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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도 괜찮아 (2)-완벽이 아닌, '나다움'

by 백안




춤을 처음 시작할 때에 나만의 미적 기준을 통해 성별 이분법을 초월한 몸의 조각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 나라는 존재를 ‘증명’ 해야 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었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몸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바디프로필 촬영이나 정해진 안무를 수행하는 무대라면, 최선을 다했을 때 나오는 결과가 있겠지만, '나'라는 몸의 조각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일(섹시함과 멋짐을 담아 '대중적인 공감의 영역'에 넣는다)은 정해진 정답도, 분명한 목적지도 없는 모험과도 같은 일어있어. 그렇기에 더욱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설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야. 저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했기에, 내가 직접 정답이 되어야 했었어. 내 남은 삶의 가치는 그것이면 충분했거든. 나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작품을 통해 세상에 다양한 몸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


세상에는 출생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도, 누구보다 용감하게 자기답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었어. 그리고 그들 중에는 먼저 하늘로 떠난 ‘용감한 여전사들’도 있었지.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전화통화로 즐거운 수다를 했던 친구중, 한 명이 운명을 달리했어. 누구보다도 강인해 보였던 그녀였기에, 나는 그녀에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안타깝게도 하늘나라로 가게 된 거야.


나는 그녀들을 위해 세레나데를 바치고 싶었어.


"내가 이렇게 살아 움직여 아름다움을 만들어갈 테니, 언젠가 더 따뜻해진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다움’을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어. 고단함 그 자체였지. 나다운 아름다움과 반대되는 것은 티끌 하나도 용납할 수 없었어. 주치의한테 조울증이라는 진단까지 받게 될 정도로 과도하게 집착했었지.


먼저 나라는 사람의 캐릭터를 정했어. 내면과 외모를 연관시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스스로의 변화과정을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여기며, 그 상징을 ‘은빛 새치’와 연결했어. 몸뿐만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조차도 ‘검은색에서 흰색 사이’의 것들만 허용했었지. 그리고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니,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어.


나는 혼자 살아갈 작은 원룸으로 이사했고,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들은 모두 버린 후 새롭게 채워 나가기 시작했어. 큰 가구는 전신 거울 하나만 들였고, 오로지 춤과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에만 사명을 두고자 했었어.


집착은 모든 면에서 점차 심해져서, 아름답지 않은 물건은 사용할 수 없었고, 사용하고 싶지도 않았어. 심지어 포크가 필요했는데, 마음에 드는 포크 하나를 사는 데에도 몇 주나 걸리기도 했었지.

포크가 없어서 수저로만 밥을 먹었는데, 자주 가던 와인바 사장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포크 두 개를 선물해 주기 전까지는 숟가락으로만 생활해야 했지. 그 정도로 심각한 집착이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원하는 색상의 노트북을 사기 위해 같은 사양의 제품보다 수십만 원을 더 지출하기도 했어. 어두운 색의 노트북으로는 글을 쓸 수가 없었거든. 그냥 그게 아니면 안 됐기 때문이야. 강박적인 집착이었지.








'내 몸과 춤을 통해 나를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집착들은 점점 더 나를 지치게 만들었어. 매일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부족한 점을 찾아냈고, 그럴수록 나를 긍정하기보다는 혹사시키게 되었지. 극도의 절식을 했고, 몸을 깎아내기 위해 과한 시술도 서슴지 않고 감행했어. 그러나 외적인 모습에서 만족보다는 불만이 훨씬 더 크게 보였어. 내 눈에는 내가 절대 완벽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야.


결국 주치의가 과잉사고 등이 의심된다고 하며, 중증 조울증 진단까지 내렸었어. 의사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당분간 춤도 추지 말고, 음악도 듣지 말라고 했었어. 간혹 예술인들 중에서 작품에 심하게 집착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심해질 경우 조현병이 발병될 수도 있다고 설명해 줬어.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쉬기보다는,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도록 ADHD약물을 처방해 달라고 말했어. 그걸 먹어야 더 각성돼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의사는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고 당분간은 커피도 피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전혀 나를 쉬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살아야 했거든. 내가 내 몸으로부터 도망갈 곳은 없잖아.

