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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Sep 13. 2024

<크리스마스 파티>

5. 선우의 사슬

선미는 손에 든 핸드폰을 바라보다 근심스러운 빛이 얼굴에 가득한 채 네이버로 검색했다. 선준의 한의원의 위치, 영업시간등은 그대로였다.


"방금 들은 선준의 상태로는 도저히 의사생활을 하기 힘들 것 같은데."


선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획사 직원을 한의원으로 보내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괜히 선우와 얽혀 소문이 날 수도 있다. 선미가 판단하기에 선준이 일을 하고 든 안 하고 든 가족관계가 회복될 것 같지도 않았다.


 치매걸린 어머니가 선준을 알아볼지도 궁금했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간 선준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선준도   아픈 어머니에게 측은함을 느낄 것 같지 않았다. 선준의 어머니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고 점점 강화되고 있었다. 선준은 집이나 병원으로 찾아가고 싶다는 선미의 제안을 강하게 거절했다. 게다가, 다시는 연락하지 않기를 바랐다.


선미는 선준이 그나마 전화를 받아준 사실이 고마웠다. 우울증으로 엄청 힘들다는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건강 조심하고 어쩌다 생각나면 전화할게."

선미는 부드럽게 말하며 , 전화를 끊었다.


선미는 선준과 전화하는 내내 어머니가 좀 더 아들에게 자상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안타까운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었다. 어머니는 사랑이란 이름 하에 집요하게 선준을 가스라이팅하고 싶어 했다. 선준은 결혼 후 어머니를 버렸다. 선미는 모자 사이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이 떠올랐다. 부적절하고 언짢은 일들이었다.


 선준이 재수할 때, 평소처럼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선준은 지쳐서 잠깐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다.

어머니는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있는 그에게 고함을 질렀다.


" 왜 볼 때마다 텔레비전만 보고 있어."

어머니는  화를 냈다. 


선준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쉬고 있었다.  어머니는  선준의 침묵과 본인의 불안감을 못 견뎌 손에 잡히는 두루마리 휴지를 던졌다. 가만히 앉아 있던 선준은 폭발했다. 주먹으로 자신의 방문을 있는 힘껏 쳤다. 나무문이 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문의 부서진 부분에 선준의 주먹 자국이 푹 들어가 남아 있었다.


" 아, 아, 아파."


선준은 크게 고함을 지르고 방문을 꽝 닫으며 들어가 버렸다. 주먹이 무척 아픈지 부여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해서 닫힌 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성난 목소리로 고함치며 부서진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문 열라니까."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없었다.


다친 선준은 치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선준은 너무 화가 나서 방으로 숨어 버렸다. 다음날까지 선준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서야 피부가 시퍼렇게 되고 골절로 부어오른 손의 통증을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왔다.

선미는 서둘러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선준은 거의 3주를 학원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자꾸 이러면 이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아버지도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선미는 온화한 아버지의 얼굴이 빨개지며 고함치는 모습을 처음 봤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한 번만 더 선준이를 괴롭히면, 나는 당신 얼굴 안 볼 거야."


아버지는 아내의 지나친 간섭과 폭압 때문에 선준이 가출할까 두려워했다. 아버지의 끝이 갈라지는 성마른 목소리는 떨면서 아내에 대한 절망감을 드러냈다.

그래서였을까? 선미는 일생에서 가장 가슴에 사무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선준의 손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학원을 다시 다니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오전 9시쯤 어머니가 외출복 차림을 하고 허둥지둥 집을 나서는 것을 선미는 목격했다.


"엄마, 어디 가?"


"선준이 수능 시험지 받으러 가. 녀석이 재수해서 속상해 죽겠는데, 다행히 누가 수능시험 문제 알려준다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오래. 나는 바쁘니까 네가 선우 미술학원 가는 것 좀 챙겨. 선우는 어제 새벽까지 그림 그리느라 지금도 자고 있어. 여름 방학이 정말 중요하니까 꼭 깨워서 밥 먹여서 보내야 돼."


선미는 어머니가 헛것에 홀려 있는 것을 보았다. 최근 일의 충격으로 어머니의 조울증 증세가 악화되어 조현병으로 진행되었다.


"알았어요. 엄마, 잘 다녀오세요. 혹시 힘든 일 생기면, 아빠한테 꼭 연락하셔야 해요."


"알았어"


어머니는 빨리 택시 잡아타고 가야 간신히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며 뛰다시피 골목을 나갔다.

선미는 곧장 아버지한테 전화했다.


"아빠, 엄마가 많이 아픈 것 같아요. 헛게 보이고, 들려요.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고, 대입 수능 문제 받으러 간다며 서둘러 나갔어요. 어떻게 해요? "


"알았다. 일단 오늘은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으니까 좀 지켜보자. 집은 충분히 찾아올 거야. "

아버지는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전화를 끊었다.


                                          *


 창밖으로 한강이 흘러가고 있다. 강 곁으로 수많은 차들이 도로를 달린다.

나무들은 내리쬐는 햇빛을 더 짙은 초록잎들로 만들어 내고 있다.


"언니, 오늘 스케줄 어떻게 돼? 강릉에 같이 갈 수 있어? 안 되면, 나 혼자 현정 씨랑 가도 돼?”

선우가 전화를 했다. 강릉 별장으로 작업을 위해 가겠다고 말했다.


"왜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소리를 해? 오늘 엄마 생일이라 점심 식사 같이 하기로 했잖아?"

