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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l 08. 2023

집샌물샌! 미국에서 집에 물이 새면 2

이거슨 해결인가 아닌가.. /무도유니버스에는 모든 것이 있을지니


옛날옛날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정형돈 새로 이사한 집에 물이 샌다고 놀렸었다. 형도니님은 아니 그런 걸 왜 방송에서 얘기하냐고 억울해 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웃겼나 모르겠다. 나중에는 아예 레슬링 편 캐릭터에 집샌물샌을 붙일 정도로 대인배였던 그. 막상 내집이 집샌물샌이 되고 나니 누가 나한테 그렇게 놀리면 주먹이 나갈 것 같다ㅋㅋㅋ 무한도전에는 그 무엇이든 있다더니, 우리집 물 샌 것도 포함이 되나?


아래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https://brunch.co.kr/@c39a98fae8d84a9/27



놀랍게도 11시-1시 사이에 오겠다던 업체는 (미국은 꼭 이렇게 시간을 뭉뚱그려 주고 그보다 늦게 오기 일쑤다) 오전 10:59에 문을 두드렸다. 무뚝뚝한 효도르 느낌이 나는 직원은 (아니, 여기서 무도가 또 나오다니!) 우리의 얘기를 천천히 들었다. 언제부터 물이 새기 시작했는지, 윗집이 뭐라고 했는지 묻더니 그럼 패널을 열어서 보겠다며 차에 돌아가 사다리등 장비를 가지고 돌아왔다. 물이 그렇게 많이 샜고 윗층에서 물을 쓰고 있었다면 아마 윗집 욕조 배수구 있는 곳이 새는 것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를 욕실에 남겨누고, 남편과 나는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서재에 들어가 각자 할일을 하(는 척 하)면서 일이 어떻게 되고 있나 귀를 열어 놓았다.


패널에 페인트가 덮혀 칠해져 있어 열려면 칼로 잘라야 하는데 괜찮은지 상관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자 상관이 집주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고 그는 끙끙거리며 커터칼로 패널 라인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칼로 잘라내기 시작하자 물이 더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대 패널을 열었을 때 물이 한사발 왈칵 쏟아져 효도르직원의 후드티가 잔뜩 젖고 말았다. 물이 생각보다 많이 고여있었던 것이다.


직원은 내부를 한참동안 살펴보더니 단지내에서 일하고 있던 다른 직원 B와 연락을 했다. B는 윗집으로 올라가 욕조에 물을 틀고, 물이 새는지 우리 집에 있는 직원이 면밀히 살펴보았다. 둘의 전화통화가 들렸다.


"물 틀었어. 어때?

"아직 안 새는데.. 압력으로 새는 걸 수도 있으니까 아주 끝까지 가득 채워봐. 넘침방지구멍(욕조나 세면대 상부에 있는 구멍)에서 새는 걸 수도 있고 하니까."

--콸콸콸 물소리가 난다.

"지금은 어때?"

"아주 가득 받았어?

"응. 아주 가득 받았고 넘침방지로도 물 넘어가고 있어"

"아무 것도 안 새는데.. 이제 물 빼봐 새나 보게"


남편과 나는 서재방에서 숨 죽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물 다 뺀거 맞아? 아무것도 안 새는데.."


으앙 ㅜㅠㅜㅠ 안돼 정말 윗집의 하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둘은 윗집의 세면대에도 물을 채웠다 빼보고 변기물도 몇 번이나 내려봤지만 아무데도 새는 데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직원에게 "윗집이 조개를 씻고 있을 때 혹시 욕조 밖으로 물이 흥건히 고였다거나 그랬을 가능성은 없나" 하고 묻자, 휴대폰을 통해 똑같은 질문을 윗집 직원 B 에게 물었고, B는 윗집 청년에게 전달해서 물었다. 직원들이 조개 얘기를 들었을 때 미묘하게 표정관리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윗집 청년은 민망했는지 "글쎄, 모르겠는데,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고 하나 마나 (앗! 또 무도) 하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뭐야 저 대답은.


어찌됐든간 윗집에서 원인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우리집 직원은 상관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보고했다. 윗집에서 이것저것 해봤지만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더 윗집일 가능성도 있으니 계속 더 윗집으로 올라가며 같은 작업을 해보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상관은 그래... 하면서도 근데 그냥 어디선가 조금씩 새는 걸 수도 있다 (이게 뭔소리야)고 무마하려는 것처럼 들렸다. 우리집 효도르 직원은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물이 엄청나게 많이 고여있었고 내가 패널을 열었을 때 물이 엄청 많이 쏟아져서 내 옷이 다 젖었다. 건물은 다 콘크리트고 그 안에 파이프가 매설된 것도 아니며, 물의 양으로 봤을 때 어디서 많이 새는게 분명해서 그냥 철수할 수가 없다 고 받아쳤다. 직원이 물벼락 맞은게 우리에겐 이득이 될 줄이야.



효도르 직원은 점심을 먹고 윗집의 윗집에서도 똑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혹시나 두 층 위 그 집일까 했던 희망은 곧 의미가 없었다. 그 집도 아니었다. 나와 남편은 속이 탔다. 이렇게 계속 윗층으로 계속 올라가야 하는 건가, 물이 새는 원인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 이렇게 계속 하다가 못찾아서 결국 철수해 버리면 그 비용은 우리가 내야하는 건가. 마음 한 구석에서 윗집이 원인일 것이라는 의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윗집은 수리를 한 지 한참되어 굉장히 낡았고, 무엇보다 그 청년의 태도?가 영 마음에 걸렸다.


