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esidio Library Jun 24. 2023

집샌물샌! 미국에서 집에 물이 새면 1

한국에 아빠가 다 고쳐줄 수 있는데 ㅠㅠ


화요일 저녁에 볼일을 보고 집에 왔는데, 남편이 갑자기 얘기했다.


"듣고 싶지 않겠지만, 저기 복도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는 거 같은데.."


뭣이???


아, 정말이었다. 욕조 위 천장에는 열수있는 패널이 있는데 그 틈으로 물이 똑 똑 떨어지고 있고, 천장 페인트도 물이 들어차서 올록볼록한 것이었다. 아.. 안돼 ㅠㅠ




샌프란시스코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듯 우리 건물도 엄청 오래 되었다. 건물을 부시고 새로 짓는 것이 규제 때문에 쉽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건물 관리를 잘 해서 계속 고치고 리모델링하면서 산다. 집 보러 다닐 때 1990년대 건물만 되도 오, 꽤 최신이구만 하면서 다녔고, 60-80년대 건물만 되어도 그래 이정도면 괜찮지, 했다. 보통 보러가면 1900-1950년대 건물이 흔했다. 뭐랄까, 들어서면 박물관 냄새가 나는 집들이 많았다.


어찌됐든간, 렌트에서 물이 새면 그저 집주인이나 매니지먼트에 전화를 해서 고쳐달라 그러면 된다. 문제는 이게 자가에 아파트 건물일 경우이다.



미국에는 Home Owner's Association(HOA)라고 하는 기관이 아파트와 타운하우스(높은 빌딩이 아니라 평지에 주택이 개별호수인 단지 주거형태)에 그 단위 마다 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입주자 대표회의와 비슷하나 이보다 좀 더 힘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HOA는 아파트와 단지를 유지하기 위해 일련의 '작은 정부'처럼 작용한다. 아주 디테일한 규정집이 있고, 정기적으로 오픈/디렉터전용 회의를 하며 안건을 처리한다. 대충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1. 아파트 단지에 어디가 고장났을 때, 건물 외벽의 보수 등 전반적 단지 관리, 보수


2. 각각 집 호수들이 이사와서 리모델링할 때 이상한 곳을 때려 부숴 하자를 초래하지는 않는지, 허가되지 않는 구멍 같은 것을 뚫다가 파이프나 전기선 같은 것을 건드리지 않는지 감시


3. 이웃 간 문제가 있을 때 중재.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집주인에게 벌금 징수


4. 관련 법이 바뀌거나 했을 때 대표로서 행동


5. 새로운 안건을 받아들여 처리하기


큰 그림으로 보자면 좋은 제도이다. 개별의 호수가 멍청한 짓을 해서 건물에 하자를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고, 서로의 자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중재하고 관리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니까.


불편한 점이라면 내 집을 고치는데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것, 한 다리를 더 건너야하다보니 뭔가를 할때 오래 걸릴수 있다는 것. 매 달 HOA fee를 내야 한다는 것 (건물 관리비, 쓰레기 처리비용 등 유틸리티와 비상시에 사용할 돈을 모아두는 것까지 포함, 건물이 오래될 수록, 고급일 수록 더 비싸다).




그렇기 때문에 물이 새더라도 우리 마음대로 누구를 불러서 저 천장을 까볼 수 없고, HOA에 먼저 보고를 해야한다. 일단 남편이 윗층에 올라갔다왔다.


남편: "So.. he was washing shells" 그러니까.. 셸을 씻고 있던데

나: "Shells? like.. shells??" 셸.. 조개 껍질 같은거? (셸은 그냥 뭔가의 껍데기라는 포괄적인 뜻도, 어패류 껍질의 뜻도 있다. 욕조 안에서 씻는데 들을 만한 단어가 아니라 당황해서 다시 물어봄)

남편: "Yeah.. water in the tub, washing shells. I saw like an abalone shell." 응. 욕조에 물 있고.. 조개껍질 씻고 있던데. 전복껍질 봤어.


