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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n 01. 2023

도대체 남들은 캠핑을 어떻게 다니는 것인가

엄마는 막 밥솥도 싸들고 다녔었는데

남편과 나는 여기저기를 많이 다니려고 하는 편이다. 남편은 고급 호텔과 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돈 많이 쓰고 싶어하지 않는 나 사이에서 언제나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 어찌됐든 우리는 여행할 땐 짐이 적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호텔가면 필요한 것 다있고, 그 동네에서 맛있는 것 사먹으면 되니까 떠나는 당일에 필요한 옷가지나 칫솔 치약 정도만 챙겨서 훌쩍 떠난다. 


5월 막주 월요일이 휴일인데 아무 계획도 없이 있다가 남편이 어디 갔다올래 하고 갈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휴일인 토일월은 비싸니까 월화나 뭐 이런 쯤으로 찾다가, 전에 봤던 글램핑 사이트가 생각났다. 휴일을 지난 월요일 화요일은 역시나 꽤 저렴했고, 남편을 설득했다. 참고로 우리 남편이는 한 번도 캠핑을 해 본적 없는, 거친 종류의 그 어떤 것과도 거리가 너무나 먼, 인터넷과 첨단기술의 커넥션이 없으면 삶이 망해버리는  작고 소듕한 사람이다. 처음 글램핑 갔던 때는 5년 전이었는데,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설득을 했던 것 같다. 값도 저렴하고, 마침 가보고 싶었던 동네가 근처에 있어서 의외로 남편도 쉽게 설득당했다.



우리는 텐트를 싸가지고 다니는 진짜 캠핑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나마 글램핑이 남편에게는 마지노선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아주 어렸을 때 한 번 정도인가 캠핑을 가 본 것 같았는데. 그래도 한국에서 가족이나 동기들과 놀러갈 때를 생각 해 보면, 가서 불 피워 고기 구워 먹는 것이 하이라이트였으니, 오랜만에 그게 해보고 싶었다. 가만있어보자 가면 뭐가 필요하지? 불 피우는 건 거기서 사면 된다고 하긴 했지만, 뭘 어디까지 어떻게 지고 가야 되는 것인가? 


일단 고기. 삼겹살하고.. 또 뭘 구워 먹지? 이상하게 미국와서 진짜 굉장히 먹고 싶은게 파 끼워져 있는 닭꼬치였다. 파는 곳을 본 적이 없으니까, 해먹어보려면 가만있어보자, 나무꼬치도 사야하고 대파도 사야했다. 새송이버섯도 구워먹으면 맛있으니까 사고.. 깻잎은 꼭 싸서 먹어야지.. 이것들은 전부 20분 운전 거리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사야했다. 남편은 머리털나고 그렇게 커다란 대파는 처음봤을 거다. 


닭허벅지 살 양이 많아서 저녁으로 먹을 닭고기 불고기도 함께 요리하기 시작했다. 열정 넘치는 출발.

1. 채소를 모두 세척한다.

2. 깻잎 싱싱보관방법을 검색한다. 꼭다리를 약간 잘라내고 꽃처럼 물에 약간 담가 놓으란다. 절반은 저녁으로 먹게 접시에 담는다.

3. 상추를 보관법을 검색한다. 키친타월을 깔고 통에 넣는다. 절반은 저녁으로 먹게 접시에 담는다.

4. 새송이 보관법을 검색한다. 일부는 꼬치용 크기로 자르고 일부는 구이용으로 편썰어 키친타월을 깔고 통에 넣는다. 

5. 구워먹을 양파를 스테이크처럼 썰어 용기에 넣는다. 남는 애는 더 잘라서 불고기용으로 넣는다.

6. 파 흰부분을 꼬치용으로 자른다. 두 줄 정도는 불고기용으로 자른다. 나머지는 키친타월을 한 장 깔고 지퍼백에 넣어 보관한다.

7. 닭 허벅지살은 닭고기 꼬치용 크기로 알맞게 자른다. 나머지는 조금 더 작게 잘라 볼에 넣고 불고기 양념한다.


------ 이쯤 되니까 회의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도 해달라고 안했는데 나는 이 짓을 왜 하고 있는가. 남편이 옆에 와 기웃거리길래 나 왜 이러고 있냐고 했더니 자기도 웃으며 내가 한다그러길래 두긴 했지만 왜 시작했냐고 했다. 도와줄 것 없냐고 하지만 설명하다가 내 속이 더 터질 것 같아 나중에 치울 때 도와달라고 했다.


