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힙합(두.근) 어디한번 바운스
춤을 처음 배우게 된 계기는 댄스크루 홀리뱅의 '제인'님이 만든 창작 안무 영상, 'let me in'을 보고서였어. 우와... 사람의 몸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멋지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면서 완전 감탄했지. 비록 나처럼 어떤 성별의 바운더리에도 속하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이라도 저렇게 멋진 춤을 출 수 있다면, 몸이 어떻든 상관없이 멋있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갖게 해 준 영상이었어.
그래서 어떻게든 제인님처럼 조금이라도 춤을 춰보고 싶어서, 제인님의 뚝딱이 수업에도 가봤어. 처음 춘 힙합 춤은 진짜 부드럽고, 또 파워풀하기도 했어! 왁킹 뚝딱이 수업에서 배웠던 포즈 중심의 춤보다는, 힙합댄스는 어느 정도 흐름이 꽤 있었던 춤이라 더 도전적이었지. 근데 문제는, 움직임을 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이었어. 아무리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동작이 있어서, 같이 수업 듣고 있던 수강생한테 물어봤어. 그랬더니 "이건 다운이에요"라고 말해줬는데, 그때는 다운의 뜻조차도 전혀 알 수가 없었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춤의 기초 중 하나가 다운바운스 자세라는 걸 알게 됐지. 아무튼 제인님의 수업은 재밌었지만, 다운바운스도 모르고 수업을 계속 듣기는 좀 어려운 상황이었어. 그래서 급하게 집 근처 학원에서 개인레슨 해주는 곳을 찾아서 레슨을 시작했어.
*개인레슨에서 배운 내용은 이 정도였어
바운스(업, 다운, 뒤, 앞) 연습
서클(가슴 고립과 회전) 연습
서클(골반 고립과 회전) 연습
웨이브 기초(암웨이브)
팝핑 기초(팔, 가슴, 다리 힘주기 연습)
뚝딱이 몸통에도 유연성과 흐름이 들어가야 춤을 좀 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연습했어. 부위별로 정확히 힘이 들어가는 최대점을 찾아서 힘을 주고 불필요한 동작은 안 하는 게 기본기 수업의 핵심이었거든. 그때 배운 기본기들은 정말 몸에 쏙쏙 들어가서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 1시간씩 부위별로 개인레슨을 받았거든!
그렇다고 바로 다양한 창작 안무 수업을 소화하며 들을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야. 춤을 잘 추는 전문 댄서들의 수업을 의미 있게 따라가려면 진짜 많은 노력이 필요해. 물론 그냥 재미있게 들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잘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거든. 예를 들어, 레벨 있는 수업에서 동작이 10개가 있으면, 나는 그중에 4~5개 정도밖에 못 따라 했어. 춤을 배우는 경험도 짧고, 동작을 따라 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많이 못했지만, 그래도 어떤 기본기를 쌓아야 저런 춤을 출 수 있는지 배운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
우선 나의 몸이 여성과 남성의 몸 그 어딘가에 있다고 느꼈기에, 복사하듯 따라 하고 싶어서 나랑 비슷한 체형을 가졌거나 중성적인 춤을 추는 댄스강사분을 찾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었어. 내가 어떤 춤을 해야 할까 많이 많이 고민한 끝에, 내가 중성적이기도 하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을 다 담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 사실 둘 다 할 수 있으면 뭐가 문제겠어? 오히려 좋아! 고럼고럼.
'크럼프'라는 파워풀한 스트릿 춤과 동시에 '힐코레오'라는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는 걸리시하고 섹시한 춤도 가지 모두를 주 장르로 하는 댄스 강사님을 알게 되었어. 바로 마네퀸 '벅키' 선생님이었어! 크럼프는 진짜 파워풀하고 힐코레오는 힐 신고 선적인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뽐내는 춤이지. 수십 년 경력의 전문 댄서이자 강사라서, 선생님의 내공이 진짜 대단했어. 눈빛만 봐도 누가 춤 처음 배우는 사람인지, 왜 어려워하는지, 무엇을 가르쳐야 춤이 늘 수 있는지 바로 아는 분인 것 같았어. 수개월 동안 찾아다니던 끝에 드디어 나에게 딱 맞는 레벨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난 거라 너무 기뻤어.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튜브로 구해주는 안전요원 같은 기분이었지. 벅키 선생님은 엄청난 전문성과 경험, 실력으로 수업을 이끌어주셨어. 같은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도 점점 자신을 사랑하고, 춤을 배우는 즐거움과 기쁨을 알아가며 모두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어 느낄 수 있었어. 진짜 진짜 행복한 시간이었어!
