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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n 10. 2024

“아이를 좋아해서요”의 함정

“직업이 필요해서요” 는 어때요

나는 처음부터 아동학 루트를 타려던 건 아니었다.


나는 성악을 하고 싶었었다. 중학생 때 선생님께서 작은 재능이나마 알아봐 주시고 "예고를 가 보는 건 어떠냐" 하고 말씀을 주신 이후부터였다. 물론 부모님은 딱 잘라 안된다고 접으셨고, 14살 밖에 안 된 나도 음악이란게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 전공인가 알았기 때문에 조르기는 커녕 한 마디도 더 꺼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나니 딱히 내가 뭘 하고싶은지 나도 잘 몰랐다. 학교에서 진로 관련 설문지를 작성해서 내라고 할 때 마다 어려웠다.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할 수는 없는 꿈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선생님을 적어서 냈다 (그 땐 교사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


대학에 갔을 때도 아동학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우리학과는 1학년이 지나고 2학년 때 전공을 정하고, 3학년으로 가면서 세부전공으로 좁혀가는 형태였다. 원래는 다른 걸 공부하려고 했다. 졸업해서 회사 취업하기 좋은 걸로.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그러려고 했다.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나는 현장에서 일을 해 보고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하 어린이집과 홈플러스에서 인턴을 했다.


나는 빠르게 현장에 빠져들었다. 시키시는 일은 다 열심히 했다. 아동학이란 건 참 신기한게, 비록 개론었을 뿐일지라도 그 안에서 배우는 발달과 교육이론들이 실제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만나면 "아! 이게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구나" 하고 연결이 됐다. 마치 눈을 꽁꽁 동여맨 채로 더듬더듬 그림을 만져보려고 하다가 4D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 선생님들께서 정말 잘 해주셨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다. "매번 개미처럼 일만 하는데 조금 쉬면서 해요" 하고 쉴 시간을 챙겨주시거나 많이 먹으라고 점심도, 간식도 챙겨주셨다.


아이들이 예뻤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이 교사와 상호작용하면서 점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사회정서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것을 보는 게 뿌듯했다. 선생님들의 단어, 어투, 말하는 방법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애썼다. 그걸 내가 습득해서 내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하면, 작은 것일 뿐이지만 바람직한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였다. 진로를 정했던 것은.





일하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어린이집 교사의 꿈을 꾸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교사를 왜 하고 싶으시냐고 물으면, '아이를 좋아해서' 라는 대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라는 대답도 많았다.


1. '아이를 좋아해서'

솔직히 말하면, '아이를 좋아해서'는 사실 안 하느니만도 못한 대답이다. 면접에서 저 대답이 나오면 예의상 끄덕여 주긴 하지만 긍정적인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물론 아이들과 일해야 하니 '아이들을 싫어한다, 쳐다보기도 싫다' 는 당연이 문제가 되지만, '아이를 좋아해서'는 마치 달리기 선수를 해야하는데 걸을 줄 안다는 대답과 똑같다.


'아이를 좋아한다'는 상당히 넓고 모호한 개념이다. 지나가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는 걸 좋아한다는 건지, 자신의/일가친척의 아이를 좋아한다는 건지. 혹은 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긍정적인 경험이 있었다는 건지 그 상황이 무궁무진하다. 어떤 관계의, 어느 연령의 아이를, 어떤 상황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 일 때 아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지, 그리고 그 '좋아한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마음/감정/의지 상태를 나타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비슷한 대답을 하고자 하시다면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이면 좋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관계의 아이와 무엇을 했는데, 그것이 아이/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고 나는 이렇게 마음먹었으며 이렇게 나아가고 싶다' 같이. 내가 교사를 채용할 때 보고자 했던 것은 좀 더 '교육자로서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액션' 과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자 하는가' 하는, '내'가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2.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이 대답은 어떤 의도에서 나왔는가가 중요하다. 만약 '내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서 아동발달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와 비슷한 맥락이라면 플러스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아봤으니까 안다' 라면 곤란하다. 일단 본인 아이를 낳지 않고도 훌륭하게 영유아를 보육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언사인 동시에, 본인의 육아경험을 너무 일반화할 가능성이 있다.


본인의 아이는 본인 책임이다. 자신의 상황과 가정에 맞게 규칙을 정하고 바꿔도 된다. 반면 어린이집 교사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법령에 맞게 업무를 행해야 하며, 그 아이들이 각기 다른 가정에서 저마다의 행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아이를 내 아이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교사로서 다른 아이를 내 아이처럼 사랑하는 건 좀 지양해야한다. 내가 아이를 낳아봤으니까'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좋은 시작점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교사의 자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직업이 필요해요' 는 어떨까?


나는 긍정적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마음도 높이 사고,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commitment (무언가를 지속해서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을 내비치는 말이라고 본다. 물론 '그냥 직업 아무거나 찾다가 해볼라고요' 이런식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실제로, 나와 우리 원장이 '먹고살 직업이 필요하다, 열심히 하겠다' 라는 대답을 주었던 교사들은 꽤 괜찮은 직무/근태를 보여주었고, 교육 등을 거쳐서 승진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발전하고자 하는 교사를 보면 힘이 났고, 나도 원장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당신이 전문적인 지식이 이미 있는가 없는가 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며 배우고 성장하려는 마음이 최고의 무기다. 지식은 없으면 배우면 되고, 있으면 갈고 닦으면 되지만, 닫힌 자세는 뭘 어떻게 해 보기가 어렵다.


어쩌다 보니 미국에 오게 됐는데 새로운 커리어를 향해 열정이 가득하시다면, 보육교사를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다.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1:1 채널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에 새 터전을 잡고 영유아 교사의 길을 찾고 계신 분, 학부생인데 미국에서 아동관련 경험을 알아보고 계신 분, 미국에서 교사 면접을 연습해 보고 싶으신 분 등등 께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1:1 멘토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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