8. 잘라놓은 파, 새송이, 닭고기를 알맞게 끼워 꼬치를 만든다. 난리를 쳤으나 5개밖에 안 나왔다니..

9. 만들어놓은 꼬치를 예쁘게 지퍼백에 넣는다

10. 채소를 더 넣고 저녁에 먹을 불고기를 잰 후에 볶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어디까지 짐을 싸야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만있어보자, 종이접시, 키친타월에,, 젓가락 포크 같은 것도 있어야 하고, 고기 구울 집게, 소금이랑 후추, 배가 더 고플려나? 컵라면, 물 끓이는 포트, 추우면 덮을 블랭킷... 마실 와인도 하나, 그렇다면 컵도 있어야하고.. 그냥 커다란 이케아 퍼런 쇼핑백을 꺼내놓고 닥치는 대로 던져 넣었다. 정리가 무어냐..


다음 날이 되자 어제 정리해 놓은 식재료를 아이스팩과 함께 쿨러 두 개에 나눠 차곡차곡 넣었다. 냉장고가 없으니 쿨러가 차갑게 유지되는 것이 중요했다. 개인용 가방에 각자 갈아입을 옷도 챙기고, 수건도 챙기고.. 짐을 차에 실으니 트렁크가 가득 찼다. 꼴랑 성인 두 명 용이 뭐가 이렇게 많아..? 남편은 이런 걸 싫어해서 눈치를 좀 봤다. 다른사람들은 SUV차에 한가득 꽉 싣고 다녀! 이정도면 컴팩트야 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 마실 물이랑 마시멜로우, 고기 구울 때 쓸 오일 스프레이는 거기 근처 마트에서 사기로 했다. 



글램핑 장소는 나쁘지 않았다. 침대도 있고, 다 같이 사용하는 샤워시설도 깨끗했다. 전기장판!이 있어서 따뜻하게 잘 수 있다.

들어갔다 나올때 마다 지퍼 올렸다 내렸다가 너무 귀찮았다..

남편은 다른 텐트에 묵는 사람들이 커다란 차에서 캠핑용 의자며 커다란 쿨러며 램프며 오만 것들을 꺼내는 것을 보더니 니 말이 맞네 저걸 다들고 다닌다고 했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근방에 있는 동네 Healsburg도 구경했는데 다운타운이 귀염귀염하니 마음에 쏙 들었다. 요모조모 구경할 것이 있는 작은 가게들이 많았다. 오만가지 물건이 있는 앤티크샵도 구경했는데, 옛날에 엄마가 데리고 다니던 인사동 만물상 같은 곳을 연상케 했다. 와인오프너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걸 하나 구매했다.

앤티크샵. 정말 커다래서 입장료를 받아도 될 만큼 구경할게 많았다.


돌아와서는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불피우기 키트로 성냥과 택배박스 자른것을 준 것이 전부라 불 피우는데 애를 먹었다. 남편은 지식은 많지만 손발의 기술이 안 따라 주는 사람이라, 불피우는 것, 고기 굽는 것 모두 내가 주도해서 했다. 남편은 "이거 내가 해야되는 건데.." 하며 멋쩍어했다. (미국에는 마당에서 고기 구워먹고 이런게 굉장히 아빠!남자!가 한다! 이런 개념이 있다) 오래오래 고생하다 마침내 닭꼬치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아아 영롱한 닭꼬치와 삼겹살. 노동력 대비 별 것 아니어보이는구만..


잘 구워진 닭꼬치를 남편에게 건넸다. 숯불에 구워진 코리안 대파맛좀 봐라! 얼굴에 숱검댕이를 자안뜩 묻히고 후후 하하 먹으며 정신을 못차렸다. 맛있다는 뜻이다. 파와 버섯을 씹으면 채즙이 철철 나왔다. 우리는 신이나서 닭꼬치를 먹고, 와인을 따라 마셨다. 천국이었다. 곧이어 삼겹살이 준비되었다. 모락모락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쌈장에 찍어 깻잎에 싸서 한 입을 넣은 순간, 우리는 마주보고 멍청이처럼 허하허허 거렸다. 이건 미쳤다며. 그 난리를 친 가치가 있어? 하고 물었더니, 아까 불이 안 피워 질 때는 이 짓을 왜하나 싶었는데, 아 아주 가치가 있다고 좋아했다.





