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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n 15. 2023

외국인 남편의 한국화 - 감자탕은 오래 끓여야 제맛

그만 끓이고 이제 먹으면 안될까..?

남편은 전형적인 코카시안으로, 버터파스타와 빵으로 자라난 사람이다. 그렇다. 버터파스타. 한국인 어른들이 들으면 기함을 토할 버터파스타란, 말 그대로 파스타를 삶아서 소금, 버터, 파마산 치즈를 뿌려먹는 '어린이식사'이다. 버터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한국으로 따지면 계란간장밥이나 김에 싼 밥 정도의 위상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간장계란밥과 김싼 밥은 탄수화물과 단백질/탄수화물과 채소가 어루러진 건강식이다.


나도 어렸을 때 편식한다고 많이 혼나고 자랐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편식'은 미국의 '편식'과는 비할 정도가 못된다. 많은 미국 어린이들은 'white food(하얀 음식- 파스타, 하얀빵, 감자, 흰밥, 고기를 먹는다면 닭가슴살 정도)' 를 주로 먹고 자란다. 특별한 기회가 없는 한 다양한 식재료나 부위, 조리법, 양념에 노출되지 못한 채 자라기 때문에 커서도 자기 먹던 것이나 편안하게 느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남편이 그렇다. 연애할 때 남편 집 냉장고를 열어보면 언제나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반쯤 먹은 살라미와 치즈, 최책감에 더한 듯 한 포도, 그리고 실온에 사워도우 빵(물과 밀가루 베이스인 식사빵).


나랑 같이 살면서 남편은 많이 바뀌었다. 같이 살려면 서로 바뀌어야지, 별 수 있나. 나는 내가 먹고 싶지만 남편이 못 먹는 것들을 많이 포기해온 동시에, 너무 어렵지 않은 것이라면 조금씩 꾸준히 노출시켰다. 이런 고기, 이 부위도 맛있고, 이런 채소도 맛있고, 이렇게 양념하고 조리된 것도 맛있으며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서, 지금은 먹을 수 있는음식이 그나마 많이 생겼다 (시가 입장에서 현재 남편은 아주 어드벤처러스한 식사를 하면서 자꾸 권하는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가끔은 너무 심취했는가, 이 사람 왜이래..? 싶을 때도 종종 있다는 게 포인트.



시래기와 감자탕도 그 중 하나였다. 남편의 감자탕 사랑은 얼마 전 우리 부모님이 우리집에 와서 2주 정도 지내셨을 때, 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부탁한 감자탕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한인마트에서 돼지등뼈를 사다가 엄마가 뚝딱뚝딱 급히 끓였다. 우리는 맛있게 먹었는데, 아빠는 이거 더 푹 끓여야 된다고 고기도 없어서 목뼈를 사야된다고 시사했다. 엄마도 동의했다. 나야 급히 해달라고 해서 얻어먹는 입장에서 그것도 맛있었지만, 한국에서 사 먹는 것에 비해 아쉽긴 했다.


엄마 아빠가 한국으로 가신 후에, 나는 살집이 많은 돼지 목뼈를 사다가 아쉬운점을 보완해 다시 도전했다. 아주아주 성공적이었다. 오래 삶아 뼈가 쉽게 떨어지고 감칠맛이 폭발하는데, 남편은 이게 왜 이렇게 맛있나, 오래 끓여서 그런가? 했다. 나는 응, 오래 끓이면 뼈에서 육수도 잘 우러나고 살 발라먹기도 쉽다, 시래기도 국물 맛에 한 몫 햇을 거다, 하고 대답해 줬다. 남편은 오오 역시 그렇군 했다. 아아, 오래 끓이는 것의 집착은 이 때 부터였던가.



이전 글에서 난리를 쳐 가며 사온 감자탕 식재료는, 남편이 배고파서 폭주해서 사온 빵이랑 떡, 탕수육을 먹느라고 결국 다음날로 미뤄졌다ㅋㅋ (이 이야기는 다음을 참고하시라. 하루 반나절만에 5만뷰를 넘었는데 남편이 아주 뿌듯해 하고있다.)

https://brunch.co.kr/@c39a98fae8d84a9/23


이동네에서 돼지목뼈는 한인마트에서 살 수 있다. 무슨 용도라고 딱히 써있지는 않은데 종종 갈빗살도 붙어있고 뼈와 살코기가 아주 실한 것이, 감자탕용으로 딱이다! 꿀 이득인 것은, 미국에서 잘 안 먹는 부위여서 그런가,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저 고기 한 팩이 2.5kg정도에 한국 돈 만 오천원 수준이다! 집에 있는 가장 커다란 냄비에 찰랑찰랑할 정도로 가득 찬다! 남편은 미국사람들이 이 맛을 몰라서 이걸 못먹는다고, 영영 몰라서 이렇게 계속 싸게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른다(너도 미국사람이야..).


