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첫 항암의 부작용으로 호중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2주 동안 호중구 수치를 올려주는 주사를 맞고도 항암을 맞지 못했다. 선항암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항암을 일정대로 맞았기에,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남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곧 나의 일이구나. 고단백 음식들을 억지로 챙겨 먹기로 했다. 닭백숙, 닭발, 소고기 등 먹을 수 있는 만큼 꾸역꾸역 식사 때마다 먹었다. 사흘 전, 다행히 항암을 맞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오심, 두통, 변비가 찾아왔고, 미각을 바로 잃어버릴 줄은 몰랐다. 거기에다 요즘 유행하는 감기 증세까지 시작되었다. 사흘 뒤 항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다시 또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새벽 한 시에 일어난 후 잠을 못 잤다.
온몸이 춥고, 얼굴에는 열이 나고, 목은 칼칼하다. 콧물은 쉴 새 없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따뜻하게 해도 수술 후의 내 몸은 정상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탄다.
조용한 새벽, 부작용을 견디며 책 읽기로 아침을 맞이했다.
닭고기에 질려서 추어탕을 친정엄마와 함께 먹으러 갈까 생각했다. 생강차를 끓여 식탁에 놓고 침대에서 뒤척이는 엄마를 불렀다. 기침을 하시며 일어나신다. "아이쿠, 아이쿠" 하며 힘겹게 워커를 의지해 천천히 식탁으로 다가오신다.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니, 요양 보호사님과 엄마는 집에서 드시겠다고 한다. 손자랑 같이 가서 먹고, 더 먹고 싶으면 포장해 오라고 말씀하신다. 추워진 날씨라 그 편이 더 낫겠다. 아픈 사람이 먼저라고 말씀하신다.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고 하신다.
급한 건 없으니 아이가 준비되면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5시다.
요즘 운전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와 함께 차를 몰고 나오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올해 첫눈을 아이와 함께 차 안에서, 추어탕을 사러 가며 바라본다. 서로 쳐다보며 "오늘 눈 온다고 했나?" 물어본다. 나는 "오다가 그치겠지?" 하며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오겠나 싶었다. 기분 좋은 것은 집에 누워 있지 않고 나와서, 첫눈을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치즈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사러 가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그 맛있는 것을 파는 곳이 마곡에 있다면서, 그곳에 먼저 가기로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몇 개월 전만 해도 텅 빈 공간이 많았는데, 식당과 옷 가게 등이 모두 입점해 있었다. 아이는 여기저기 잘 찾아다니며 사고 싶었던 물건들을 조금씩 고르기 시작했다. 카트에 넣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몇 가지 안 샀는데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물건을 포장해서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엄마! 이모, 삼촌한테 빌린 돈 이천만 원도 갚아야 되잖아?" 한다. 아이는 오늘 돈을 생각 없이 쓰게 해서 미안한 모양이다. "이 년 동안은 힘들지." 다시 이런 현실이 무겁게 느껴졌다.
밖으로 나오자 온 세상이 희색으로 변해 버렸다. 새하얀 밀가루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감탄과 함께 걱정이 밀려왔다. 차선이 제대로 안 보이니 초보 운전인 아이는 당황한 듯하다. 불안한 아이는 이 와중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틀고 있다. 천천히 가면 된다고 말한다.
친구에게 첫눈 소식을 전해본다. 지방에 간 친구는 서울에 빨리 와서 눈 구경을 하겠다고 말한다. 또 다른 친구는 눈에 천둥에, 이게 뭐냐고 말한다. 나는 첫눈이 오는 날,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사고 엄마의 재촉에 추어탕을 사러 나온 멋진 추억을 만드는 날이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나뭇가지 위에 살포시 눈이 앉아 있고, 꼬맹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20분 걸리는 거리를 두 시간 30분이 걸렸다.
안 하던 멀미를 하고 속이 좋지 않았다. 늦은 저녁을 기다리는 엄마를 위해 저녁 준비를 한다. 남아 있는 국을 마주 먹고, 나중에 추어탕을 먹어야지 했다. 다 차렸는데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소화제를 먹고 침대에 눕겠다고 말했다.
호강하는 날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첫눈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사 오기도 했다. 그동안 첫눈이 오는 날 중 그 어떤 해보다 따뜻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