이렇게 고기를 굽다보니 한국 생각이 많이 났다. 대학생때 엠티가서 정말 고기를 징글징글하게 구웠었다. 삼겹살 기름이 떨어지며 불쇼를 하고, 깜깜한 밤에 굽다보니 검댕이 뭍은 이 고기가 익은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른 채 입에 넣고 소주가 소독해 줄 거라며 껄껄거리던 때. 마시멜로우 굽겠다고 불가에 서 있다가 잠바까지 태워먹고도 모르던 때. 친구들과 여행갔다가 불피우는데 3시간은 보냈던 때. 알고보면 한국사람들 고기구워먹는 것에 추억이 많다. 적어도 모두가 아는 그 기억, 지글지글 막 구워진 첫 한점을 입에 넣는 순간의 행복, 혹은 고기 굽는 이의 입에 넣어주는 행복.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언니와 내가 주도해서 카라반을 예약하고 엄마 아빠와 주말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일에 엄마가 거의 김치냉장고만 빼놓고 부엌을 전부 가져왔었다ㅋㅋ 이거랑 저거는 이거 해먹을 거고 저쪽 저거는 이거 먹을 때 쓸 거고, 밥 해먹게 밥솥도 가져오고, 언니와 나는 배꼽이 빠지게 웃으며 엄마를 나무랐다. 아니 하루 노는거고 여기도 다 있는데 이걸 다 가져오면 어쩌냐고. 엄마는 웃으며 딸내미들하고 재밌게 추억으로 해먹으려고 갖고 왔다고 했다. 김치냉장고 채로 가져오려다가 말았다고 했다. 아빠는 투덜거리면서도 그 많은 걸 다 차에 실어준 것을 보면, 딸내미들이 가자고 예약해 준 짧은 나들이에 둘이 꽤나 설레였던 것 같다.


글램핑 와서 저렇게 난리를 치고나서 생각하니 김치냉장고 통째로 싣고 오려던 엄마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항상 뭘 그렇게 힘들게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냐고 뭐라고 했었는데, 엄마 아빠는 그저 이걸 자식새끼들 입에 넣어주고 얘들이 맛있다고 호들갑떨면서 웃는게 좋았던 것이다. 남편은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정서나 추억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고 내가 왜 일을 벌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나는 "거기 가면 다 있어" 나  "사먹으면 맛있어", "그거 아는 맛" 파였는데, 미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한국음식이 거기 가면 없고 사먹을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남편은 그게 무슨 맛,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나는 아마 이 한국에서의 추억을 남편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저 난리를 쳤던 것 같다. 봐, 이거 진짜 맛있어. 이런 거 같이 해먹으면서 자랐는데, 엄마가 아빠가 이런거 다 해줬었는데, 진짜 재밌었어 하고.




고기를 다 먹고는 마시멜로우도 구워먹었다. 나는 스모어는 너무 달아서 별로다. 그냥 살짝 그을린 마시멜로우가 꼭 뽑기달고나 맛이 나고 제일 맛있다. 남편은 빨리 불을 꺼버리고 싶어했으나 나는 한참 앉아서 불멍을 때렸다. 또 언제 불피우고 놀겠어 하며.


진짜 맛있고 진짜 재밌었지만 앞으로 구워먹는건 그냥 아파트 안에있는 바비큐 그릴에서 하기로 했다. 남편은 삼겹살 한점씩 구워서 쌈장 찍어서 팔으라고 농담했다. "한국사람이 하는 진정한 코리안바베큐"라고 하면 잘 팔릴 거라고.




자안뜩 가져간 짐은 사실 절반만 쓰고 돌아왔다. 라면도 안 먹었고, 블랭킷도 안 덮었고, 가져간 과자도 까먹고 안 먹었다. 최근 남편이 생일선물로 받은 캠핑용 포터블 베터리도 쓸 일이 없었다. 수건도 비치되어 있었어서 안 썼다. 


저 때 입었던 후드티에서는 빨래를 했는데도 아직도 탄내가 나고, 가져갔던 그릴은 남편이 제대로 안 닦아와서 검댕이를 다시 닦느라고 애먹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한국처럼 펜션에 고기굽는 집게랑 가위까지 다 있다면 모를까, 나중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고 이렇게 바리바리 싸가지고는 너무 힘들어서 못다니겠다. 누가 좀 바리바리 대신 싸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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