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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Sep 18. 2024

<크리스마스 파티>

9. 외로움

진오는 카메라가 든 가방을 어깨에 멨다. 오늘은 모처럼 강원도 쪽으로 라이딩도 하고, 동해 바닷가 풍경도 찍으려고 아침 일찍 나섰다. 진오는 다른 동 주차장에 세워 놓은 오토바이를 탔다. 오토바이는 할리 데이비슨 하위 모델이었지만, 튜닝을 해서 상표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브랜드가 진오표라고 할 정도로 단순하게 검은색으로 튜닝되어 있었다.  진서는 진오가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진서는 어쩌다가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면 끔찍하고 소름 돋는다고 말했다. 진서의 전 남자친구가 마주 오는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생명을 잃을 뻔한 큰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진오는 그런 아내를 의식해서 오토바이를 본인이 사는 아파트동에서 꽤 떨어진 다른 동 지하에 주차했다. 진오의 아파트 단지는 지하동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게 해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게다가 진서가 모르도록 오토바이와 관련된 자동차세와 보험료 청구서 등은 다 회사로 오게 했다. 오토바이를 탈 때도 진서가 출근했거나, 여행 갔을 때 몰래몰래 탔다.

 이번 오토바이 여행도 진서가 오랜만에 언니들과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3박 4일 일정으로 남해로 여행 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오에게 오토바이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진오는 오토바이 덕에 혹독한 사춘기를 탈출했고, 진서와도 만나 결혼할 수 있었다.


진오는 중3 때 자상했던 어머니를 암으로 잃었다. 진오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는 건강 검진을 했는데, 난소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아무런 자각 증상이 없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이미 난소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그러나, 진오의 가족들은 수술하면 얼마든지 치료가능하다는 주치의의 말에 희망을 가졌다.  진오의 어머니 인영은 암 진단을 받은 얼마 후 수술을 받았다.

진오의 아버지, 영재는 회계사로 여의도에 있는 대형 회계사무실에 근무했다. 아내인 인영이 아프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사표를 내고 아내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됐고 항암치료도 5번을 했는데 , 인영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고통스러운 치료를 무사히 마쳤다.


 항암치료를 끝낸 후 인영은 기력이 많이 회복되자  가족들과 태국의 휴양지로 크리스마스 여행을 갔다. 태국은 건기라 날씨도 무덥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했다. 열대 지방에서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진오의 가족은 인영의 투병 생활의 마감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1년 뒤 인영의 다른 장기에서 전이된 암이 발견되었다. 암은 5년 동안 몸의 어느 곳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는 것을 완치라고 본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 5년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긴 세월이라는 것을 진오의 가족은 깨달았다.

 의사는 정기 검사에서 발견된  전이된 암을 수술하면 없앨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수술 후 인영은 정말 조심했다. 여행도 자제하고, 음식도 신경 쓰고, 집으로 오는 피티 선생님도 고용해서 운동도 꾸준히 했다.

인영은 남편이 대형 회계사무실을 그만두고 자신의 간병을 맡는 걸 매우 부담스럽고 괴로워했다. 


"영재 씨, 나를 마치 죽을 환자처럼 대하는 게 싫어. 자기는 자기일하고 간병인이나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 줘. 제발 부탁이야."

좀처럼 화나 짜증을 내지 않던 인영이었지만, 이번에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인영은 치료과정에서 가족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 있었다.  영재는 인영의 의견을 따라서  개인 회계사무실을 차렸다. 아내를 위해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일을 하며 인영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진오는 집에 돌아왔을 때, 아픈데도 반가운 얼굴로 웃으면서 자신을 맞이해 주는 어머니가 항상 감사했다.

진오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면서도 행복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인영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 후 진오를 낳기까지는 학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쳤다. 진오가 태어난 후, 인영은 전업 주부로 살았다. 진오는 외동아들이었다. 인영은 집에 있기를 좋아해서 진오가 학교 끝나고 왔을 때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인영은 책 읽기를 좋아했다. 인영의 손에는 거의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진오가 현관문을 열면, 좋아하던 책 읽기를 멈추고 아들의 간식을 살뜰히 챙겨 주었다. 

그랬던 어머니가 어느 날 사라져 버렸을 때 진오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인영은 4번의 암수술을 받았다. 마지막 수술을 받을 때 그녀는 회의를 느꼈다. 의사가 강경하게 수술을 권했고,

 치료에 희망을 잃은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인형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암은 죽은 것처럼 물러났다 어느새 다른 장기에 자리 잡고 탐욕스럽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인영은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남편에게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젠 뭔가 억지로 먹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싶지 않아"


인영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자신의 죽음을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인영은 특히, 진오에게  미안했다. 아들에게 뭔가 위로가 되는 말이나 글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글 때문에 아들이 자신의 죽음을 일초라도 더 경험하는 게 싫었다. 인영은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아들을 볼 때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인영의 눈동자는   짙은 밤색이 주류인  다른 한국인들의 눈동자와는 좀 달랐다. 밝은 갈색에 살짝 회색빛이 섞여 눈동자가 더 커 보여서 서클 렌즈를 낀 듯한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진오는 어머니가 아픔을 내색하지 않고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눈동자에서부터 슬픔이 시작되어 머리를 지나 심장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온몸이 슬픔에 젖어들 때, 진오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졌다.


