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나의 귀국
희재는 변했다. 우울하고 말이 없어졌었다. 지나가 기억하는 희재의 어린 시절 모습은 특별했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아, 예쁜 얼굴이 더 예뻐 보였다. 유치원 시절 사진을 보면 희재는 엄마 옆에 바짝 붙어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나는 일곱 살 때 희재와 <딩동댕 음악 유치원>을 다녔다. <딩동댕 음악 유치원>은 일반적인 유치원 프로그램에 악기 수업을 기초로 한 작곡 수업도 제공했다. 작곡가인 원장의 철학에 따라, <딩동댕 음악 유치원> 아이들은 악기를 다루면서, 절대 음감을 기르고, 짧은 소절의 간단한 곡들을 만들곤 했다.
희재의 엄마는 피아니스트였다. 희재엄마는 희재와 지나가 유치원을 다니기 전부터 <딩동댕 음악 유치원>에서 피아노 수업과 작곡 수업을 가르쳤다.
희재와 지나는 음악을 전공한 부모님 덕인지, 조기 교육 때문인지 짧은 소절의 동요를 지어 가사를 붙이곤 했다. 그러면, 희재의 엄마는 희재와 지나가 만든 곡들을 악보에 옮겨주곤 했다.
지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희재와 둘이서 희재의 엄마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작곡 수업을 받았었다. 희재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지나는 가족들과 희재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했었다. 장례식 참석을 마무리하고 지나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엄마와 이모와 할머니는 장례식장에서 나와, 화장실 입구 옆에 동그랗게 서서 대화하고 있었다.
"희재가 눈 깜짝할 사이에 튜브와 함께 파도에 휩쓸려서, 희재 엄마가 죽을힘을 다해 바닷가로 구해 왔나 봐요. 희재 아빠가 희재를 받아 진정시키는 동안, 엄마가 균형을 잃었는지 얕은 물에 쓰러졌대요. 그렇게 얕은 물에서 익사할 줄은 다들 생각도 못했대요."
이모는 가슴을 양손으로 껴안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쩌냐. 희재가 자라면 힘들겠다. 애가 몰라야 할 텐데."
"참, 사는 게 뜻대로 안돼. 그렇게 죽고 못살던 모녀가 헤어지다니."
할머니는 우셨다. 엄마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할머니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다, 지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엄마는 지나를 꼭 안아 주었다.
"사랑해, 우리 딸, 혹시, 조금 전에 무슨 말 들었니?"
"뭘요?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지나는 왠지 희재 엄마가 돌아가신 이유를 알면 안 될 것 같았다.
*
희재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상한 소리를 했다. 엄마가 잘 때 찾아와서 자장가를 불러 준다는 말을 가끔씩 했었다. 지나는 함께 놀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같은 아파트 한 라인 501,701 호에 살았고, 희재는 지나와 뭐든 같이하고 싶어 했다. 지나도 희재가 뭔가 애틋하고 , 가엾어 보여서 희재를 항상 챙겼다. 지나가 <소울메이트> 멤버가 된 것도 희재 때문이었다.
그랬던 희재가 <소울메이트>로 활동하면서 다시 변했다. 텐션이 올라가고 밝아지긴 했는데, 지나를 전처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지나보다는 한나, 영주와 더 각별하게 지냈다. 지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지나는 희재가 종잡을 수 없었고, 가까이하기에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영주는 지나의 쌀쌀함을 비난했지만, 지나는 호구가 되기 싫었다.
귀국할 가방을 싸면서 지난 일이 떠오르자, 지나는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멤버들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지나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한국으로 가져갈 물건들 바라보았다. 요리책과 요리 도구들이었다. 이태리어로 된 요리책 2권, 자신이 직접 쓴 레시피들이 적힌 노트 3권, 요리 칼 세트와 연육 방망이, 치즈 그라인더였다. 레몬 슬라이서도 있다.
모데나 지방에서 생산된 20년 된 발사믹 식초와 한국 백화점 가격과 차이가 많은 올리브유를 한 병씩만 샀다. 요리는 지나가 마음을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재료들을 사느라 시장을 다니며, 신선한 야채들과 과일들을 보는 것만 해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꽃보다 야채라는 말이 나올 만큼 파프리카의 다양한 색들은 달콤하고 아작거리는 식감만큼 예뻤다. 당근, 양파, 오이, 마늘, 파들은 한국 것과 비슷하게 생겨 지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다양한 모양의 토마토는 지나가 이탈리아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지나는 이태리에 와서 처음으로 납작 복숭아를 먹어보았다. 칼로 다양한 요리 재료들을 다듬고, 해체해서 맛있는 음식들이 완성되었을 때 지나는 효능감을 느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사는 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나는 마음이 차분해지자, 멤버들 간에 무엇이 문제였나 꼼꼼히 생각했다. 한나와 재민, 두 사람이 <소울메이트>의 시작과 끝이었다. 희재와 영주는 그들을 믿었을 뿐이다. 한나, 배신자 한나는 돌이켜 생각하면, 노래에는 재능이 없으면서, 이기적이었던 최악의 친구였다. 한나의 유일한 장점이 있었다면, 사람들을 잘 홀리는 거였다. 한나에게는 사람들을 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지나는 고개를 여러 번 흔들었다. 그런 뒤 손으로 서너 번 머리카락을 빗었다. 헝클어졌던 머리모양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귀국해서 희재와 영주를 만나기로 결정한 이상 과거의 일을 자꾸 떠올려봤자 좋을 게 없었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마자, 희재를 만날 것이다.
