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 Dec 31. 2023

개인적인 2023 올해의 독서 결산

90권, 착실히 읽었다

2023년도 열심히 읽었다.

꾸준히 책을 읽다 보니 영상 매체와 한층 더 멀어진 한 해였다. 많은 최신 드라마와 영화를 놓치고 있지만 책에 있어서는 최신 것들을 열심히 따라갔다. 책을 읽는 것이 한층 더 편안하고 나답다고 느끼게 되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일서를 읽지 못했다는 것이겠고 그래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독서를 했다는 점, 더욱 다양한 책을 읽었다는 점, 그리고 권수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읽는 책에 따라서 권수는 얼마든지 큰 차이를 보일 수 있으니까) 그래도 9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올해 중요한 성취가 되겠다.


나만의 올 해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책 읽는 사람이라면 제목을 너무나도 많이 들어 '대체 무슨 책이길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은 책이지만 그래도 정말 정말 꼭 반드시 한 권만 뽑아야 한다면, 올해 발매된 책은 아니지만 내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꼽고 싶은 작품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이 책은 장르를 설명할 수도, 주제를 설명하기도 너무 어려운 책이지만 이 책을 설명하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당혹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인 수식어구들이 튀어나온다. '매혹적이다', '빨려 들어간다', '탁월하다', '경이롭다', …….

무슨 이야기로 이어질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지 모르면서도 그 이야기에서 빠져들어간다. 한 사람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몰두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는 작가가 결국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그저 정신없이 빠져들어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책의 흡입력, 이야기의 강렬함,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엮어 내는 작가의 탁월한 필력. 명불허전의 작품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진짜 2023년에 발매된 올해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올해 엄청나게 언급되고 추천된 『도둑맞은 집중력』 역시 도서 결산을 하면서 빼놓으면 안 될 것 같다. 워낙 베스트셀러에, 추천에 언급이 많아서 읽긴 했지만 사실 읽기 전에는 그다지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목에 이미 '집중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이상, 내용은 '집중력 저하'에 관한 것일 것이며, 해결을 위한 나름의 제언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면서 집중력에 관련된 책 한 권 안 읽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당연히 집중력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왔고, 그래서 별 특별히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참 어리석은 나의 오산이었음을 얼마 읽지 않아 알게 되었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이제껏 많은 집중력에 관련된 책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사회적인 책임을 더 깊고 진중하게 파고든다. 스마트폰을 멀리 하세요, 앱을 지우세요, 같은 단순한 개인의 노력만이 주의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전 세계적으로 퍼진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는 많은 것들을 우리의 시선을 모두 개인으로 돌리게 만들었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본 이야기는 놀랍도록 전율스럽다. 올해 발매된 책 중에 기꺼이 '올해의'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책이다.


한국 사회의 고통을 이해하게 해 준 『숫자 사회』 임의진, 『풍요중독사회』 김태형

『숫자 사회』 역시 최근 도서 마케팅에서 많이 언급되고 여러모로 많이 추천되는 책인 것 같은데, 그에 반에 『풍요중독사회』는 눈에 띄어 언급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둘은 굉장히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둘 모두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이유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숫자 사회는 좀 더 사회적인 성공 기준의 관점에, 『풍요중독사회』는 그와 관련해 좀 더 심리적인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이 두 권의 책은 단순히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 주었다기보다는 그를 통해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하고 자존감을 유지하기가 힘든지에 대해서 사회적 관점에서 폭넓게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단순히 어떤 누구가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고, 이게 문제라고 짚어주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주 크게 위로받는 기분이었기에 올해 읽은 책 중에서 한 번쯤 언급하고 싶었다.


장르 불문 나를 매료한 책 『깃털도둑』, 『몸은 기억한다』, 『당신의 특별한 우울』

『깃털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읽은 『깃털도둑』은 실제 있었던 박물관 깃털 도난 사건의 범인을 탐사한 내용인데,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욱 극적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 작품이다. 범죄 스릴러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감각으로 완전히 빠져 들어 읽었고, 현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실화 기반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들었던 책이다.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 역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유명한 책이라 언급하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유명세만큼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원래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많이 읽는데 이제껏 내가 읽었던 책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관점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현재 지배적인 관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을 하는데, 그 관점이 강력하게 설득적이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신의 특별한 우울』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은 연구적 성과나 심층 분석을 통해 심리학을 논하는 서적이라기보다는 심리학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에세이다. 본인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이력과 더불어 여전히 의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방황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어쩌면 의사로서 말하기에는 놀랍게 솔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인간적인 동질감을 많이 느껴 나에게 조금은 특별하게 남았다.


나를 사로잡은 소설 『쿼런틴』,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쿼런틴』(그렉 이건 著)은 사실 50퍼센트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내가 읽어왔던 SF와는 완전히 다른 하드코어 SF의 매력을 흠뻑 즐기게 해 준 책으로, 나에게 새로운 문을 또 열어주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소개하고 싶었다.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질리언 매캘리스터 著)은 미스터리 덕후로서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신선하고 뛰어난 작품이었다. 나 스스로도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가 작품성도, 스토리텔링 전략도, 몰입을 이끄는 흡입력에 있어서도 뛰어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개인적인 취향의 이유로 포기하기 못하고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로라 데이브 著)을 목록에 슬쩍 끼어넣게 되었다. 당연히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재미있고 여러모로 굉장히 좋은 작품이지만 풀려가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논리, 그리고 기본 이야기 구조의 아이디어 등이 주는 놀라움은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비하면 조금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담고 있는 끝없는 사랑과 믿음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더 크게 울렸다. 둘 다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놀랍도록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올해의 영어 원서 『Pageboy페이지보이』, 『Hello Beautiful헬로 뷰티풀』


원서 리뷰는 꾸준히 쓰고 있기에 크게 언급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이 또한 대중들의 취향이나 선택과 상관없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작품들을 언급하고 싶어서 넣어보았다. 『Pageboy페이지보이』 리뷰 같은 경우는 이미 업로드한 것이 있으니 링크로 설명을 생략해 본다. https://brunch.co.kr/@717f25fe8ad146e/5


그리고 전적으로 나의 취향으로 고른 『Hello Beautiful헬로 뷰티풀』. 다시 한번, 이 작품의 훌륭함은 전적으로 제쳐두고, 내가 그저 이 작품을 너무도 사랑한다. 이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는 중이라 곧 올릴 것 같으니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음 리뷰를 봐주시면 좋을 듯하다.



아무래도 좋았던 책은 많고, 책에서 배운 것들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일 년 동안의 독서를 짧게 한두 권으로 끝내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본문에는 언급하지 못한 책들도 올 한 해 동안 내내 내 안에 작은 조각들도 조금씩 쌓여 나를 변화시켜 왔을 것이다.


올해도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도 계속해서 읽습니다.

다만 브런치와 더 자주 함께하길.


Cover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영어원서_ 화자의 불안정함으로 풀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