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더피에 담긴 k-'해학'의 미학

세계에 통한 케이팝 데몬헌터스 더피의 k-해학

by 김욱

Kpop demon hunters』가 비슷한 장르의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 중 하나는, 대결 상대끼리 서로 교감한다는 점이다. 적과 교감하는 서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적대적인 상대와 교감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감정이 쌓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루미'와 '진우'는 영화 초반부부터 서로 깊이 교감한다. 영화는 이 둘을 깊이 이어주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배치했는데,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코믹 릴리프 '더피'다.


코믹 릴리프는 극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더피는 관객과 영화 사이의 긴장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적으로 만난 루미와 진우의 긴장까지 완화시켰다. 첫 번째 역할은 일반적인 감초 캐릭터가 흔히 수행하는 기능이지만, 두 번째 역할까지 수행하는 코믹 릴리프는 흔치 않다. 이는 보다 정교한 캐릭터 설계를 필요로 한다. 만약 『겨울왕국』의 올라프 같은 캐릭터가 루미와 진우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올라프의 수다에 루미의 복잡한 감정 동요가 묻혔을 것이다. 적에 대한 경계심을 뚫고 진우의 진심을 전하려면, 우리가 아는 익숙한 코믹 릴리프와는 달라야 한다. 이때의 웃음은 공격적이기보다 따뜻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루미와 진우를 화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 해답을 한국의 전통에서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해학(諧謔)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해학은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이는 온정과 포용에 기반하는 것으로 대상을 공격하여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서구의 '냉소'나 '풍자'와는 결이 다르다. 해학은 비판의 대상마저도 웃음의 장으로 끌어안아 함께 어우러지게 만든다. 이러한 특징은 고전소설 《흥부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흥부는 형수에게 주걱으로 뺨을 맞고도 주걱에 달라붙은 밥풀이 먹고 싶어 왼쪽 뺨도 때려달라고 한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가난과 그 속에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흥부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깊은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한다. 이는 웃음을 통해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보듬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렇다면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더피에게서 우리는 어떤 한국적 해학을 찾을 수 있을까? 우선 더피라는 캐릭터의 원형이 해학의 정신을 깊이 담고 있는 민화 '작호도(鵲虎圖)'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작호도의 호랑이는 위엄 있는 모습 대신, 어딘가 모자라고 바보스럽게 묘사된다. 표정은 익살스럽고, 몸짓은 우스꽝스럽다. 반면, 나무 위의 작은 까치는 호랑이를 향해 무언가 꾸짖듯 지저귀며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힘없는 서민을 상징하는 까치가 권위적인 호랑이를 조롱하는 구도로, 지배 계층의 허세를 풍자하는 해학이다. 악령의 전령으로 등장한 더피가 화분 세우기에 집착하는 의외의 행동은 작호도의 호랑이와 맥이 닿아 있다. 권위를 가진 존재가 예상치 못한 허술함을 드러내어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더피는 전통 민화가 구현해온 해학의 미학을 현대 서사 속에 이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더피에게서 찾을 수 있는 두 번째 해학적 요소는 능청스러움이다. '능청'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는 태도나 연기를 말한다. 그 핵심은 '태연함'과 '천연덕스러움'에 있다. 능청은 일종의 사회적 연기로, 당황스럽거나 불리한 상황에서 정색하거나 변명하는 대신, 오히려 뻔뻔할 정도로 태연하게 행동하여 상황의 긴장감을 웃음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날카로운 비판이나 공격 대신, 능청스러운 태도로 상황의 핵심을 슬쩍 비껴가거나 본질을 흐리면서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해학이 '따뜻한 웃음으로 슬픔을 이겨내자'는 정신이라면, 능청은 그 정신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표정과 태도다.


탈춤이나 마당놀이에서 광대는 양반을 조롱하고선 천연덕스럽게 "아, 이게 아니었나?"라며 시치미를 뗀다. 이 능청스러운 연기가 없었다면 광대의 비판은 날카로운 풍자가 되어 공격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능청은 한국 코믹 연기의 필수적 요소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은 아내 이일화에게 구박받는 상황에서 정색하고 싸우는 대신, 온갖 능청을 떨며 위기를 모면한다. 시청자들은 성동일의 능청에 웃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가족에 대한 애정과 삶의 애환을 느끼며 따뜻한 공감, 즉 '해학'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타짜'의 백윤식이나 '범죄와의 전쟁'의 최민식 역시, 그들의 명연기는 능청이라는 기술이 없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능청이라는 기술이 있기에, 한국의 해학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더피가 심각한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화분 세우기를 반복하는 행동, 즉 행위 자체는 진지하지만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엉뚱함이 바로 능청의 발현이다.


