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잭 오 랜턴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 중 한 명과 핼러윈 퍼레이드에서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백설공주는 디즈니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하얀 얼굴에 짙은 검은 머리와 긴 속눈썹, 그리고 선명한 두툼한 붉은 입술을 하고 공주 드레스를 입었다. 옆에 서 있는 난쟁이는 공주보다 훨씬 키가 크다. 170센티가 넘는 키에 갈색 얼굴, 노란색 비니를 쓰고 노란색 긴 팔 브이넥 셔츠와 초록색 조끼, 짙은 갈색 칠부 통바지를 입었다
"엄마, 엄마가 나보다 훨씬 큰데 왜 난쟁이야? 내가 난쟁이 옷을 입고 엄마가 백설공주 드레스를 입어야 할 것 같아."
어린 희재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가 난쟁이라고 하면 난쟁이가 되는 거야. 이름 붙이기가 그래서 중요한 거야."
희재는 엄마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백설공주 드레스를 입는 게 좋아서 더 묻지 않았다.
희재는 여섯 살 때의 핼러윈을 미국 버지니아에서 보냈다. 첼로 교수인 아버지가 안식년 프로그램으로 1년 미국 연수를 갈 때 함께 갔었다. 미국 유치원의 핼러윈 퍼레이드에 참여할 때의 모습이 유튜브의 쇼츠 영상처럼 희재의 머릿속에서 내내 반복되어 재생된다.
핼러윈 퍼레이드 때 난쟁이 분장을 한 엄마는 잭 오 랜턴을 들었다. 철제로 된 오렌지 색 호박 안에 플라스틱 촛불이 깜박였다. 엄마는 낮에 들었던 호박등을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낮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불빛이 밤이 되자 거실 테이블에서 밝게 빛났다. 아버지는 교회 성가대와 합주반 크리스마스 연주회를 위해 연습하느라 10월부터 계속 바빴다.
깜깜한 거실의 1인용 소파에 앉아 희재는 3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었다.
"엄마, 이름만 붙이면 거인이 난쟁이가 될 수 있는 거야? 엄마가 아까 그랬잖아. 이름 붙이기가 중요하다고."
엄마는 한참 동안 희재의 눈을 바라보았다.
"글쎄. 어쨌든 이름 붙이기는 중요해. 모든 게 상대적인 거니까. 네가 작은 아이한테는 거인처럼 보일 수 있어. 엄마한테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느껴져서 그래. 여기까지밖에 설명을 못하겠네."
희재는 엄마가 솔직했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엄마는 희재를 정말 아끼고 사랑했다. 나이가 들면서 희재는 엄마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이 거인을 난쟁이라고 부르거나 난쟁이를 거인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걸. 거인을 난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자신이 거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쟁이를 거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희재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희재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영주는 혀를 쯧쯧 차며 대답했었다.
"너는 은근 순진하다. 뭔가 얻을 게 있을 때 그러는 거지."
희재는 엄마가 돌아가신 지 1년 후 새엄마를 만났다. 지금은 친엄마와 산 세월보다 새엄마와 산 세월이 훨씬 길다. 하지만, 새엄마와의 관계에서 15센티가 더 큰 희재는 항상 난쟁이다. 희재는 돌아가신 엄마가 그립다.
*
희재의 새엄마 화진은 희재를 세 번이나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세 번 다 온몸에 소름이 확 돋으며, 희재의 방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희재와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 같았다. 커튼이 갑자기 바람도 없는 데 펄럭이고,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핸드폰을 자신이 건드린 기억도 없었다.
화진은 희재를 만났을 때 자신이 왜 민교수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알았다. 화진은 대학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민교수를 만났다. 무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전문대를 졸업한 후 화진은 하루하루 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디자인 계통의 학과를 졸업했지만,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기 쉽지 않았다. 서울의 비싼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쓰리잡을 뛴 지도 거의 10년이 되었다. 에코백 디자인과 제작, 판매일을 하고 있지만, 매출은 거의 없었다. 잡화점에서 판매원도 하고, 백화점 팝 업 스토어가 열리면 대행사에서 연락을 받아 한시적으로 일했다. 편의점은 화, 목, 토요일에 출근했다.
태풍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뭇잎들이 작은 새처럼 떼 지어 날리던 날, 민교수가 편의점 문을 열고 나타났다.
민교수는 딸기 구미와 카페라테를 사서 계산대로 왔다가 화진을 보는 순간 얼어 버렸었다. 민교수가 화진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는 동안 화진은 시선을 무시하고 바코드를 찍었다. 민교수가 결제를 하지 않아 화진은 계산을 독촉했다.
"손님, 결제하셔야 합니다."
민교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결제를 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편의점을 나갔다.
민교수가 그 날이후 매일 김밥과 커피를 사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편의점 안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화진은 그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분명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2주가 지난 후, 화진은 학생 두 명이 민교수에게 인사를 하는 걸 보았다. 민교수는 학생들의 인사를 받자, 고개를 끄덕인 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남은 학생들은 김밥과 라면을 먹으며, 민교수에 대해 말했다.
"교수님이 왜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지? 교수회관도 있는데. "
"뭐 어때. 라면은 국민음식인데. 먹고 싶었겠지. 나도 한 번씩 그냥 라면이 당기는 데."