참고한 레시피는 백종원님의 감자탕레시피이다.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온통 블로거가 만든 포스팅만 뜨고, 레시피도 다 제각각일 뿐 원본은 뜨지 않았다. 아니 원본을 보여줘야지 남들 것만 보여주면 어떡해? 구글에 검색해 백종원님 유투브채널을 참고했다. 나는 시래기를 추가로 넣었고, MSG나 소고기 다시다는 집에 없어서 연두를 조금 넣었다. 그게 그거지 뭐. 외국에 사시는 분들 참고하시라고 아래 링크를 첨부한다.

https://youtu.be/6hLnQ5c03L8





목뼈를 씻고, 삶아서 다시 씻은 다음 된장을 먼저 넣고 2시 반 쯤 고기를 끓이기 시작했다. 채소 재료를 손질해 놓은 후, 한참 걸릴 테니 나는 딴 짓을 하러 가기로 했다. 남편은 조리대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뚜껑을 닫을까 열을까, 얼마나 끓일 거야, 푹 끓여야 맛있다 하면서 조잘조잘 거렸다.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4시 반 쯤이 되어 끓고있는 고기를 체크했다. 푹 고아져서 고기가 부드럽게 익었다.


나: I think I can add the potatoes and veggies now. 이제 감자랑 채소 넣어도 되겠다.

남편: Oh! and then you will boil like 2 hours more? 오오, 그럼 그 다음에 한 2시간 더 끓이는 거야?

나: Hugh? no. The potatoes will be all desolved if we do that. 20-30mins should be enough. 엉? 아니! 그럼 감자가 다 풀어져서 못써. 한 20-30분만 끓이면 될 걸.

남편: What? NO! We should boil more! That's how you get all the flavors and make the meat tender, right? 뭐?? 안돼!! 더 푹 끓여야돼. 푹 끓여야 더 맛있고 고기도 더 연해지지! 그치?

나: I think this is enough though.. Cooking that long might make the meat fall apart too much. 다 된거 같은데.. 더 끓이면 살코기가 너무 막 떨어져 나올거 같은데..

남편: Nono, that's good thing, meat falling apart?! 아냐아냐, 고기가 뼈에서 막 잘 빠지면 좋은거잖아?!

나: Okay okay. Then we will boil a bit more before veggies go in. 알았어 알았어. 좀 더 끓이다가 채소 넣을게


남편의 막무가내 반대로 냄비는 한시간 반을 더 끓었다. 여섯시 쯤이 되어서야 남편은 채소를 넣게 해 주었다. 마침내 완성된 감자탕. 백종원님 레시피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서 그런가 색깔이 쨍한 오렌지 빛이였는데, 그게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찍어먹는 소스도 만들었는데, 연겨자가 없어서 와사비를 대신 넣었다.


아닛! 지금보니 백종원님 유투브 섬네일 완성냄비 모습이랑 똑같지 않은가?!

그야말로 한 솥이 나왔다. 너무 오래 끓여서 뼈를 집는데 마구 으스러지려고 해서 아주 조심조심 덜어야 했다.


남편은 크- 이거지 하면서 역시 오래 끓여서 살 부드러운거 봐바 이러면서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해서 뼈를 발라내는데, 뼈 마디가 막 분리되는 것을 이것 봐 이거, 이러면서 아 역시 오래 끓여서 그런 거라고 (아 그만 좀!!ㅋㅋㅋㅋㅋ). 소스 그릇을 통째로 들고 찍어먹었다. 포슬포슬한 감자, 국물 맛이 깊게 배인 시래기, 밥 한숫갈에 얼큰한 국물 한 숫갈.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리필해서 더 먹었다. 저렇게 빨리 먹고 더 먹는 다는 것은 '내 남편 비언어적 의사소통 사전'에 의하면 엄청 맛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잘 먹으면 만들 맛이 난다. 이 근처 한인식당에도 가끔 감자탕이나 뼈해장국이 메뉴에 있기는 한데, 이상하게 맛이 없다. 한국에서 사 먹는거 절반 맛이라도 나면 사먹을 텐데, 반의 반도 안된다. 그러니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재료를 사러 갔다오는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다. 사실 내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사먹는 것 만큼 맛있고, 재료 값도 저렴하다.


90년대 뉴스채널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어린이들이 햄버거, 피자 이런 것만 좋아한다고 문제라고 하는 리포트가 있다. 누가 그걸 가져다가 그 아이들은 자라서 지금 '크으~ 햄버거 값이면 국밥사먹지' 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한 걸 보았다. 그래, 오-래 끓이는 국과 탕은 요상한 힘이 있다. 딴 걸 찾다가도 그 구수-하고 오장육부를 감싸는 그 맛으로 돌아오게 만들고야 마는 힘. 그 요상한 힘은 너무나 강렬해서, 어쩌다 보니 나는 파스타먹고 자란 외국인 남편까지 오래끓여야 제 맛 집착남을 만들어버렸다ㅋㅋ.




배 터지게 먹고도 이만큼이나 남아서 소분해 담았다. 이래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점심때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으면 된다. 7인분치 점심이 해결되었다!

 뼈고기를 욕심내지 않고 먹는다면, 13불짜리 고기와 기타재료 12불어치를 사서 10인분이 나왔으니, 1인분에 2.5불로 해 먹은 셈이다!! 하지만 전기쿡탑으로 2시 반 부터 6시 반까지 4시간을 끓여댔으니 전기세가 더 나오지 않았을까..?ㅋㅋㅋㅋ







우리가 뼈 발라먹는 고기를 먹으면 꼭 손님이 찾아온다. 저 애처로운 눈빛과 함께 손으로 톡톡 치면서 냐옹냐옹 한다. 귀엽다.



https://brunch.co.kr/@c39a98fae8d84a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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