평소와는 특별히 다르지 않던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인영의 하얀 피부가 자주색으로 변하며, 인영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급성 패혈증이었다. 병원에서는 응급조치를 했지만 그녀는 혈압이 저하되어 쇼크로 숨을 거두었다. 인영이 숨을 거둘 때 진오와 영재, 그리고 인영의 언니 인지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

영재는 호흡을 거칠게 쉬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진 아내를 울면서 바라봤다. 아내가 눈을 감은 후에도, 영재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진오는 자주색을 띤 어머니의 몸을 차마 만지지 못해 영재의 팔을 잡았다. 인영의 나이  43살이었다. 사람이 죽을 때, 귀의 감각이 가장 오래 남아 있다는 걸 들은 영재는 아내의 사망진단을 내리는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아내의 귀에 속삭이듯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진오에게도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는데, 진오는 얼음이 된 듯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잠자는 모습처럼 누워있는데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어른이 아니라고 진오는 어머니를 잃은 후 생각했다.

진오는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의미가 없는지를 어머니의 죽음이 진오 안으로 훅 침범한 순간 깨달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 진오는 아직도 가슴에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영재는 아내가 죽고 나서 장례식을 치르느라 무척 바빴다. 진오도 학교를 쉬고 어린 상주로서 아버지와 같이 상주노릇을 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화장터로 떠나는 리무진 안에서 영재는 인영의 영정 사진을 들고 진오 곁에 앉았다. 영재는 화장터에서 아내의 시신이 담긴 관이 용광로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화장 대기석에서 어머니의 관이 다 타는 것을 기다리며 울고 있는 진오를 보았다. 영재는 이제 정말 끝이라 생각하자 눈물이 흘렀다.


 '하얀 가루로 변해 항아리 안에 담긴 아내.'


영재는 대학교 2학년 때 [미술의 이해] 수업 시간에서 관람하고 후기를 쓰라던 전시회에서 인영을 처음 만났다.

수업이 대형 강의실에서 진행되고 인원이 워낙 많아 학교에서는 미처 인영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시회에서 그림을 바라보고 서있는 아름다운 인영에게 영재는 먼저 말을 걸었다.


"저도 이 그림이 유난히 마음에 듭니다."

영재는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느라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저도 그래요.”

인영은 밝은 눈동자를 반짝이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영재와 인영의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재는 처음 만났을 때 21살이었던 인영의 삶이 이렇게 빨리 멈출 줄은 몰랐다. 진오가 엄마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아팠다. 자신의 어머니는 72세라도 정정해서 며느리의 장례식장에서 가끔 부족한 음식과 음료를 보충하고 있었다. 영재는 자신도 당하지 못한 일을 진오가 겪는 것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납골당에 인영을 두고, 영재는 쓸쓸하게 진오와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인영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진오는 자겠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재는 인영과 지냈던 안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인영의 베개를 도우미 아주머니가 빨아서 다시 씌워 놓았는지 인영의 체취 대신 섬유유연제의 장미향이 났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진오는 방으로 들어가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엄마의 부재가 주는 억울함을 없애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진오는 게임 속의 인물들은 죽어도 리셋되면 계속 살아나는데, 어머니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에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다. 진오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게임에 빠지긴 했었다. 아픈 인영은 자주 누워 있었고, 사춘기인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을 치지 않았다. 영재도 한 번씩 진오가 학원을 다니고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아들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 외에 학습적인 면들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진오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본격적으로 게임에 빠져 들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 잠들어서 학교에 지각하기가 일쑤였다. 진오는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없는 텅 빈 집이 싫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방방을 돌아다녔다. 부엌 창가있는 뒷 베란다 문까지 열어 보았다. 뒷 베란다는 인영이 종종 빨래를 하느라 머물었던 곳이었다. 진오가 거실을 지나 앞 베란다 문을 열자 어머니가 키우던 화초들이 축 늘어져 시들고 있었다.

진오는 물조리개에 물을 가득 채우고 죽기 직전의 식물들에게 물을 주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소에 소중하게 가꾼 친구들을 이제는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식물들에게 물을 준 후, 진오는 어머니가 앉아서 책을 읽던 1인용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여기 앉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오는  속상하고, 울한 마음이 들자 배가 고팠다. 진오는 소파에서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가,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평소에 데워주었던 붕어빵이 눈에 띄었다. 진오는  붕어빵 두 개를 꺼내서 접시에 담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렸다. 붕어빵을 보자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눈물이 나도록 보고 싶었다. 영재와 진오는 붕어빵 부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체형이나 얼굴형, 이목구비가 판박이었다. 누가 봐도 아버지와 아들인지 금방 알았다.

아름다운 인영을 닮았으면 진오가 훨씬 을 텐데 안타깝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진오는 예쁜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진오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자신이 <은하철도 999>의 철이고 어머니는 메텔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만화 주인공 가족들이라고 행복해하기도 했다.


진오는 데운 붕어빵을 우유 한 잔과 방으로 가져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새벽이 될 때까지 계속 게임을 하다 오전 4시쯤 잠들었다. 진오와 영재는 자신들이 정상적인 애도과정을 거치는 줄 알았다. 영재는 아내가 죽었는데, 진오는 어머니가  죽었는데 슬프고 힘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이란 진오의 나이는 아주 어리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독립할 나이는 아니어도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는 나이였다. 영재는 진오의 담임 선생님의 반복적인 전화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은 학교 상담실의 상담 결과에 따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권고까지 영재에게 전화로 알려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진오가 힘든 건 알지만, 진오의 상태가 정상적인 애도 태도를 넘어선 것 같아요.

제가 일단 학교 상담교사에게 진오의 상담을 신청했어요. 상담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영재는 진오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재는 아내가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계속 차에서 머물렀다. 음악을 듣거나 자거나 하며 차 안에서 두세 시간을 보낸 후 집에 들어온 적이 많았다.

 영재는 진오는 살가운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재는 진오가 세세히 신경 쓰는 것을 오히려 간섭으로 느끼는 예민한 나이라 원하는 것을 하도록 놔두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그런 생각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사실은 영재 자신이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서 아들을 방임했다.

영재는 퇴근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이제 아들을 위해 끝 모를 슬픔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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