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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안 Dec 04. 2024

믿어도 괜찮아 (1)

'정답은 네 안에 있어'


남자의 몸이든 여자의 몸이든, 몸을가진 모든 존재들은 모두 아름다워.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몸을 소개할 ‘대표사진’을 어떤 컨셉으로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성별 이분법적으로 나뉜 세상에서, 남성의 신체도 여성의 신체도 아닌 것 같은 몸 자체에 어떻게 아름다움을 입힐 수 있을지를.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공감의 영역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고민끝에 결국에는  ‘선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를 만들기로 했다. 춤에도 선이 있듯, 모든 몸에는 선이 있다. ‘춤선’도 그렇듯이, ’ 아름다운 몸의 선‘ 그 자체에는 성별이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았다. 몸의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삭발까지 감행했다. 체중은 10키로를 감량했지만, 더 슬림해 보이기 위해 턱선이나 복부의 지방흡입수술을 감행하는 것 까지도 서슴치 않았었다. 몸선을 얇게 만들고, 두상까지 온몸의 선이 드러나보이게끔 하니, 그래. '이만하면 나다워졌겠구나' 싶어서 화보를 찍어도 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가슴절제수술을 한 여성의 상반신 탈의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나요? 몸의 선이 드러나면서도 중성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도록 찍고 싶어요..!"


"네? 가슴절제수술을요? 여성분이요? 아이고.. 혹시 어떤 계기로 하셨어요?"


"아.. 제가 바디 디스포리아가 있어서요..  쉽게 말하면 저는 '트랜스젠더의 몸' 이라는 범주안에 들어있는 사람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런 사진 안찍어요."


(뚜..뚜..뚜...)



 몇번의 인지도 높은 사진작가들의 거절이 있었고, 허무한 마음을 달랠 겸 우연히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하던 중에 동네 골목 어귀에 있는 허름한 사진관이 눈에 띄었다. 간판도 없는 작은 사진관이었고, 흑백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 것 같았다. 동네 주민외에는 잘 가지 않는 곳 같았지만, 벽면 곳곳에는 작가님의 예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글귀들이 온 벽에 벽지처럼 도배되어 있었다.


'그래! 여기다!! 여기라면 찍어줄지도 몰라!!'

어떻게 하면 사진작가분이 당황하지 않고, 내가 상반신 탈의를 한 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끝에 ‘신체변형 예술가’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사진작가와 나와의 유일한 교점이 '예술'일 것이므로.

사실 뭐 크게  틀린말도 아니다.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체변형 예술가’인데, 상반신 탈의를 한 사진을 찍고 싶어요. 찍을 수 있을까요? “


“아.. 혹시 외국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신가요?"


"국내에서도 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해요."


"그래요.. 찍어드릴게요. 예술이시라니까요, 뭐...” 라며 납득하는 듯했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촬영이라, 메이크업도 의상이나 분장도 하나도 준비하지 못했지만, 우선 촬영을 하기로 했다. 작은 사진관 외부를 암막 커튼으로 가린 채, 긴장되지만 클래식 음악을 틀고 한껏 집중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동네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지만, 스튜디오와 주민 대기실을 분리된 공간이 아니였다. 두어명의 관객을 앞에 두니, 무언가 퍼포먼스를 하는 기분도 들면서 더 집중이 잘 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발레를 통해 배워왔던 동작들을 스트레칭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 보면서, 연기력을 발끝부터 끌어올려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은 완벽함을 떠나서 나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웠다. 신체적 매력을 찾기 위해 '내 정답'까지 최선을 다해왔고, 그 정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의도했던 대로, 남자의 몸이든, 여자의 몸이든 상관없이 몸선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동작의 아름다움이 함께 담긴, 뭔가 납득할만한 결과물이 나와주었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아름다움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 사진을 담아냄에 이르기까지 나의 노력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 한 진심이었는지를 알기 때문에, 완벽하다 느껴지진 않아도 결과적 보람이 꽤나 있었던 작업이었다.