쉬기는커녕, "예술하는 사람 같다."는 말에 "내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 싶어, 칭찬을 받은 듯한 기분까지 들었지. 강력한 항불안제와 ‘코끼리 수면제’라 불리는 약을 복용하며 하루 30시간씩 기절하듯 잠에 빠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그 약효를 뛰어넘을 정도의 고용량 카페인을 섭취하며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였지. 매일 4리터가 넘는 커피를 마시며, 몸과 정신이 내는 비명을 무시한 채 말이야.


(사실 춤을 배우는 과정을 정말 어려워. 수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곳인 데다, 춤도 잘 못 따라 하겠고, 나 스스로 만족감보다는 불만족스러운 감정들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야. 성취감을 갖는 것도 어느 수준이상의 단계에 도달했을 때부터 느껴지는 감정인 거라 초반에는 그런 상황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어.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천천히 하는 게 중요해. 내가 즐겁게 또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 멀리멀리 갈 수 있잖아. 춤은 단순히 1~2년 배운다고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아. 꾸준히 몇 년을 배우고 연습을 통해 실력을 성장시켜야 해. 어려운 것을 쉽게 할 수는 없어. 어려운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잘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의사도 말릴 수 없었던 나를 드디어 정신 차리게 만든 것은, '이보다 더 할 수 없다는 감정을 스스로 느꼈을 때'였어. 바로, 화보촬영을 했었을 때였지. 내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남겼을 때, 나는 드디어 나라는 조각을 꺼냈다는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진실했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스스로 알기 때문에 노력의 밑바탕으로부터 올라오는 '자부심'이 느껴졌지. 그 뒤로부터는 자연스럽게 집착도 내려놓게 되고, 정신과 약물도 줄여가게 되면서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단계까지 이르렀어. 나의 정상을 찍고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자부심은 완벽한 형태를 갖춘 결과로부터 오는 만족감이 아니야.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감정이야. 나를 사랑하고, 아름답게 여기기 위해 아낌없이 노력해 왔다는 그 믿음.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 '노력의 과정 자체'가 가장 큰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거지.












춤은 나에게 "살아서 움직여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었어. 평생 동안 타인에게 나의 아름다움을 짓밟히고 평가받으며 살아온 내게, 처음으로 ‘어떤 아름다움을 입어도 괜찮다’고 말해 준 예술이지. 처음에는 몸을 작품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춤이 너무 즐거워. 나를 사랑하기 위해 춤을 추고, 춤추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춤을 춰. 움직임자체는 살아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거야. 그러니, 움직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답지.



‘백안’은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라는 뜻이야. 춤을 배우면서 깨닫게 된 의미를 나의 작가명으로 지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고 나 스스로를 그렇게 봐야 한다는 뜻이야.


"당신의 존재 자체로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말은 한 아티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결국 그 응원과 지지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어. 마치 그녀를 보며 내가 꿈꾸던 환상이 현실이 되어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서로의 거리가 멀었어도, 우리가 함께 속한 세상에서 서로의 빛이 된 것만 같았어. 그 환상을 현실에서도 꿈꾸듯 아름답게 이루어가며 살아가고 싶어 져.



춤을 통해 나는 삶의 힘을 얻었어. 춤이 나를 살린 거지. 춤을 추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이고, 춤추는 내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평생 춤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며, 죽을 때까지 춤을 추며 살아가고 싶어. 물론, 우리의 삶은 순조롭게 흘러가기 위해서 서로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해. 그래야 따뜻한 온기가 생길 수 있지. 나는 그 따뜻한 흐름을 직접 만들어가려고 해. 그 찬란한 연대야말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나의 춤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이 되어 전해지기를 바라.






존경하는 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해주었어.


"춤은 틀리거나 맞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몸으로 표현하는 모든 과정이 소중한 거야. 뚝딱거리는 게 뭐 어때서? 중요한 것은 거기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야. 내 춤은 나만의 이야기니까.. 힘을 내. 너의 춤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어."







그 말은 영원히 나를 춤추고 싶게 만들어 줄 거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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