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눔자식아
작년 2월 쯤이었다.
평소처럼 퇴근해서 친한척 하는 야옹이들에게 간식을 주었다. 너네 살찌니까 고만먹어 하고 더 달라는 상전님들을 밀쳐내고 저녁을 준비했다.
보통 한 밤 열시즈음 되면 벌써 밥 달라고 나와 남편을 에워싸고 왔다갔다 야옹야옹 정신이 없는데, 이 날은 한 마리가 보이질 않았다. 미국고양이들이지만 "배고파?" 하면 밥 주는 줄 알고 저 멀리에서도 뛰어오는 애들인데, 이상하다. 어디 문 닫힌 방에 갇혀있나 하고 문이란 문은 다 열어봤다. 배고파를 연신 외치고 고양이 간식을 아무리 애타게 흔들어도 이놈이 나타나질 않았다.
남편과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화장실 공사를 할 때라 욕조를 뜯어놨는데, 혹시 그 밑으로 숨어들어갔나 머리를 디밀고 이름을 불러봐도 소용없었다. 우리집 발코니와 옆집은 콘크리트 칸막이를 사이로 통해있어서, 혹시 그리로 넘어갔나 (옆 집은 비어있었다) 올려다봐도 없었다. 밑에 층으로 떨어졌나,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우리는 바깥에 나가서 아파트 화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12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밤이었고, 이 고양이는 갈색과 검정색 털을 가지고 있어 보일 리 만무했다. 애초에 우리야옹이들은 길거리 출신 셸터에 있던 애들을 입양해왔는데, 자기들 기분 좋을 때나 나한테 와서 아양떨지 자기들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밥이고 뭐고 꽁꽁 숨을 뿐 집사든 누구에게든 절대 오지 않았다. 어디 바깥에 꽁꽁 숨어있다면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혹시 아파트 복도로 나가서 어디 숨어있나 해서 꼭대기 층 부터 훑고 내려와봤다. 없었다.
남편은 도어맨에게 사정을 알리고 우리 집 호수 1층 패티오를 볼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 우리집은 8층. 만약에 떨어져서 죽었거나 부상당했다면, 거기에 있을 터였다. 그 집은 리모델링을 하느라고 패티오에 온갖 자재와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도어맨은 우리를 딱하게 여겨 문을 열어주고 남편과 함께 둘러보았다. 남편은 빈 손으로 돌아왔다. 없었다고 했다. 이미 돌아본 아파트를 돌고 돌고. 아파트 내 아이비 풀숲이 너무 우거지고 넓어서 거기 어디 숨어있다면 알 수가 없는데. 거기 작은 설치류가 많이 산다고 했는데, 그거 사냥하러갔나. 가끔 그 설치류 사냥하러 여우나 코요태도 나타난다고 아파트에 써 있는데, 걔들이 물어갔나.
밤은 점점 늦어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없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했다. 남편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밝을 때 내일 더 찾아보자고 위로했다. 우리는 자려고 누웠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8년 전 호스트패밀리와 함께 살 때, 그 집에 개 2마리와 고양이 3마리가 있었다. 그 중에 맥스라는 녀석은 붙임성이 좋아 나 배에서도 잠들던 태평한 고양이였다.
호팸네는 종종 온가족이 타호에 있는 집에 가서 스키를 타며 머물곤 했는데, 오래 머물기에 동물들도 다 데리고 갔다. 그 집에 세탁기인가 뭔가를 봐주러 온 사람이 문을 열어놨는데, 그 틈에 밖으로 나갔는지 맥스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열심히 찾으러 다녔고, 미아 펫 신고도 해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베이에리아로 돌아간 후에도 호스트 마더는 4-5시간 거리인 타호를 몇 번 더 왕복하며 집에 혹시 돌아오면 먹으라고 밥이랑 물도 챙겨놓으면서 맥스를 찾으려고 해봤으나 감감 무소식. 타호에는 코요테도 많은데, 큰 개들하고 같이 살아서 걔들한테도 가서 아는척 했는지 모를일이라고 했다. 누가 코요테가 하얀 고양이(?)를 물고 가는 걸 봤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확실치 않았다. 그렇게 맥스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농담처럼, 한편으로는 소망으로, 어디 다른 집에 가서 거기서 아예 눌러앉아서 살고 있을지 혹시 아냐고 얘기했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믿고 싶었다.