"성격이 악기를 따라간다고 저분은 참 편안하고, 좋은 분 같아. 첼로소리가 듣기 부담 없잖아."
"부담이 없는지는 모르지만. 전공해서 교수까지 된 것 보면 엄청 부잣집 아들일걸.
컵라면에 삼각 김밥이라. 학생 코스프레하는 거야?"
화진은 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쥐구멍에도 볕 든다는 말이 떠올랐었다. 학생들의 대화를 엿들은 날 이후, 화진은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화진은 긴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바르고, 풍성한 머리를 컬을 말아서 띄웠다. 특히 육감적인 입술에 코럴 핑크 립스틱을 발라 반짝이게 꾸몄다. 화진이 공을 들여 꾸미고 다닌 지 얼마 후, 민교수는 데이트 신청을 했다.
첫 데이트 날, 화진은 민교수와 국립 극장으로 오페라를 보러 갔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이었는데, 화진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오페라 공연이었다. 신기하게도 화진은 오페라 VIP 석에 앉아 '축배의 노래'를 들을 때 어색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된 자신이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라고 느껴졌다. 적어도 화진 자신이 춘희역을 맡은 오페라 여주인공보다 아름답다는 확신이 들었다. 민교수는 정신없이 화진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진은 선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민교수는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자상한 남편이다. 그를 똑같이 닮은 아들 희준과 자신을 그대로 닮은 딸 희재가 있다. 새로 사귀는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이 희재의 새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화진은 희재를 세 번이나 살려냈다. 민교수는 고마워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이번에 희재를 살려냄으로써 화진은 자신이 본 것이 헛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처음에 희재를 살렸을 때만 해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 번 다 잭 오 랜턴이 화진을 희재에게로 이끌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희재 침대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철제 잭 오 랜턴의 불빛 같았다. 화진은 두려움을 가지며 희재방에 놓인 잭 오 랜턴을 살펴보았지만, 만질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인가도 의심하게 되었다.
화진은 처음 잭 오 랜턴을 보았을 때,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핼러윈이 될 때마다 보았지만, 왜 사람들이 호박등을 만드는지 화진은 몰랐었다.
[인색한 잭이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서 지옥에 가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잭은 착하지 않아서 천국에 못 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가려고 했으나 악마와의 약속 때문에 지옥에도 갈 수 없었다. 구천을 떠돌게 된 잭은 너무 어둡고 깜깜하고 추워, 악마에게 작은 불길을 요청한다. 악마는 잭에게 작은 불덩이를 던져 주었고, 잭은 호박을 파서 그 안에 불덩이를 넣고 밤하늘을 떠돈다.]
화진은 잭이 지옥에 가지 않은 운 좋은 이야기로 읽었다. 자신도 천국에 못 가면 잭처럼 떠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무서워졌다.
"잭은 실제로 있어. 나는 세 번이나 보았는데. 희재가 제발 이제 멈췄으면....."
화진은 최근 성당을 다니면서 배운 십자가 성호를 오른손으로 긋고 두 손 모아 기도를 시작했다.
*
희재는 열 살 때 바닷가에서 엄마를 잃었다. 여름 방학 때 동해안으로 여행을 갔었다. 바닷가 호텔에서 수영복을 입고 엄마와 아버지 차를 타고 해수욕을 하러 갔던 것이 기억난다. 아버지는 바닷가에서 모래찜질을 했었고 희재는 튜브를 타고 엄마와 바닷물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희재가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 후 엄마의 장례식이 있었다. 희재는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바닷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 기억의 공백을 희재는 셀 수 없는 이야기로 채우고 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엄마의 죽음과 희재가 연관되어 있다. 희재는 자신이 원인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엄마는 수영을 잘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희재에게 핼러윈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어린 시절 핼러윈 퍼레이드의 기억이 반복재생된다.
그리고 'treat or trick'이란 말이 소름 끼치게 들린다. 엄마는 희재를 최선을 다해 대접했지만 희재는 엄마를 괴롭혔다.
희재는 핼러윈 때 엄마의 영혼을 만나고 싶었다. 엄마를 껴안고 마음껏 울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희재는 자랄수록 죄책감이 커갔고 우울해졌다. 그러다, <소울메이트>에서 구원을 찾았었다. <해피 핼러윈>은 엄마에게 바치는 곡이었다. 희재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하늘에서 엄마가 지켜본다는 생각이 들어 더 힘이 났었다.
<소울메이트> 활동이 멈추었을 때, 죄책감과 무력함이 거대한 파도처럼 희재를 덮쳐 왔다.
희재는 죽어서 엄마를 만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죽을 수가 없었다. 새엄마가 번번이 희재를 살렸다.
희재는 사경을 헤맬 때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잭 오 랜턴을 보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불빛이다. 랜턴을 잭이 든 게 아니라 엄마가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란 비니와 셔츠, 헐렁한 칠부 통바지를 얼핏 본 것 같다.
희재는 엄마가 잭처럼 천국도 지옥도 가지 않고 자신의 곁을 떠돈다는 초현실적인 사실을 믿게 되었다.
"나는 다시 음악작업을 해야 해."
희재는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 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