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에 있는 엄마가 암이라고 했다.
2021년 5월 21일.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귀향, 혹은 여행의 끝자락.
많이 변해 버린 곳들을 걸으며, 앞 표지가 조잡한, 그러나 환상을 걸을 수 있는 책을 하나 샀다.
블링블링한 할머니들의 핫 플레이스를 지나며, 이거는 얼마여 그거는 현금이여 하는 소리를 거쳐 도착한 작은 카페. 스콘이 먹고싶은데 아직 만드는 중이라는 비보를 커피와 함께 꿀꺽 삼키고 아까 그 조잡한 표지의 책을 읽는다.
사장님은 아주 젊은 내 또래의 여청년인데, 어머니가 도와주시는 듯 했다.
어머님은 손님을 통해 따님을 사장님이라고 대우해 불러주었으나 어깨 너머로 들리는 그들의 평소 대화는 나와 우리 엄마 같은 노골노곤한 평소.
_ 엄마 이따나올거야?
_ 응, 이따와야지
_ 어, 근데 여기 바지 왜 찢어졌어?
_ 어? 아니 여기가 언제 찢어졌지?
고소한 버터냄새. 조용한 카페에서의 스콘이 구워지는 따뜻한 초콜릿 냄새. 그저 눈을 감고 맛보고 싶어지는 달콤한 냄새.
젊은 사장님과, 손님들과, 썬캡을 파는 주변 상인 할머니들까지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오후. 아, 이 고소한 냄새와 평화로운 오후는 그저 언제까지고 풍덩 잠겨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야 하는 시간이 발치에 다가와 더 달콤한 이 오후.
굉장히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2021년의 메모. 코로나가 막 난리를 치던 2020년 봄, 그 당시 나는 한국에 있는 엄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있더라도 언제고 비행기 타고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모두들 그렇듯 역병의 창궐은 계산에 없었던 것이었다. 어떻게든 한국에 가려던 나에게, 한국의 가족들은 수술 날짜가 잡혔고, 오더라도 규제가 심해서 면회오기 어려울 거고, 설사 한국에 왔다가 만약에 내가 코로나에 걸렸거나 옮기기라도 하면 어렵게 잡은 수술 날짜가 취소될 것이라며,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달랬다. 태평양 건너 나는 그저 수술 날짜에 뜬 눈으로 밤을 새는 것과 일인실이라도 묵으라고 돈을 보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경과가 좋았고, 이후 검사 결과도 다 좋다고 했다. 1년이 지나고 미국에는 약간의 규제가 풀려 갈 때 쯤, 나는 회사에 4주 간 휴가를 내고 한국에 갔다. 그 중 14일을 자가격리로 갇혀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가야했다. 1년 검진은 함께 가고 싶었다. 엄마의 검사결과는 모두 다 좋았고, 나도 마침내 마음을 놓고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고, 동료들도 만나고, 은행업무도 보면서 매일을 정신없이 보냈다.
저 메모를 쓴 날은 다시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로, 유일하게 내가 한국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잠깐의 짬이 났다. 오래된 건물이나 뒷골목의 가게를 리모델링하여 카페나 소품을 파는 곳이 늘어나면서, 처음 들어보는 "ㅇㅇ길"이 된 곳들이 많았다. 지금은 없어졌다는 로컬서점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하나 사서, 오래된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며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마침내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아, 스콘을 아직 굽고 있다는 말에 내가 지나치게 시무룩해 보였던지, 사장님은 따끈따끈한 초콜릿 스콘을 금방 완성하여 내게 알려주었다. 기다려 주어서 고맙다며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시럽 토핑도 서비스로 주셨다. 입 속에 퍼지는 묵직한 버터와 초콜릿 맛.파스스 퍼지는 식감. 아늑하고 한적한 카페에서 바라보는 바쁜 골목길. 나는 그 순간이 달콤하고 고소한 초콜릿 버터스콘만큼 좋았다.
아직 5년이 지나야 완치판정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재 엄마는 건강하시다.
망할 역병, 망할 암. 그래도 우리는 헤쳐나간다. 할 수 없는 것들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작은 순간에, 작은 카페에서, 작은 초콜릿 스콘과 버터냄새로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