선미는 선우의 태도에 갑자기 짜증이 났다. 선준은 이해가 가도 선우까지 어머니를 피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언니, 나는 시간 없어. 어차피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걸. 나는 작업할래. 그림 배경을 고쳐야겠어.

언니가 시간 안되니까, 현정 씨와 다녀올게."


선미는 선우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 알았어. 작업하고 와. 꼭 현정 씨와 가고."


선우는 어머니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 선준과 다른 이유였다. 선미는 선우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알았다. 선미도 여동생이 앞으로 엄마처럼 유전자스케줄에 따라 헛것을 보고 헛것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

선우가 정신병원을 한 달 간격으로 들락날락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선미는 냉장고에서 집에서 가져온 몇 가지 반찬들과 어머니가 좋아하는 황태 미역국을 꺼냈다. 반찬들과 국을 보냉 가방에 넣은 후 사무실을 떠났다. 어머니 집으로 가는 길에 유기농 빵집을 들러 2인용 작은 수제 케이크도 샀다. 선미와 어머니는 얼그레이 케이크를  좋아했다. 선미는 자신의 입맛이 어머니와 비슷한 것도 유전의 영향일까 궁금했다. 유전이 인간을 지배하는 정도를 생각하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선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앉아 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벨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줘서 마루로 들어서는 선미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보고 있는 화면의 내용을 이해하는지 가끔 미소를 짓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우울하고 초조하고 불안하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평화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더 이상 무엇인가에 쫓기고 강박적으로  욕망하지 않았다. 선미는 부엌에 있는 식탁 의자에 앉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30분쯤 지나서야 어머니는 인기척을 느끼고 선미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많이 뵌 분이네요.”


어머니는 처음 선미를 본 것처럼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소파를 손바닥으로 툭툭 친 후 소파 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아요. 같이 텔레비전 봐요.”


선미는 그때서야 케이크를 들고 어머니 옆에 앉았다. 박스에서 생일 케이크를 꺼내 티테이블 위에 놓았다. 선미는 엄마의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요양보호사와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다. 어머니는 신나서 박수를 쳤다. 하지만 입으로 불어 촛불을 끌 줄을 몰랐다. 선미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숨을 불어서 촛불을 껐다. 케이크를 잘라 디저트 접시에 나눠 담아 먹었다. 선미는 준비해 온 음식으로 어머니와 식사도 했다.


 선미는 식사 후 어머니한테 물어봤다.

“선준이 기억나? 엄마 아들? “


어머니는 멍하니 선미를 바라보다 천진한 어린이처럼 방긋 웃었다. 선미는 어머니의 반응에 숨쉬기가 답답했다.

 선미는 마침내 참았던 말들을 한꺼번에 쏘아붙이듯이 내뱉었다.


“엄마가 선준이 엄청 때렸지? 제일 에너지가 넘치고 명랑해서 엄마의 말 잘 안 들었잖아. 아빠가 약사를 그만두고 한의사 공부할 때, 엄마가 갑자기 조울증 와서 유난히 선준이한테만 화 많이 냈던 거 기억나? “


선미는 어머니의 멍했던 얼굴에서 한순간 반짝이는 눈빛을 보았다.


“재수할 때도 아빠 병원 물려받아야 한다고 엄마가 엄청 괴롭혔는데”


선미는 말투를 좀 누그려 뜨리며,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한의사 됐잖아. 아빠처럼.”

어머니는 말한 뒤 한숨을 푹 쉬었다,


“다행이다. 엄마가 기억하고 있어서. 안 그랬으면 나 울었을 거야. 선준이 요즘 너무 많이 우울하대. 살기가 너무 힘들어 죽고 싶대.”


어머니는 다시 티브이를 보느라 선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선미는 어머니 옆에 앉아 티브이를 보았다. 조용히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


 선미는 어머니 집을 나서면서,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며 요양보호사에게 용돈을 주었다. 선미는 어머니의 집에 올 때마다 요양보호사에게 선물을 챙겨주거나 오만 원을 주거나 해야 마음이 편했다. 선미는 요양 보호사와 얼굴을 마주치면 뭔가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직 대소변을 혼자 가릴 수 있어 요양 보호사에게 힘든 환자는 아니었다.  치매에 걸리면 환자의 본성이 드러난다는데 어머니는 공격성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친절하고 남을 괴롭히지 않았다.


 선미는 남편과 딸이 있는 가족 카톡방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후 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자정쯤 서울에 도착할 것 같아. 걱정 마."

선우는 지치고 졸린듯한 늘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가 선준을 기억하더라고. 잊은 줄 알았었는데."

선미는 안심이 되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뭐가 달라져? 나는 오빠가 엄마를 용서 못하는 것을 이해해."


선우의 말에  선미도 동의했다.

"나도 그래. 그래도 나는 엄마가 선준이를 기억하는 게 좋아. 덜 아픈 거니까."


선미는 <선우미 예술기획사 > 사무실에서 내일 11시에 K일보 김미경 기자와 인터뷰하기로 한 것을 선우에게 상기시켰다. 선우가 지난번처럼 잊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오전 9시쯤 현정 씨와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일렀다.  선미는 선우에게 강한 애착과 불안감을 느꼈다.


엄마랑은 다를 거야.”

선미는 운전을 시작하기 전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마음이 좀 차분해지자 운전대를 잡았다.


"<선우미 예술 기획사>가 지켜줄 거야. 정신병원에서 출퇴근하며 팔십 살이 넘도록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도 있어. 사람마다 운명이 달라."


 선미는 자동차 앞 풍경과 리어뷰 미러를 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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