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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Aug 06. 2023

네가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썼는지

도영과 지은의 밤새운 대화 4

밤새운 대화


할머니 댁 안방에는 보일러를 너무 세게 틀어 동그랗게 타버린 자국이 남아있는 노란색 장판이 깔려있었다. 어렸을 적 우리는 그 뜨거운 장판 위에 언제 빨았는지 모를 이불을 여러 겹 깔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힘들었던 가정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즐거웠다.


그 시절의 우리처럼, 양도영과 양지은은 다시 밤샘 수다를 떨어보려고 한다. 우리의 깊숙한 마음들을 때로는 실없는 이야기들을 당신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괜찮다면 같이 떠들어주기를.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밤새운 대화가 연재됩니다.






도영


네 편지 중에 이모가 요새 유행하는 회귀형 소설처럼 과거로의 회귀를 상상한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었잖아. 너는 어때?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어? 돌아간다면 언제로?



지은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엄마는 비현실적인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 과거를 상상해. 다시 돌아가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건 내게 허무맹랑하게 들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거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빠를 멈출 수 있을까? 아빠 때문에 지쳐버린 엄마를 일으킬 수 있을까? 당시에도 나는 막을 수 없었어. 그때와 같은 무력감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어.



도영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의 불행은 우리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최선을 다해서 불행을 마주했기 때문에 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아.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그 시절 우리에게 조금만 더 행운이 있었으면 달랐을까’라는 질문을 했었잖아. 행운이 있었던 시간 속 이모와 너의 모습이 궁금해. 돌이켜보면 나는 이모가 행복할 때의 모습도 성격도 잘 모르더라고.



지은


가끔 이모들은 엄마를 보며, 참 순수하고 맑았다며 말꼬리를 흐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엄마는 여리고 착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어. 조현병에 걸려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는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엄마와 나는 조금 더 밝은 시선으로 삶을 바라봤을 것 같아. 엄마 껌딱지였던 어린 시절처럼, 지금도 엄마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


그래서인지 엄마와 나에겐 어느 순간 ‘본가’라는 개념이 사라졌어.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우리가 아닌, 엄마와 딸의 유대관계가 있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상은 처음 해봐.



도영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삶을 산다… 네 말을 다시 되뇌어. 새삼 사랑과 유대관계는 다른 거라는 걸 깨닫게 돼. 이모는 너랑 함께 살고 싶을까? 이모가 너를 사랑한다는 건 너무나도 확실해 보이는데 또 이모가 너랑 같은 삶을 살고 싶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전혀 모르겠어. 나의 본가는 어디일까. 엄마가 있는 곳인가. 왠지 모르게 할머니 집의 초록색 대문이 생각나.



지은


우리 엄마는 분명히 나와 살고 싶을 거라 확신해. 하지만 그건 다른 시점의 나일지도 몰라. 엄마는 항상 과거를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 같이 사는 일상을 상상한다 해도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얘기할 거야. 그렇게 변해버린 엄마를 바라보며 함께의 삶은 힘들 거라 판단해. 우리는 어느샌가 같은 질문을 해도 다른 답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어.


나 역시 궁금하다. 구김 하나 없이 행복할 수 있었던 언니와 이모를 말해줄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이모는 짧은 연휴 기간의 단편적인 모습이 전부더라.



도영


내가 아는 엄마? 엄마는 누구보다도 순수한 사람이야. 엄마는 길가의 돌멩이를 보고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같이 동네 공원을 걷다가도 갑자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지. 어떠한 구김도 없었다면 엄만 그 누구보다 소녀 같았을거야.



지은


이모와 엄마는 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 나도 우리 엄마가 소녀 같은 성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엄마와 이모가 학창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학창 시절 엄마, 이모를 같은 나이대에 봤으면 어땠을까? 나는 가식 없고 맑은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편이라, 엄마를 좋아했을 것 같아. 가끔 엉뚱하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친구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도영


엄마를 친구로 만났으면 좋아했을 거라는 게 귀엽다. 나는 흠.. 귀엽지만 좀 피곤한 친구라고 생각했으려나? 손이 많이 가는 친구였을 것 같아. ㅋㅋㅋ



지은


귀엽지만 좀 피곤한 친구라는 표현이 웃겨. 어린 이모와 언니의 모습이 상상가네.

이런 얘기를 듣자면 언니와의 편지로 이모를 더 알아가는 것 같아. 언니의 편지를 읽자면 내가 모르던 언니와 이모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새로워. 그렇지만 편지를 읽을 때는 언니가 어떤 감정으로 편지를 썼을지 걱정되기도 해. 특히 악몽을 꿨다는 글을 읽고 마음이 많이 쓰였어.



도영


초기에는 편지를 쓰기 위해 괴로운 기억을 의도적으로 상기하는 일이 힘들었었어. 하지만 편지를 쓰기 위해 시간을 배정하고 깊숙한 마음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고통이 한 단계 정제된 마음으로 승화됨을 느꼈어. 편지를 쓸 때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독특한 몰입감을 경험해.



지은


나도 편지를 통해 기억을 정제한다는 언니가 공감가. 편지를 쓰며 몰입하게 되는 부정적인 생각에 힘들다가도 글을 적어 내리며 내 감정의 순물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더라. 그러다가 과몰입한 감정들이 무의식중에 남아 악몽을 꾸게 되나 봐. 이 과정이 우리에게 조금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랄 뿐이야.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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