자려고 누운 내내 생각했다. 어디 차 밑에 숨어있나, 차 출발하면 위험할텐데. 다른 집 발코니에 떨어졌나. 맥스도 못 찾았는데, 걔는 사람 좋아해서 부르면 오기라도 하지. 얘는 숨어있으면 방도가 없는데.
그러다가 나를 제일 괴롭히는 하나는, 아까 퇴근하고 간식 줄 때 살찐다고 조금만 줬던 사실이었다. 살이 뭐 찌면 얼마나 찐다고, 아까 간식 좀 더 많이 줄걸. 그럼 우리 야옹이 지금 배 덜 고플텐데. 혹시 못 찾아서 길거리에 살게되면 조금이라도 더 먹었던 힘으로 더 오래 살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더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그깟게 뭐라고 더 줬어야 하는 건데. 눈물이 펑펑났다.
어찌 어찌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나는 출근을 했다. 남편은 인식칩에 실종신고를 했다. 혹시 누가 발견해서 칩 스캔하면 우리를 찾을 수 있도록. 출근해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쉬는 시간에 급히 야옹이 실종포스터를 만들었다. 각도에 따라 색깔도 크기도 다르게 보일 수 있어서, 사진을 여러 개 넣었다.
내가 울적해 있으니, 상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집 고양이 한 마리가 없어졌다, 그렇게 한 문장 얘기하는데 눈물이 왈칵 나 엉엉 울기 시작했다. 상사도 개 2마리를 키우는 입장이라 안타까워 하며 조퇴하고 고양이 찾으라고 집에 보내주었다. "애완동물은 우리 애기들이야" 하면서. 같이 일하는 부하직원도 보더콜니 믹스를 한마리 키우는데, 소식을 듣고 꼭 찾으라고 응원해주었다.
나는 그 길로 집에가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프론트데스크, 우편함 실, 아파트 주변의 나무나 전봇대에 붙이고 돌아다녔다.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은 "Oh no, poor thing" 하며 꼭 찾길 바란다고 얘기해 줬다. 음료수를 들고 프론트에 갖다주며, 도와줘서 고맙다고, 혹시 누가 무슨 소식을 얘기해주면 꼭 연락달라고 부탁했다.
건설자재가 잔뜩 쌓여있던 1층 유닛에 오늘은 인부 2명이 나와 일하고 있었다. 나는 음료수를 더 가지고 와서 전단지와 함께 주며 혹시 고양이를 보면 붙잡지 말고 꼭 연락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스패니쉬가 익숙하고 나는 스패니쉬를 할 줄 몰라 영어로 어떻게든 이야기했고, 의사소통이 되었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았지만 뭐라도 해야했다. 호스트마더가 벳 테크니션이라,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이나 집사 냄새가 나는 것을 여기저기 두고 혹시 그리로 오는지 보라고 했다. 집에가서 야옹이가 깔고앉던 담요랑 내 양말을 가지고 나와 아파트 바로 앞 주변에 두었다.
시간이 갈수록 희망은 꺼져갔고 이대로 못 찾을 것 같은 생각이 점점 스며들었다. 고양이를, 불러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찾아. 나는 아파트 내부와 주변을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그 때였다.
Here, here! Cat!
조금 전 음료수를 주며 부탁했던 1층에서 일하던 분들 중 한 명이 나에게로 달려와 소리쳤다. 급히 그를 따라 1층 패티오로 들어갔다. 반쯤 치워진 나무판자, 쓰레기, 나무 마루 사이 깊숙한 안쪽에 부엌에서 뜯어낸 오래 된 식기세척기가 있었고 그 밑에- 갈색에, 검정색에, 고양이들이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어도 집사는 안다. 우리 상전님이 겁에 질린 얼굴로 웅크리고 있었다. 일하는 분이 식기세척기를 옮기려고 해서 급히 말렸다. 무서워서 도망가면 수포였다.
