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 가득채운 화보촬영
"나만의 선을 담다: 나답게 빛나는 몸의 선을 만들다"
<화보촬영>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나를 소개할 대표 사진의 콘셉트를 어떻게 정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성별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나뉘지만, 내 몸은 남성의 신체도, 여성의 신체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 고민이 더 깊었지.. 어떻게 춤을 통해 아름다움을 입힐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깊이 생각했어. 먼저, 다양한 장르의 춤에 도전해 보았고. 파워풀한 크럼프부터 부드러운 힙합댄스. 이어서, 걸리쉬하고 섹시한 매력의 힐댄스까지. 저만의 매력이 어떤 장르에서 돋보일 수 있을지 다양한 시도를 해 봤어.
오랜 고민 끝에, 성별의 경계를 넘어 ‘선(線)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를 표현하기로 결정했어.
모든 몸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선이 존재하며, 성별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마치 춤 선처럼 말야.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나다움을 살리면서도, 선(線)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모를 나답게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여성성과 남성성의 중간 어디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담아내고자 했었지.
몇 년 전, 가슴수술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퀴어문화축제에서 드랙킹(Drag King) 분장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드랙킹이 아닌 ‘드랙 미(Drag Me)’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어. 남성성을 흉내 내거나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아름답고, 내 감각이 느끼는 대로 나답게 가꾸는 것, 그것이 곧 '드랙 미'라고 생각했어.
먼저, 몸의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머리를 아예 삭발하기로 결심했었지. 짧은 머리가 곧 남성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평생 머리좀 길러라. 머리가 왜이렇게 짧냐? 라는 소리를 들어온 것에 대해 그것이 아니라는것을 반증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오히려 유색인종 여성 가수들이 즐겨하는 스타일처럼, 삭발은 여성적인 두상의 선(線)을 강조하는 강력한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거야. 실제로 홍대에 외국사람들이 많이 오는 힙합클럽에 가본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었던 다양한 유색인종 여성들이 삭발을 한 스타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굉장히 예쁘고 멋지더라고!
사진 촬영을 위해 10kg를 감량했고, 더욱 가늘고 섬세한 선을 만들기 위해 턱선과 복부 지방흡입 수술까지 받았어. 그러나 각종 시술들은 결과적으로는 나를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집착을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낸 거라고 생각해. 몸 선이 가늘어지고 두상의 형태까지 드러나자, 더 이상 선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외모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은 없을 것 같았어.
‘그래, 이제야 비로소 나다워졌구나. 나의 최선을 다했구나.’
비로소 스스로 인정하게 되자, 비로소 화보 촬영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화보를 찍기 위해서는 사진작가를 섭외해야 했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
촬영을 위해 여러 사진작가에게 문의를 남기기도 했어.
"안녕하세요. 작가님. 촬영 문의를 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여성이 상반신 탈의를 한 누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까요? 가슴은 없지만, 몸의 선이 잘 드러나면서도 중성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도록 찍고 싶습니다."
"네?"
"제가 바디 디스포리아를 겪고 있어서요. 쉽게 설명드리자면, 제 몸은 성소수자의 몸 중에서 ‘트랜스젠더의 몸’이라는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런.. 사진은... 촬영하지 않습니다."
(뚜... 뚜... 뚜...)
주로 가족사진이나 스냅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들은 이런 식으로 거절했어. 포트폴리오로 나의 작품을 쓸 수 없다는 황당한 이유를 대는 곳도 있었지.
나도 여성인지라, 상반신을 탈의한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에 대해 공감해 줄 수 있는 사진작가를 찾는다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거절을 여러 차례 당하고 나니 허무한 기분도 들었지. 기분 전환을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작은 사진관을 발견했어. 간판도 없는 허름한 공간이었지만, 벽에는 사진작가가 ‘예술’에 대해 쓴 글귀들이 잔뜩 붙어 있었지.
‘이곳이라면 혹시 촬영을 해 줄지도 모르겠다.’
사진작가가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신체변형 예술가’라는 단어가 떠올랐어. 결국 나와 사진작가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었기 때문이지.
세상에 없는것을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것이 예술이잖아. 그와 나의 공통된 공감대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던거야.
"안녕하세요! 저는 신체변형 예술가인데요, 상반신 탈의 사진을 촬영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아... 뭐 가능은 한데.. 혹시 외국에서 활동하시는 분인가요?"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활동하면서 해외를 오가고 있습니다." (뻔뻔함 1)
"아... 유명하신 분인가 봅니다?"
"유명하진 않습니다. ^^" (뻔뻔함 2)
"아.. 뭐 예술을 하신다는데.. 예술하시는 분이라면... 뭐 찍어 드리겠습니다. “
이렇게 해서 촬영이 성사되었어.
갑작스럽게 진행된 촬영이었기 때문에 메이크업도, 의상도, 분장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어. 하지만 사진관 외부를 암막 커튼으로 가리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자 촬영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어.
다만, 사진관의 구조가 다소 독특했어. 촬영 스튜디오와 대기실이 분리되지 않아, 동네 주민들이 촬영을 구경하기 위해 하나둘씩 들어왔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분위기가 마치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고, 오히려 촬영에 더 몰입할 수 있었지.
선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그동안 발레를 배우며 익혔던 기본기와 동작들을 하나하나씩 해보면서 몸을 풀기 시작했어. 보이지 않는 발끝까지도 신경을 썼지.
촬영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어.
결과물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는 만족했어.
제가 신체적 매력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고 있기에, 촬영된 사진이 무엇보다 값지게 느껴졌어. 그리고 사진에는 남성의 몸, 여성의 몸이라는 기준이 아니라, ‘몸 선’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동작의 조화가 사진에 잘 담겨 있었어.
이 사진이 대중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것은 아닌것 같아.
진정함. 이 사진을 찍기까지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심이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야.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보람 있는 작업이었지.
"Lord, allow me the courage to say goodbye tomorrow and the strength to live through today."
(주님, 내일과 이별할 용기와, 오늘을 살아갈 힘을 허락해 주세요.)
이 문구는 제가 춤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각오를 다지며 왼쪽 손목의 동맥 위에 새기려 했던 문장이야.
춤을 통해 제 아름다움을 스스로 믿고, 내가 살아도 되는 존재인지 증명하고 싶었거든. 내일과 이별할 각오를 해야 할 만큼, 그리고 신께 오늘을 살아갈 힘을 구해야 할 만큼. 딱 그만큼 절실했고 비장했지.
나는 단순히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겪어온 아픔들을 스스로 해석하고, 온몸으로 표현해 나가고 싶었어. 성별 이분법 적으로 나뉜 세상에서, 제 스스로 설 자리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강력한 소망이자 의지가 반영된 글귀이기도 하지.
그러나 결국 이 문구를 타투로 새기지는 않았어.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손목을 보면서 내일 죽을 각오를 매일 해야 한다면 그 삶의 긴장감은 얼마나 가중되겠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은 절대로 내일 죽을 각오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야.
춤을 배운 지 1년쯤 지난 지금은 다행히도 춤이 가진 힘으로 인해, 오늘을 살아가는 기쁨과 내일을 살아가는 소망을 함께 가지는 삶을 살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