거울과 나
처음 '뚝딱이 레벨업' 정규 클래스에 갔을 때, 제일 먼저 배운 건, 앞에있는 전면거울을 향해 다가가면서 자신감 있게 워킹하는 연습이었어.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서 어색하지 않게, 또 내가 내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게 춤의 기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 춤을 배울 때,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인 것 같아. 그래야 거울 속 나랑 마주할 수 있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춤을 출 수 있거든! 그게 안될 경우에 춤을 출 수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정말 많아. 내 모습조차 긍정이 안 되는데 어떻게 춤을 출 수 있겠어? 거울을 보는 내 모습에 익숙해지고 자신감을 붙이고 나서는, 거울을 보고 박자에 맞춰서 몇 가지의 포즈를 취하는 것을 배웠어. 춤의 가장 기초단위에는 나 스스로 자신감게 있게 포즈 취하는 것을 연결하는 것과도 같아. 내 몸에서 자신감 있는 부분을 터치하거나, 허공의 빈 공간에 포인트로 찍거나. 포즈들을 박자에 맞춰서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춤이 돼. 나의 모습을 멋지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 동작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순간이 나만의 춤 동작이 된다고 느껴졌어.
이 수업을 마치니 내 몸에 대한 자신감과 워킹에 대한 자신감이 잔뜩 붙어서, 걸어 다닐 때도 당당하게 걷게 되더라. 포즈를 취하는 것을 연결하는 것이 흐름이라면, 그 흐름을 배울 때에는 단순히 동작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 동작을 내가 어떻게 음악과 연결지어서 느끼는지를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졌어. 가사에 맞춰서 표현하는 부분도 있고, 나의 몸에 집중해서 안무를 표현하는 부분이 있는데, 각자의 몸과 자아의 조각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내가 직접 나의 정답까지 그 동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찾아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이건 한 번 배운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무한대의 시간동안 나의 정답을 찾을때까지 개인연습을 하는게 필수적인 것 같더라. 강사님이 아무리 춤을 잘 추고 잘 가르쳐 주어도, 그 동작은 그의 정답이지 나의 정답이 될 수가 없어. 내가 제대로 안무도 못 외우고, 내 몸의 자신감이 없어서 스스로를 터치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한다면 춤을 출 수가 없지. 그러니까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고, 동작을 익히고 나의 자신감이 온전히 될 때까지, 내 몸에 완전히 익혀야 해. 그때 그 동작이 내 춤이 되는 거지. 물론 이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내가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하니까 꽤 어려운 과정이기도 해.
카리스마 넘치는 전문 댄서의 수업을 가보면 그가 가만히 서 있는 동작을 통해서도 온몸의 솜털 하나하나까지도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고 느껴지는데, 그건 그만큼 자신의 온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에너지라고 느껴졌어. 전문 댄서의 숙련자 수준의 수업은 그만큼 어려워. 동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엄청난 힘과 에너지가 들어가지. 수업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1시간동안 배운 안무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걸 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인것 같아. 내가 잘 못한다고 자꾸 틀린다고 느끼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힘이 필요해. 초보자한테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아. 이를 악물고 해내는 힘이 필요하지.
