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딘 사람입니다.
특히 출발이 더딘 사람이죠.
시작하는 것이 더딘 그런 사람 말입니다.
시작하더라도 쉽게 속도를 붙이기 어려운 그런 사람이죠.
해야 하는 것이라면 하긴 하지만 그냥 좀 더디 더디 갑니다.
예전 국민학교시절 3학년쯤이었던 듯합니다.
학교에서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죠.
나는 머리가 그리 나쁜 아이가 아니었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반 친구들이 구구단을 다 외웠을 때에도 여전히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수업이 끝나고도 남아서 외웠던 기억이 있답니다.
아마 그때 선생님은 제가 바보일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가 이걸 왜 외워야 하는지를 몰랐을 뿐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나는 친구들이 다 외우는 훈민정음이나 용비어천가 등등 학업과정에서 달달 외웠어야 했던 여러 가지 중 암기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 열심히 외웠던 친구들은 지금도 기억에 담아둔 것을 줄줄 말하는 걸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처럼 나는 시작이 느리고 시작했어도 마무리조차 쉽지 않은 그런 사람입니다.
어느 날 이런 나에게서 가장 강력한 시작의 동기를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이유를 모르고 이유를 이해할 만큼 아니지 납득할 만큼 설명해주지 않으니 그동안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던 나는 나름 이유의 대체제를 찾아낸 것입니다.
나에게 시작을 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는 필요성이란 것을 말입니다.
그것을 내가 안거죠.
내게 필요성이 인식되면 그때는 그것이 나에겐 목적이 되어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민첩하게 쉼 없이 반복한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일차원적인 사람인 거죠.
참 단순한 사람인 겁니다.
그러나 이런 평면적인 사람이지만 이런 나의 특성을 알고부턴 그리 초조하거나 조급한 일은 없었습니다.
필요성이 인식되고 그것이 목적이 될 때 잘 해내는 나를 반복해서 보면서 점점 나를 신뢰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론 바보이기도 했다가 가끔 한 번씩은 천재성을 발현하기도 하였답니다.
때로는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의 필요성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내가 수동적인 사람은 아니랍니다.
철저하게 나를 기준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인 거죠.
타인이 볼 때 소모적인 것도 불필요한 것도 나는 내가 인식하는 순간 참 스스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체험능력이 강력하죠.
체험의 농도가 아주 찐한 거랍니다.
그렇게 나만의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철저한 나이고자 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일까요?
알 수 없는 미묘한 아이로 비현실적인 아이로 몽상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아이로 친구들에겐 나란 사람이 기억되어지고 있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처럼 나는 각각 친구들의 기억으로 저장되어지는 그런 단편적인 모습을 진짜로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죠.
누구든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는 거잖아요.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이러한 단면들로 나를 기억하는 것에 감사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