해학적 요소 세 번째는 관계지향성이다. 서구의 유머, 특히 스탠드업 코미디와 같은 형식은 종종 '직설적'이며 유머를 구사며 사람 자신을 주목의 중심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의 해학은 간접적인 방식을 선호하며, 타인을 돋보이게 하거나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관계 지향적 목적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 안에서 개인의 재치를 과시하기 위한 유머는 자칫 '까불이'처럼 가볍게 비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문화적 가치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개인의 독창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유머는 자신의 지성을 증명하고 사회적 우위를 점하는 도구다. 반면, 관계와 조화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거나 특정 개인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방식의 유머는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더피가 만들어내는 웃음 역시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의 유머는 캐릭터 자체가 가진 결핍과 허술함에서 나온다. 더피는 자신을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루미와 진우를 부각시키고 화해시켜주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마지막 해학적 요소는 곱씹음이다. 서구 유머가 즉각적이고 직설적인 웃음으로, 빠른 리듬감과 재치에 중점을 두면 반면 해학은 상황의 맥락, 관계의 미묘한 뉘앙스, 캐릭터의 처지 등을 곱씹을수록 생겨나는 웃음이다. 서구 유머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점은 ‘부조화’다. 웃음은 예상과 어긋나는 상황에서 발생하며, 우리는 이 어긋남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 농담의 흐름에서 청중은 먼저 어떤 기대를 형성하고, 그 기대를 깨는 정보가 등장하면 순간적인 긴장과 충격을 느낀다. 이 부조화가 적절히 해소되면서 웃음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현대 인지모델은 유머를 이해하는 과정을 더 세밀하게 설명하는데, 특히 ‘정교화’ 단계가 중요하다. 정교화란 농담의 이해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맥락, 개인적 경험, 정서적 의미를 곱씹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웃음은 단순한 놀람의 반응을 넘어 공감, 풍자, 감동, 심지어 씁쓸함 같은 다양한 감정으로 확장된다. 서구 스탠딩 코미디의 즉각적인 폭소가 단기적인 인지적 쾌감을 주는 데 그친다면, 한국 해학의 곱씹는 웃음은 문화와 가치, 인간관계 같은 더 넓은 맥락과 연결되는 깊은 웃음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유머는 관계 지향적이면서도 깊은 정교화 과정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드라마의 코미디는 셋업-펀치라인 구조의 농담이 아니라, 관객이 서서히 인식하게 되는 익숙한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다. 성동일과 이일화 부부의 끊임없는 다툼은 표면적으로는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애정이 깔려 있다. 시청자들은 이들의 관계를 지켜보며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고 공감하며 웃게 된다. 이 웃음은 "나도 저런 적 있는데"라는 인식과 공감의 반응이다. 이는 즉각적인 자극이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된 관계와 기억을 반추할 때 비로소 깊어지는 '곱씹는 웃음'의 전형이다.


더피는 넘어진 물건은 무엇이든 다시 세워놓으려는 강박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다. 이 상황에는 명확한 펀치라인은 없다. 웃음은 우리가 이 모순, 즉 엄청난 힘과 사소하고 온화한 기벽의 병치를 '곱씹을' 때 형성된다. 그 웃음은 단순한 농담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를 사색하는 정교화 과정의 결과물이다. 부조화-해소 모델은 유머를 '문제 해결' 행위로 본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더피가 보여주는 웃음은 이 역설을 해결하는 펀치라인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역설 자체를 함께 공감하며 사색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해학의 곱씹음은 퍼즐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역설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정서적 공간에 머무는 것이다. 웃음은 논리적 종결이 아닌, 정서적 수용의 결과물이다.


더피가 보여준 해학은 웃음이 타인을 무너뜨리는 칼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를 감싸는 담요가 될 수 있음을, 나아가 가장 깊은 갈등마저 인간적인 연민으로 녹여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분열과 냉소, 날카로운 풍자가 만연한 시대에 『케이팝 데몬헌터스』가 제시한 이 부드러운 웃음의 길은 그래서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성취는 K-콘텐츠의 위상을 높인 것을 넘어, 삭막한 세상에 인간애를 회복시키는 이야기의 힘, 즉 한국적 해학이 지닌 치유의 가능성을 세계인의 가슴에 깊이 새겼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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