날 때 해열제 잘 먹이고 하면 된다고 금방 퇴원을 하긴 하였다.


그런데... 나란 엄마는 너무 심약한 엄마인 건지 충분히 설명을 듣고 이성적으로 이해를 했는데도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또다시 열이 올라서 경기를 하게 될까 봐 마음을 졸이며 말랑이가 조금이라도 미열이 있을 때면 어쩔 줄을 몰라서 혼자 난리를 쳤다. 계속해서 손과 이마를 만져보고 수시로 열 체크를 하고 해열제를 준다고 잘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도 혹시라도 잠들까 봐 열이 많이 날 때는 1시간에 한 번씩, 조금 날 때는 2시간에 한 번씩 밤새 알람을 맞춰놓고 애를 태웠다. 혹시 몰라 열경기로 유명하다는 한의원에도 데려가보고 거기서 아이 열날 때 손가락 따는 법을 배워서 열이 오를 때면 아기 손가락 끝을 수지침으로 찔러주기도 했다. (나는 실제로 이 방법으로 효과를 보았고 남편도 한약보다 양약을 좋아하는 약사이지만 이 '손가락 따기'만은 지지하는 편. 하지만 병원에서 추천하는 방법은 아님)

웃픈 이야기지만 덕분에 몇 년 뒤 나는 살짝 '열박사' 비슷하게 되어서 말랑이 손과 발만 만져봐도 이번에는 몇 도까지 몇 분 정도 만에 오를 것 같은지 얼마 만에 다시 열이 내려갈 것 같은지 짐작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뒤로 말랑이는 두 돌이 지나 한 번 더 열경기를 했는데 나는 이때도 첫 번째 못지않게 또 놀라고 무서웠다. 두 번 겪는다고 익숙해지는 일이 전혀 아니었다. 도리어 언제 또 열경기를 다시 할까 싶어 나는 더 새파랗게 질려서 말랑이가 열만 났다 하면 더더욱 열심히 생난리를 쳤다.

가엾은 말랑이는 7세(만 5세) 독감에 걸려 41도가 되어도 열경기를 더 이상 하지 않을 만큼 자랄 때까지 열경기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하도 조물락거리고, 귀에 체온계 쑤셔 넣고, 손가락 발가락 따고 하는 바람에 고생을 엄~~~ 청 했다는 사실.


그렇게 또 배웠다.

인생이 내가 생각한 데로만 흘러가는 게 절대 아니고, 내가 예측한 일만 일어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감당하기 힘든 일도 생긴다는 것을.


말랑이는 아기 때 셀 수없이 많은 기쁨을 주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래? 누가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그 짓만은 두 번 다시 못하겠어서 그냥 안 갈래요~ "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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