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존재
엄마의 연명치료를 의논해야 했을 땐 이번엔 반드시 모시고 간다고 했다. 큰 딸 역할을 하겠다는 말에 듣고 만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옮겼을 때 야간 간호를 나서서 하겠다. 24시간 하겠다. 의사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나를 뺀 형제들의 효에 감동했다.
그동안은 왜 못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부터 잘하려는 형제들을 오해했구나! 속좁음을 반성한다. 몇 년을 더 살았으니 생각이 깊이가 다르겠지. 어제부터는 큰 고비는 넘긴 상태가 되어서 안도의 숨은 쉴 수 있는 상황이다. 말도 잘하고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형제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다음 치료는 비만이다. 식단조절과 재활운동을 위한 협진이 시작되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위험한 상태에선 엄마가 부르면 달려갔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가족간병에 지칠 시간이 왔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일상이 무너진 지 14일 이상은 힘들다는 것인데 대책마련이 미흡하다. 고민하다가 요양사님께 연락을 해 본다. 혹시 간병이 가능한가 문의했다. 다른 곳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아픈 고통 속에서 요양사선생님 일 못 하는 것을 걱정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다음은 사회복지사에게 연락이 온다. 요양사는 간병인을 하기 어렵다는 변명처럼 들리는 말에 좋은 정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애쓰며 간병하는 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예약한 일을 해야 해서 간병인을 알아보라고 말한다. 큰언니도 본인집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둘째 언니는 야간간호 며칠 동안 허리가 아파 도저히 못하겠다고 한다.
아파서 누워 계셨지만 혼자서 돌볼 때보다 엄마는 아기처럼 행복해 보였다. 듬직한 자식들 틈에서 맘껏 아프다고 하고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보고 있는 사람도 든든했다.
이번일로 사형제의 성향파악도 되었다. 결국은 이기적 유전자의 인간일 수밖에 없다. 생각의 표현이 다를 뿐이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만 가능하다.
어떻게 포장을 해도 스스로도 알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도 알게 된다.
노환으로 힘들어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누
되어야 한다. 자신의 건강을 놓는 순간 모든 것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온 큰 딸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울고 있다.
암에 걸린 동생에게 그동안도 앞으로도 큰 짐을 준다며 나를 안고 토닥인다. 그런 선택과 결정에 아무 말도 안 한다. 모셔간다는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자식이든 할 수 있는 한계와 변화고 싶지 않은 일상이 있다. 딱! 그만큼만 하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에게 항상. 그 대신 가장 행복한 엄마의 자식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희망은 있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건강해질 일만 남았다. 엄마도 딸도. 같은 공간에서 난 더 행복할 거고 죽음이 와도 엄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죽음 후에도 자식의 도리를 이어서 하겠다. 도망가겠다고 하면 고민해 보겠다.
그러니 암세포들아 이제 꺼져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