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원래 경상도 계림 땅이었다

무력과 교화를 함께 구사한 조선 태종의 대일 외교 문서

by 김욱

세종 1년 7월 17일, 상왕 태종은 대마도 수호 도도웅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태종은 대마도가 “경상도 계림(鷄林)에 속한 우리 땅”이라 밝히며, 조선이 대마도를 오래전부터 통제해왔다는 역사적 근거를 강조했다. 다만 그 섬이 작고 험하며 바다 가운데 있어 왕래가 막히다 보니, 일본에서 쫓겨난 자들이 모여들어 살면서 점차 도적질과 약탈을 일삼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조선의 입장에서 대마도는 원래 조선 영토였지만, 생활이 곤궁한 이들이 모여 형성된 ‘무도한 섬’으로 인식된 것이다.


태종은 이런 대마도 사람들을 단순히 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하늘이 사람에게 이치를 주었듯이, 선한 일을 하면 상서롭고 악한 일을 하면 재앙이 따른다”고 설파하며, 대마도인들이 교화에 응해 조선의 질서로 돌아올 것을 권했다. 또한 조선이 이미 수년간 곡식을 보내 굶주림을 덜어주고 교역을 허락했음을 상기시키며, 은혜를 배반하지 말고 항복한다면 벼슬과 녹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끝내 도적질을 멈추지 않는다면 군사를 일으켜 섬을 포위해 멸망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편지는 단순한 전쟁 선포문이 아니라, 무력과 교화를 함께 구사한 조선의 대일 외교 문화를 보여주는 문서였다.



현대어로 알기 쉽게 풀어쓴 번역 세종 1년 7월 17일 기사


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기운으로 몸을 이루게 하고 도리와 이치를 함께 주었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여러 상서(吉兆)가 오고, 불선한 일을 하면 재앙이 따릅니다. 옛 임금들이 천도의 뜻을 받들어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 오곡을 길러 먹게 했듯이, 사람을 바르게 가르쳐 마음을 선하게 하는 것이 임금의 도리입니다. 만약 악한 무리를 굳세게 버티며 남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아도 부끄럼을 모르는 자가 있다면, 작은 잘못이면 형벌로 다스리고, 큰 잘못이면 정벌해서 없애는 것이 옛 임금들의 다스림이었습니다.


대마도는 원래 경상도의 계림에 속한 땅으로 역사 기록으로도 분명히 확인됩니다. 다만 섬이 작고 바다 가운데 있어 왕래가 막혀 제대로 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쫓겨난 사람들, 갈 곳 없는 자들이 모여들어 도적처럼 집단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평민을 위협하고 약탈하며 곡식을 빼앗고 고아와 과부,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집을 불태우는 등 오랫동안 흉포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우리 태조(조선을 세운 분)께서는 어질고 무력도 강하셨기에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세우시고 큰 기반을 닦으셨습니다. 제가 대통을 이어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선왕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불쌍히 여겨 돌보았고, 대마도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어 왔습니다. 특히 도도웅와의 아버지 종정무(宗貞茂)가 보인 의로움과 정성을 생각하여 그 집안을 함부로 벌주지 않았고, 통신 사신을 맞을 때마다 예우하여 머물게 하고, 상인들의 교통도 허락하며 경상도에서 대마도로 곡물을 보내 생활을 돕게 했습니다. 해마다 많은 곡식이 운송되어 그들이 배고픔을 면하고 도적질을 부끄럽게 여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그들이 은혜를 배반하고 망덕을 부리며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조선에 귀화한 자나 우리와 통상·통신 관계로 온 사람들, 그리고 최근 우리의 위세에 굴복하여 항복한 자들까지도 다 죽이지 않고 여러 고을에 나누어 살게 하고 먹을 것과 옷을 주어 생활을 돕고 있습니다. 또 변방 장수들에게 명하여 병선을 동원해 섬을 포위하고 항복하기를 기다려 왔으나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섬 주민 수천 명의 생활 형편을 생각하면 정말 측은합니다. 섬 땅은 거의 바위뿐이라 농사 지을 땅이 적고, 고기 잡고 미역 따는 정도가 전부인데도 도적질을 일삼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깨닫고 항복하여 모두 와서 항복하면, 도도웅와에게는 좋은 벼슬과 넉넉한 녹을 주고, 다른 여러 대관(크고 작은 우두머리)들도 평도전의 처우와 같이 넉넉히 베풀어 주어 비옥한 땅에서 농사 짓고 살아가게 하겠습니다. 모두가 우리 백성과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하여 도둑질이 부끄러운 일이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 기쁜 일임을 알게 하려 합니다. 이것이 스스로 새롭게 되는 길이고 생활할 도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항복하지 않고 계속 섬에 머물러 도적질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군선을 크게 준비하고 많은 군량을 싣고 섬을 에워싸 굴복할 때까지 공격할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포위를 받으면 결국 스스로 멸망할 것이며, 더 심하면 수만의 용사를 뽑아 육지 여러 곳을 쳐들어가면 그들은 주머니 속 물건처럼 도망칠 곳이 없어 어린이와 부녀자까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참혹한 결과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이야말로 깨닫고 돌아오기를 권합니다. 옛사람의 말처럼 화와 복은 스스로 구해야 하고, 열 집이 있는 마을에도 충신 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대마도 사람 가운데에도 반드시 의로움과 도덕을 아는 이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병조는 이 뜻을 적어 대마도로 보내어 그들이 스스로 깨달아 멸망을 면하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이 글을 가지고 귀화한 왜인 등현(藤賢) 등 5인을 보내어 대마도로 가게 하니, 족하(足下: 도도웅와)는 잘 생각하여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상왕이 대마도 수호 도도웅와에게 교화에 응할 것을 교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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