효도르 직원은 상관인지 동료인지로 보이는 제 3의 사람 C와 접선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C의 의견으로 윗집에 가서 다시 한 번 실험해보기로 했다. 효도르 직원이 우리 집에 온지 벌써 4시간쯤 지났다. 이번엔 찾아야 할텐데, 오늘이 지나면 또 주말 내내 물 샐지 모르는 걱정에 불안해 해야 할텐데, 하며 직원들에게 음료수를 가져다 주었다.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대화내용이 실시간으로 들렸다. 직원 C는 올라가서 욕조에 물을 받고, 샤워기도 틀고 물을 여기저기 뿌려보았다.


"엇! 방금 뭐 했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한 번 해봐!"  효도르 직원이 말했다.


남편과 나는 서재에서 속이 씨끄럽게 눈을 마주쳤다.


"아, 보인다 어떻게 떨어지는 지 여기서 보여. 잠깐만 동영상 좀 찍고"


잠시 후 윗집에 올라가 있던 동료 C도 우리집에 합류했다. 효도르 직원은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원인을 찾았다고 했다. 윗집이라고 했다. 욕조 배수구가 아니고 욕조 벽에 타일도 깨지고 방수도 안 됐는지 어쨌는지 벽에 물이 많이 튀면 새는 것이라고. 벽에서 떨어진 물줄기는 윗집 욕조 배수구의 파이프를 타고 우리집 천장으로 똑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아, 찾았다. 드디어! 아니 조개를 뭘 어떻게 씻었길래 벽에 물을 부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효도르 직원은 아파트 HOA에게 윗집 화장실 벽이 원인이라고 보고서를 써서 올릴 것이며, 윗집에게 그 화장실 욕조를 사용하지 말고 어떻게 수리를 해야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겠다고 하면서 떠났다. 우리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과연 집샌물샌 문제는 해결인 것인가? 글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물이 새는 원인은 찾았는가? 그렇다.

누수의 원인을 찾기 위한 비용이 들었는가? 아니다.

물이 계속 새서 고통을 받고 있는가? 아니다.                    -> 이렇게 보면 해결 인 것 같다.


그러나,


윗집 벽은 고쳐져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아니다.

데미지를 입은 우리집 천장은 고쳐졌는가? 아니다.


윗집은 단 한번도 우리에게 연락해오거나 제스쳐를 취한 적이 없다. 오히려 초반에는 자기 집이 아니고 윗집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계속 해댔따. 심지어 원인이 자기네집 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아무 소식도 없다. 게다가, 그 며칠 계속 쿵쿵거리더니 주말에 이사를 나가버렸다(!?). 윗집 원주인은 청년이 아니고 그의 노모인데, 노모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나가야 했던 것인지, 아니면 수리를 해서 다시 살기 위해 나간 건지, 집을 내놓은 건지, 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나간건지 알 수가 없다. 만약 누수 원인을 고치지 않고 집을 판매하려고 내놓는다면? 세입자를 들인다면?


우리는 HOA에게 누수의 원인은 윗층이었고, 윗집이 수리를 할 것인지, 우리 집 화장실 천장의 데미지는 언제 고쳐줄 것인지 묻는 이메일을 보냈다. 윗집 이사 나가버렸다는 내용도 함께. 일주일 반? 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고 있고, 윗층은 어제 오늘 누가 못질을 하고 쿵쿵거리는 것으로 보아 요새 뭔가 하고 있다. 분명히 업체직원이 복도화장실 고칠 때 까지 쓰지말라고 한다고 했는데, 욕조에 물 쓰는 소리가 때때로 들린다. 이제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겠다. 욕실천장은 울룩불룩 마음에 안들지만 일단 물은 새지 않고 있으니.. 계속 HOA에게 물어보는 수 밖에...




덧,

어떻게 윗집이 이사 나간 걸 알았냐면,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집이 추워졌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는 미국에서 독특하게 온돌난방을 하는 곳이다. 윗집 할머니는 하루 24시간 여름이고 겨울이고 언제나 바닥 난방을 최고로 때던 사람이라 그 온도가 전해져서 우리는 생전 우리 바닥을 틀지 않아도 언제나 실내온도 24-26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부터 실내온도가 3-4도 훅 떨어졌다. 맨날 반바지에 반팔티만 사모으던 남편은 갑자기 춥다고 점퍼를 주워입기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도 자주 보일러를 켜게 되었다. 이건 맘에 든다.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건물들처럼 우리도 냉방은 없고 난방만 있기 때문에, 차라리 추우면 난방을 켜는 편이 편하기 때문이다. 더우면 창문을 열면 되지만 벌레가 별로 없어서 방충망도 없는데다가 우리집 고양님이 자꾸 베란다 난간을 넘나드는 통에 (실제로 추락하기도 했었고- 8층에서 떨어진 내 고양이) 문이 열려있다면 지키고 앉아있어야 한다. 보일러 때문인지 요즘 고양이들이 랜덤으로 바닥에 앉아있는데, 거기가 따뜻한 지점인가보다 싶어 괜히 발을 대보게 된다. 귀엽다.

보일러 문 앞. 저기가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래 따뜻한지점ㅋㅋ




안타깝게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3화- 집주인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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