몸의 아름다움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극도의 집착.





"Lord, Allow me the courage to say goodbye tomorrow and the strength to live through today."



주님. 내일 죽을 용기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해 주세요.



  춤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 왼쪽 손목의 동맥 부분에 타투를 새겨 넣으려던 문구였다. 춤을 통해 나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믿고, 내가 살아도 되는 존재인가를 증명해야 했기에 중도에 포기하면 바로 죽어버리겠다는 결심을 다진 문구였다. ‘내일 죽을 각오’를 해야 할 만큼, 그리고 신에게 오늘을 살아갈 힘도 함께 구해야 할 만큼. 딱 그만큼 비장했다.  성별 이분법을 초월해서 나를 '증명'하는 작품을 하고, 또 세상에 다양한 몸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분법으로 나뉜 세상에서 나부터가 살아갈 곳이 없는것 처럼 느껴졌기에, 스스로 세상을 그런 곳으로 만들어야 했다.

내가 살아있을 가치는 그거면 충분했다. 그리고 출생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졌어도, 누구보다도 자신다운 삶을 용감하게 살아가는 친구들.. 그들 중에는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나의 '용감한 여전사들'도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 세레나데를 해 보이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움직여서 세상을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 볼 테니, 우리 꼭 조금 더 따뜻해진 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나다움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무척 고단했다. 나다운 아름다움과 반대되는 것은 티끌하나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모습을 나의 은빛새치와 연관시켰고, 몸은 물론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도 검은색~흰색 사이의 물건들만 허용했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데에 목숨을 걸고 집착하는 나를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야 했다. 혼자 살아갈 작은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고, 전에 살던 곳에서 썼던 모든 물건들은 다 버리고 새로 구매했다. 큰 가구는 전신거울 하나만 새로 들였다. 춤과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에 사명을 걸고자 했던 하나의 의지였다.  또한 '아름답지 않은 물건'은 사용하고 싶지도, 사용할수도 없었기에 내 마음에 드는 포크 하나를 구할 때까지 몇주일이나 걸리기도 했다. (젓가락도 없어서 수저로밖에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자주갔던 와인바 사장님이 나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포크를 두개나 선물해 줄 때까지 숟가락으로 밥과 과일을 먹을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원하는 색의 노트북을 갖기 위해 같은 사양의 노트북인데도 80만원이나 더 지출해야 했다.


  몸과 춤을 통해 스스로를 아름답게 만들어 보여서 증명해야 한다는 '집착의 나날'들은 나를 점점 더 지치게 만들었다. 매의 눈으로 대형 전신거울에 비친 나의 신체적 콤플렉스를 잡아내기 바빴고, 나를 긍정하기 보다는 혹사시키기 시작했다. 극도의 절식과 과한 시술까지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다이어트를 하고, 시술을 받고, 타투를 받아도, 매일의 내 모습에서는 '만족스러움' 보다는 '불만스러움'이 더 크게 보이곤 했다. 내 눈에는 내가 절대로 완벽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치의로부터 중증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 흔히 작품에 집착할때 나오는 증상인 것 같다고 했다. 그때는 그런 진단까지 받고도 전혀 정신을 못차렸었다. 오히려 본업과는 별개로 '예술하는 사람같다'라는 말을 들으니, '내가 제대로 하고있구나' 라며 칭찬을 받은 기분이었다. 멈추기는 커녕, 몸의 신경을 가라앉히는 강력한 항불안제와 '코끼리 수면제'라 불리는 약을 먹으며 30시간동안 기절해서 잠에 빠지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고용량의 카페인으로 몸을 혹사시키기 시작했다. 4리터가 넘는 커피를 매일 마셔댔고, 몸과 정신은 살려달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살아가도 괜찮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믿고, 나 자신을 증명해야 했기에, 절대로 나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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