어쩌면 무대위에 서는 공포도, 촬영을 할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들도 이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서 촬영을 무사히 마치는 것을 해 냄을 통해 나라는 조각을 보여줄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아. 그 기회를 통해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만날 수 있는 거지. 멋지지 않아? 춤은 노력을 결코 배신하지 않더라구. 내가 노력한 만큼 화면에서 어떻게 보이든 간에, 나 스스로는 알게되는거야. 그래서 춤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해. 각자의 정답에 도달하느냐 안하느냐는 내면의 자신이 알고 있잖아. 노력의 과정 그 자체이지. 춤에서의 모든 기본기들은 이것을 해 나가기 위한 과정을 밟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나의 경우에는 춤을 배우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거울 속 나를 극복하는 일이었어. 걸리쉬 안무를 연습할 때에는 곡선이 없는 나의 몸이 남들과 달라서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내려놓기가 힘들더라고. 그래서 나의 몸에서 섹시함을 찾아내서 표현하는 데까지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어. 머리카락도 짧고, 가슴도 없는 나의 몸을 수없이 조우하고 터치해 보면서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는 느낌과 각을 찾아내 보려고 수없이 연습했지. 11초짜리 걸리쉬 안무를 연습하는데 3일간 새벽연습을 하며 15시간 동안 연습했어. 그 안무가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과 감정을 이해하고 느껴보려고 최선을 다했었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상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그 감정을 내려놓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는것을 느꼈어.
먼저 나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해. 스스로 자신감이 없으면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가 없잖아. 자신감이 없으면 다음 동작을 할 수 없게 돼. 바로 그 순간부터 몸이 굳고, 머리가 하얘지거든. 나에게 춤은 자신감을 배우는 과정의 연속이었어. 춤은 내 멋을 믿고, 내 움직임을 즐기면서 표현했을 때, 진짜 멋진 춤이 되는 거니까! 보고 싶은 춤이란 그런 것 같아. 당당하고 즐거워하며 나를 뽐내는 매력적인 움직임. 춤을 출 때의 표정조차도 기쁘고도 아름답게.
자신감? 자신감은 내 안에 있어.
꽃은 엑스레이에 찍혀도 여전히 꽃이고, 가장 큰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어.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믿고 존귀하게 여기는 태도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멋'은 진짜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지. 외모가 객관적으로 못생겼든, 아름답든, 체형이 크고 작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굉장히 놀랐던 순간은 키가 180이 훨씬 넘고 체격도 큰 남자 수강생과 '걸그룹 안무'를 배웠을 때였는데, 누구보다도 걸그룹과 외모의 갭차이가 가장 컸던 그가 그 수업에서 가장 멋진 춤을 췄다는 사실이었어. 그를 통해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크게 깨닫게 되었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과 아우라가 있었는데, 그는 춤을 추는 그 순간에 미쳐있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어. 도취된 사람 그 자체였지. 정말 너무 멋있었어!
나와 그와의 차이가 뭘까 고민해 봤는데, 무엇보다도 자기가 멋지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은 마치 공기 중 떠다니고 있는 족쇄처럼 나의 움직임과 행동 표정 기분들을 제한하게 돼. 그걸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를 믿는 힘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고 생각해. 물론 가장 중요한 '연습'을 통한 실력향상이 자신감의 근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마인드도 '이만하면 멋있다'라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 내가 조금 틀리더라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나의 모습을 긍정해 주는 '깡'이 좀 필요한 거지. 사실 춤을 배우러 간지 4번째에 불과한 춤이 나는 가장 멋있더라고. 동작은 완전 다 틀렸고 제멋대로였지만,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이만하면 멋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여유로움을 주고, 당황하지 않게 만들어주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안무만 했었을 뿐인데, 그날의 춤은 나의 베스트 영상처럼 느껴졌었어. 물론 주위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훨씬 더 동작을 잘 따라서 췄지만, 그런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던 대범함이 있었달까? 물론 춤적으로도 많이 발전해야 멋진 댄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면의 그 마인드는 어디서나 나를 빛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걸 배웠지.
숙련된 댄서들의 춤을 보고 멋지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거울 속에서 무한대로 연습하며 자신을 마주하며 자기만의 멋을 찾아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진심을 다해 춤을 배우면 자신감이 엄청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모습을 긍정하는 훈련을 하게 되니까, 그 긴 과정을 거쳐오면 멋있어질 수밖에 없지. 당연히 어려운 과정들을 해내온 자신이 대견해지고 자신감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돼! 자신을 사랑해온 결과물의 표현이 바로 전문댄서들의 춤인것 같아. 모든 댄서들은 각자 자신과 마주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얻은 경험으로 고유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독보적인 예술가들이야. 나는 몸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모든 댄서들을 존경하게 되었어.
나다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는 여정은 계속될거야. 다음편도 기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