나는 급히 집에있는 남편에게 전화해 내려오라고 했다. 나는 고양이 잡는 스킬이 잘 없고, 내가 혹시 놓쳐서 도망갈까봐 두려웠다. 남편은 고양이 7마리와 자라서 아무리 날뛰어도 얘들을 잘 잡았다. 남편이 내려오는 동안, 이름을 부르며, 목소리를 들려주며 그 밑에 숨어있게 두었다. 남편이 도착해 담요를 이용해 야옹이를 둘둘 감아 들어올렸다. 아! 찾았다 이놈시끼.
그 2명의 인부들에게 고맙다고 거듭 인사했다. 그들도 함께 기뻐했다. 어떻게 잃어버렸냐고 해서 우리도 모른다고, 우리는 여기 8층에 산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놀라며, "Cats have nine lives" 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야옹이 몸을 살폈다. 어디가 부러졌나, 삐었나, 상처가 났나. 놀랍게도 말짱했다. 집에 놓아주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기 화장실에 먼저 갔다. 밥도 먹고 물도 먹고. 태연히 다른 한 야옹이에게 가서 인사도 했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따뜻한 티비 셋업박스에 누워 잠을 잤다.
저렇게 팔베고 태평하게 자고 있는 녀석을 보자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왠지 억울했다. 나는 울고불고 잠도 못자고 조퇴하고 난리치며 돌아다녔는데. 다치지도 않고 태평하게 자고있다니 ㅠㅠㅠㅠ 등짝스매싱을 찰싹찰싹 때리며 이눔시끼가! 겁도없이! 하고 구박해주고 싶었다. 아휴 다행이다. 진짜 못찾을 거라고 생각했다구.. 정신을 차리고 나가서 전단지를 다시 다 떼어냈다.
나와 남편은 대체 얘가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가에 대해 대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얘가 복도를 따라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로비를 지나서 밖으로 나가 담을 넘어서 1층 유닛에 들어가 숨어있었을 리는 없었다. 8층에서 패티오를 타고 한 층씩 뛰어 내려 1층까지 갔나, 그것도 무리였다. 가장 유력한 답은 하나였다. 우리집 패티오에서 떨어졌다 이놈시키.. 얘는 이 전에 살던 집에서도, 그 전전 집에서도 항상 패티오가 열려있으면 난간에 올라갔다. 전전집은 2층이기나 했지, 이 전 집은 19층이었는데!! 현재 집에서도 혹시나 문을 열어놓으면, 방마다 있는 패티오를 통해 건너다니는걸 몇 번을 식겁하며 들여보낸 적이 많았다. 아니 분명히 방문이 닫혀 있는데 얘가 냅다 패티오로 뿅 나타나곤 했다.
그렇게 패티오를 건너다니다가 떨어진 건지, 가끔 오는 허밍버드 같은 것을 보다가 너무 신나 잡다가 떨어진건지, 지금도 정확한 사건의 경과는 후추 지 스스로만 안다. 8층에서 떨어지고도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은 고양이. 그 쌓여있던 쓰레기 더미 어딘가 푹신한 곳으로 떨어졌나, 아님 오히려 높이가 충분해서 떨어지는 동안 고양이 특유의 몸돌려 펼치기 기술을 이용해 착지했나.
1층의 그집은 우리가 이사오기 전부터 몇 달 간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그 덕에 이놈이 굳이 멀리 도망가지 않고 숨을 곳이 있었다. 하늘이 도운건지, 정말 우연히도 후추가 떨어진 그 다음 날이 인부들이 들어와 쓰레기를 치우는 날이었고, 그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그날부로 우리는 바로 에어택을 사 두 고양님에게 달아주었다. 패티오 문을 안 열어놓게 특별히 조심하고 있으나, 이놈은 어떻게든 틈만 나면 아직도 패티오를 넘어다니고 있다. 미국사람들은 고양이는 목숨이 9개다 라고 한다지만(하도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아서, 혹은 목숨이 9개인 것 처럼 이러고 다닌대서 생긴 말이 아닐까) 사실은 본묘 목숨이 한 개라는 걸 좀 알아야 할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산다. 따뜻한 햇빛에 누워서, 따끈따끈하게 낮잠을 즐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