*
지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갈 가방 2개를 다 챙긴 후, 어머니께 전화했다. 어머니 수민은 지나의 전화를 차분하게 받았다.
“그래. 이제야 집으로 오는구나. 외할머니, 이모가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했는지.”
수민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살짝 얹어져 있었다. 지나는 전화 목소리를 들으며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지나가 로마로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 명수는 우렁찬 목소리로 반갑고 사랑한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지나는 로마에 도착했을 때 명수의 격렬한 환영을 받았다. 아버지는 2인용 스마트 자동차를 운전해서 지나가 가져온 많은 짐들을 실는데 힘들어했다. 그래도, 지나가 작은 가방들로 나누어 가지고 오는 바람에 작은 차에 어찌어찌 집어넣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을 출발했었다. 작은 차가 지나가 움직일 공간이 없이 꽉 찼었다. 공항을 출발해서 지나가 예약한 호텔이 있는 나찌오날리 거리에 도착할 때까지 명수는 지나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지나야, 너도 이제 훌쩍 커서 엄마, 아빠가 어떤 관계인지 파악할 나이가 되었네. ”
지나는 순간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다
“어떤 관계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 궁금했어요”
“사랑이 떠난 사이. 애정은 있지만 함께 할 만큼은 없는 사이.”
“얼마 전 아버지는 저를 매우 보고 싶고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하셨잖아요"
명수는 지나를 말없이 바라보다 차창밖을 바라봤다. 오후 5시가 넘었지만 로마 가는 길은 햇빛이 강하게 내려쬐었다.
“일단 도착해서 이야기하자.”
지나는 자신의 아버지가 본인의 꿈보다 가족과 머무르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유도화들을 바라보며, 지나는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떠올렸었다.
지나가 기억하는 한 성악가인 아버지는 이태리, 정신과 의사인 어머니는 서울에서 거주했다. 두 분은 같은 대학교에서 만났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살고 싶은 장소가 달랐다.
지나는 "한 집에서 살다 보면 가족이 된다." 란 주제로 만든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지나의 부모님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아니, 반대되는 줄거리였다. '부부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남이 된다.'란 생각이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었다.
지나가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은 마침내 이혼했다.
*
지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생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고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당분간 올 수 없는 '지상에 없는 곳' 같은 베네치아를 실컷 걷고 싶었다. 그래서, 돌로미티에서 베네치아로 간 후 이틀 동안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수단인 배를 타고 내리며, 베네치아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다. 그 후, 산타 루치아 역에서 이딸로를 타고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내려 , 아버지가 공연하고 있는 상 빠올로 성공회 교회 근처 지올리 나찌오날리 호텔에서 3일을 묵었다. 지나는 아침마다 트레비 분수까지 걸어가 사진을 찍었다. 하루는 드레스를 입고 갔다. 혼자 드레스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여자와 서로를 찍어 주었다. 새벽이라
아름답고 웅장한 분수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근처 크루아상 맛집을 들렸다.
저녁에는 3일 연속 아버지가 참여하는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공연을 보았다. 아버지와 결혼할 애인이 주인공이었다. 아버지는 마침내 살고 싶은 곳이 같고,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하는 아내를 만났다. 아버지는 남자 주인공의 엄격한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지나는 무대 바로 앞에서 배우들의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작은 성공회 교회에서의 공연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지나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아버지의 공연을 보면서 확인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지나를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데려다주었다.
지나는 앞으로 아버지를 볼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헤어질 때 아버지와 포옹했다. 아버지는 어릴 때도 안아본 적이 없었던 다 큰 딸을 어색하게 안으며 등을 두드렸다.
"잘 지내. 혹시, 한국가게 되면 연락할게."
지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지나에게 이태리는 제2의 고향 같았다. 지나는 가족을 떠나 생활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와는 결별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 가서 어머니로부터도 경제적 독립을 할 것이다.
<소울메이트>를 해체하면서 재민은 꽤 큰 목돈을 멤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지나는 최근 몇 개월동안만 어머니에게 손을 벌렸었다. 이제는 가지고 있던 돈이 바닥을 드러냈고, 영주와 희재의 압박도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무엇보다 지나는 음악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창문을 내려다보니 이태리의 밤풍경이 보였다. 지나는 다시는 이태리에 오지 못할 것 같아 , 밤하늘만 보이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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