그.. 그래 뭐 뭘 씻든지 그건 자기 자유니까. 일단 남편이 봤을 때 화장실이 낡긴 했는데 외형적으로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고, 윗집도 욕조물을 빼면서 명함을 줬단다. 우리는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장 동영상을 찍어서 HOA에 메일을 보냈다. 윗집 사람이 준 명함에 있는 이메일을 CC했고, 문자메세지도 보냈다. "HOA에 이메일 보냈고 당신을 CC했다, 거기서 사람을 보낼 때 까지 그 화장실 사용하는 것을 피해주면 감사하겠다" 하고. 윗집은 메일에도, 문자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 느낌이 좀 쎄 한데.


잠을 자야했는데 걱정이 되어서 잠이 오질 않았다. 아 누구 보내는데 엄청 오래 걸릴텐데. 윗층이 만약 모르쇠로 나오면 어떡하지, 우리가 돈 내야 되면 내는 거라지만 엄청 비쌀텐데 아씨. 아빠 보고싶다.



아빠는 만능이다. 전기, 공사, 집수리, 화장실은 물론 누수까지 전문업자로, 중학생까지만 해도 아빠 일하는 데에 주말이면 도와주러 따라다니곤 했다. 그래서 아빠가 하는 일이 엄청 힘든 일인 것을 잘 알았다. 옆에서 뭘 들고 있거나, 잡고있거나, 시키는 걸 가지고 오거나 하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엄청 고됐다. 무거운 고무 호스같은 것을 한가득 지고 아파트 꼭대기층을 오르내리기도 했고, 한겨울에는 밖에서 함께 일하면서 손발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가 따뜻한 곳에 오면 반대로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동반했다. 아빠는 엄청나게 꼼꼼해서, 뭐든 대충 하는 법이 없었고, 마감도 예쁘고 확실했다.


그래서 자라면서 집에서 뭐가 수리가 필요하다거나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보일러가 안 된다든가, 수도가 얼었다든가, 심지어 전자피아노가 고장나도 아빠한테만 얘기하면 뚝딱 하고 해결이 됐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미국에서 집을 구매하면서 현실을 마주쳤다. 때때로 수리를 하고, 고쳐야 되는데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거니와 정말 터무니없게 비쌌다. 힘들게 사람을 구하면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많고, 뭐든지 너무 오래 걸렸고, 누구를 믿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왜 이게 이렇게나 스트레스인가 했더니 한국에서는 아빠가 있었기 때문에 겪어본 적이 없는 종류의 걱정이었던 것이다.


좀 편안하게 사나 했더니 또 물이 샌다니. 정말 아빠를 비행기태워 데려오고 싶을 정도였다. 아빠 ㅠㅠㅠㅠㅠㅠㅠ


침대에 누워 스스로 되뇌었다. HOA에서 곧 누굴 보내 줄 것이다. 고쳐야 되면 고쳐야지. 돈 내야 되면 내면 되지. 내 멘탈을 유지하자.




다음 날 아침 HOA에서 답장이 왔다. 수리 업체에 방문하도록 보고를 넣었고, 거기서 스케쥴을 잡기위해 전화를 할 것이다. 만약에 우리 집이나 윗 집에 귀책사유가 발견 될 경우 수리비가 청구될 것이다- 라는 안내였다.


물은 아직도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페인트가 우글우글 일어나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페인트가 일어난 부위를 누르면 뭉클뭉클 한 것이 수분이 느껴졌다.


수요일 내내 우리는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사실 놀랍지 않다). 목요일 저녁 즈음이 되자 물이 맺혀있는 것은 보였으나 더이상 떨어지지는 않았다. 페인트가 우는 범위는 더 넓어졌다.


우리는 마침내 아파트 연계 수리업체 본사를 Yelp에서 찾아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스케쥴을 잡았다. 금요일 11시-1시에 오기로 했다. 아, 이제 다 괜찮을 것이다. 패널을 열어 윗집 파이프에서 물이 새는 것을 금방 찾을 거고, 그럼 고치는 것이야 쉬울 것이다. 윗집 책임일 테니 그쪽이 수리비를 물 것이다.


Oh, well. 그랬으면 좋으련만.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전 10화 8층에서 떨어진 내 고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