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비폭력성의 기원

유교의 비폭력 철학과 국가 폭력 트라우마의 결합

by 김욱

한국의 길거리 다툼은 종종 독특한 광경을 연출한다. 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갈 듯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양측은 좀처럼 먼저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성이 오가고, 때로는 상의를 벗으며 임박한 충돌을 예고하지만, 그 주먹은 대부분 뻗어지지 않은 채 만류하는 주변인들에 의해 싱겁게 끝나곤 한다.


폭력을 주저하는 모습은 공권력의 대응에서도 나타난다. 격렬한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하기보다 방어벽을 세우고 대치하며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한다. 직접적인 체포나 강경 진압은 가능한 한 자제하며 상황을 관리한다. 다른 나라였다면 폭력으로 번졌을 상황에서도 한국의 시위 현장은 시민들의 비폭력성과 경찰의 절제된 대응 덕분에 거의 언제나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비폭력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일단은 폭력에 대해 매우 엄격한 사법 체계에 있다. 한국의 형법 제21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정당방위의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실질적으로 거의 사문화된 조항에 가깝다. 2014년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약 60년간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14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개인이 자력으로 폭력에 대응하는 행위를 사법부가 매우 엄격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한국의 사법 철학은 개인의 자력구제권보다 국가 주도의 사법 절차와 공공질서 유지를 우선시한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싸움의 경우 양 당사자가 서로 폭력을 유발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순수한 방어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최초의 공격에 반격하는 순간 법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사건을 ‘쌍방폭행’으로 본다. 이는 폭력의 위험을 개인 판단에 맡기기보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통제하려는 원칙의 결과다.


폭력을 통제하려는 철학은 경찰 활동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 경찰은 갈등 상황에서 물리력 사용을 최소화하고 비폭력적 해결을 우선하도록 훈련받는다. 특히 총기 사용은 엄격히 제한돼 있으며, ‘치명적 공격’에 직면한 경우에만 최후의 수단으로 허용된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치안 유지의 원칙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메시지기도 하다. 시민들은 경찰이 물리력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갈등을 가라앉히려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폭력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규범을 강화하게 된다. 경찰은 단순한 법 집행 기관을 넘어 국가가 기대하는 시민의 행동 양식을 몸소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인 셈이다.


한국 사회의 비폭력적 태도는 단순히 법과 제도의 결과만은 아니다. 그 기저에는 폭력을 바라보는 철학적·문화적 관점이 깊게 깔려 있다. 이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 사회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서구의 역사와 종교가 폭력을 어떻게 해석하고 정당화했는지를 살펴보면, 동아시아가 폭력을 바라보는 태도의 특징이 한층 선명해진다.


중세 유럽에는 ‘결투 재판’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결투에서의 승리는 단순한 힘의 우열이 아니라 신이 승자의 편에 서서 정당함을 증명해준 결과로 간주됐다. 폭력은 야만적 행위가 아니라 신의 뜻을 드러내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기독교의 ‘정의로운 전쟁론’이나 이슬람의 ‘지하드’는 전쟁을 신의 뜻을 실현하는 거룩한 행위로 규정했다. 십자군 전쟁도 이런 사고방식 속에서 성지 탈환이라는 종교적 명분 아래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유일신 문화권에는 신의 절대적 의지를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신성시하는 교리적 장치가 있다. 이런 사고는 폭력에 대한 심리적·윤리적 저항감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반면 유교를 비롯한 동아시아 사상에서는 폭력을 정당화할 초월적 존재가 없다. 폭력은 신의 개입이 아닌 인간의 실패로 해석된다. 유교의 목적은 신의 뜻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간의 조화와 사회적 안정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폭력은 질서를 파괴하는 미개한 행위일뿐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항상 비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폭력, 한국전쟁의 참상, 그리고 수십 년간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 폭력은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제주 4·3 사건, 5·18 민주화운동 같은 국가 폭력은 한국 사회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 기억은 권력의 폭력에 대한 공포와 뿌리 깊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폭력의 시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한국 사회는 폭력에 아주 예민한 사회가 됐다. 사소한 폭력에도 집단적 트라우마가 쉽게 소환되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민들은 국가가 폭력을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그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강력한 통제 장치와 높은 수준의 자제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비폭력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폭력을 인간의 실패로 규정하는 유교적 철학과 20세기에 경험한 폭력의 기억이 결합한 결과다. 유교 사상은 폭력을 정당화할 명분을 제공하지 않았고, 근현대사의 참혹한 경험은 폭력을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이 두 요소가 맞물리면서 한국은 폭력에 극도로 민감한 사회로 발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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