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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pr 12. 2024

한국말 되게 잘 하시네요?

네? 한국사람인데요?


이 말을 언제 처음 들었더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오페어 아이들과 함께 있었을 때이니 미국에 온 지 1-2년 차였다. 나는 평소와 같이 우리 막둥이를 데리고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스토리타임 (아이들 대상으로 이야기도 읽어주고 율동도 하고 노래도 하는 프로그램) 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같이 책도 읽고 같이 놀고 있었다. 아이와는 항상 영어로 이야기를 했으니 내가 왜 갑자기 한국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이유였는가 갑자기 한국말을 했나보다. 그랬더니 거기 있던 한 아이의 한국인 보호자(엄마인지 내니였는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가 갑자기 말했다.


"어머, 한국어 잘 하시네요?"


나는 당황했고, "네? 네" 하고 대답했다.


"여기서 태어난 거 아니었어요?"


"아뇨,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어머, 그렇구나"


나는 아마, 이 근처에는 한국인이 잘 없으니까, 주변에 한인 2세가 많아서 한국어 원어민 대화를 많이 안 들어본 사람인가보다, 했다.




몇 년이 흐르고, 원감으로 일 할 때였다.


한인 혼혈인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내니 아주머니가 한국인이셨고 그 아이의 큰 언니도 한국말을 잘 했다. 나는 미국에서 일하면서 직장에서 한국인 아이를 만나면 종종 그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대화를 했다. 주로 영어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는 한국어를 가정 외의 사회에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고, 영어가 낯선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언어를 들려주며 안정감을 찾고 유대감을 형성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날도 아이가 와서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데 문득 그 아이의 내니 아주머니가


"한국말을 엄청 잘 하시네요?"


"예? 한국사람인데요?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ㅎㅎ"


"그래도요!"


아주머니는 웃으며 총총 떠났다.



읭? 그래도요라니? 한국에서 태어났다니까요?




 

최근엔 방송인 조나단, 타일러 같은 사람들 덕분에 좀 덜 하다고 해도, 한국은 다른 인종의 비율이 적은 편이여서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다른 인종인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외국인이며 한국어나 한국말이 서툴 것이라고 가정한다. 어디에서 왔냐고 묻고, 왜 왔냐고 묻는다. 물론 한국에 가면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


반면 미국 땅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그 사람의 배경은 다양하니, '저 사람은 이럴것이다' 라고 가정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특히 업무나 전문배경에서는 불법이다.


미국에서도 주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문화가 다양한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금물이다. 저 사람이 아랍사람처럼 보인다고해서 아랍에서 왔으리라는 가정은 매우 위험하다. 물론 관광지나 보수적인 사람들, 혹은 미국에 갓 온 이민자들은 비슷한 질문을 악의없이 정말 몰라서 한다.


예전에 중동지역 배경의 새 직원을 뽑아 교육을 하는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데 그 직원이 나에게 "너는 중국에서 왔으니까 뭐는 어떻고" 이런 얘기를 했다. 그 직원은 전혀 모르고 스테레오타입에 따라 이야기를 한 것일 뿐이었으므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상사로서 걱정이 되어서 "캘리포니아에서 인종이나 국적을 가정하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지 못해서, 다양한 배경인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불쾌하다고 클레임을 보고하면 불법으로 간주되거나 처벌받거나 시말서를 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방금 나에게 한 이야기는 누가 당신에게 그럼 너 'Isis나 탈레반은 무슨 상황인지 아냐'고 묻는 상황과 비슷하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직원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무튼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대한 대부분의 판단기제는 다음과 같은 듯 하다.


1. 이 사람이 영어에 외국어 억양이 있으면 다른나라 어딘가에서 이사람 생애 내에 왔구나 -> 모국어를 잘 하겠다

2. 이 사람이 영어에 억양이 없으면 여기사람이구나 (여기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릴 때 왔음) -> 모국어 혹은 부모 국가의 언어를 잘 못 할 수도 있음


반대의 상황도 있다.


3. 이 사람이 영어가 아닌 언어를 굉장히 잘함 - > 이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생애 내에 여길 왔구나(1세대 이민) -> 영어에 모국어 억양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

4. 이 사람이 영어가 아닌 언어를 하긴 하는데 영어 억양이 있음 -> 이 사람은 여기 사람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국어를 배웠구나 -> 영어를 잘 할 것이라고 추측



그러니까, 분명 내가 영어를 하는데 다른언어 억양이 없으니 여기서 태어났거나 적어도 아주 어렸을 때 왔을 것이라고 가정을 했는데 한국어를 영어 억양 없이 한국사람처럼 (한국사람이지만 ㅠㅠ) 하니 저 틀이 깨져서 혼란스러운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람에게 "한국어 되게 잘하시네요?" 같은 신기한 문장이 나타나 버린 건 아닐까.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한양희작가님으로부터이다. 같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옆 테이블에도 한국계 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셔서 영어로 대화를 하게됐다. 작가님과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가 영어를 하니 옆 테이블 분은 "오, 영어 엄청 잘하시네요" (위의 3번 가정-한국어를 잘 하니까 영어에 한국어 억양이 있어야함- 이 깨짐) 하셨다.


그러고 짐을 싸서 나오는데 이번에는 한작가님이

"아니 잠깐, P작가님 그러고보니깐 한국어를 엄청 잘하시네요?"

"예?ㅋㅋ갑자기?ㅋㅋㅋㅋㅋ"

"그렇잖아요, 여기 엄청 오래 살았는데!"

"아, 한국어 잘 한단 얘기 들어 본 적 있어요.. 글로 쓸 거에요ㅋㅋㅋ"






물론 오래 대화를 하면 뽀롱이 난다. 이 전 화에서 얘기했듯이 어떤 경우에는 영어가 먼저 떠오르고 어떤 경우에는 한국어가 먼저 떠올라서 코드스위칭으로 왔다갔다 해버리거나,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버퍼링이 일어난다.


"한국어 잘하시네요"라는 말이 처음에는 좋았다. 내가 영어를 잘 한다는 뜻인 것 같아서. 새로운 모험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반증같았다. 그 때는 어차피 미국에 오래 살 생각도 없었고, 아는 한국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는 가슴이 아릿해졌다. 나는 한국사람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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