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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안 Dec 20. 2024

몸 선, 극강의 아름다움 ‘The Heels’

힐댄서가 되고 싶었던 뚝딱 킹.



  



Tales by moonlight


  힐댄스를 처음 보게 된 건 댄서 '펑키와이' 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였어. 펑키와이님을 비롯한 6명의 아름다운 댄서들은 각자의 젠더와 상관없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미신'(美神)처럼 보였어. 하얀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의상조차 음악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황홀한 아름다움을 자아냈지. 영상 속의 아름다운 남신과 여신 같은 멋진 댄서들처럼 성별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춤을 춰보고 싶었어. 그들의 의상도 물론 큰 영향을 줬지. 그때 깨달았지. "이거다! 이거라면 나의 아름다움을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보여줄 수 있겠다. “라고. 그들의 자유분방하고 부드러운 춤선은, 나를 매혹시켰고, 꼭 이 안무를 배우는 수업에 가보고 싶어 졌었지.      


 그 무대가 강하게 끌렸던 이유는 나는 비록 가슴 부분에 큰 흉터가 있지만, 저런 의상을 입고, 저런 춤을 춰 보일 수 있다면 흉터가 비치는 의상을 입더라도 아름답고 멋있어 보일 거라고 믿었어. 이 영상에 있는 댄서들처럼, 젠더와 상관없이 몸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댄싱을 꼭 하고 싶었어!

  또 힐 그 자체가, 나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표현 도구가 될 거라고 확신했어. 보이쉬한 모습과는 다르게, 예상을 깨는 반전 매력을 '확' 주는 거지. 여성성/남성성이라는 두 굴레에 구애받지 않고 나만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힐댄스를 배우기로 결심했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힐댄스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어! 왁킹으로 얻은 자신감에 힘입어, 열 손가락 가득 데싱디바 네일을 붙인 채 펑키와이님의 수업에 당당하게 찾아갔었지. 수업의 난이도가 어떨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그냥 하고 싶었어. 조금이라도 따라 해 보고 싶었어. 내가 너무너무 좋아했던 무대였기 때문에. 그것을 단지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기뻤던 거야.




사진 출처 : 유튜브 'tales by moonlight - funky.y choreography' 캡쳐본






 

  무대에서 함께 춤을 추던 댄서들과 제자들이 수업에 많이 왔었어. 그들은 성별과 체형들이 모두 달랐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아온, 모두가 치열한 노력을 거듭한 멋진 댄서들이었지. 모두 '자신'이라는 조각을 수만 시간 동안 만들어내고 빚어내 온 사람들이었어. 그들의 빛나는 움직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지. 다양한 몸의 표본들을 보면서, 나도 겉모습이 어떻든, 성별이 어떻듯, 보이는 외모와는 상관없이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으니까!   


  그중에서도 특히 한 댄서가 기억에 남은 것 같아. 그녀는, 그리 크지 않은 키와, 몸의 굴곡이 뚜렷한 체형을 갖고 있었어. 뒷줄에서 조용히 수업을 듣던 그녀는, 마지막 촬영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뿜어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어. 그 힘과 파워풀함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마치 화산이 터지는 것 같더라. 너무 멋있었어. 그녀를 보고 특히 깨달았던 사실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 당당할수록 그 빛이 폭발적으로 발산되어 멋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 자신감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멋진 댄서가 되기 위해서 밟아온 길고 긴 자신만의 여정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움직이는 예술'을 한다는 것은 초당으로, 아니 그보다 더 작은 나노단위로 나뉘어, 각각의 시간 동안 자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이어 붙이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고 생각해. 그 무한대의 시간 동안 자신이 가장 멋있어 보이는 모습을 찾고 발견해 내기 위해 수만 시간을 연습하는 것이겠지. 역시 그만한 노력이 바탕이 된 자신감으로 에너지가 폭발하는 거구나 싶었어. 자신의 움직임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길고 긴 여정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마주하며 끝없이 노력했던 결과일 거야. 결국, 외적인 모습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외형은 그냥 캐릭터일 뿐이지, 춤을 잘 추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었던 거야. 옷이라던가, '붙인 손톱'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거지. 그것을 깨닫고 나니 불편하게 느껴져서 손톱을 박박 떼버렸어.                


  전문 댄서들이 듣는 힐댄스 수업을 들어보니, 뚝딱이 클래스와는 완전 차원이 다르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힐댄스는 전문댄서들도 어려워하는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냥 힐을 신고 서있기 조차도 힘이 드는데, 그것을 신고 춤을 원하는 방향대로 자유분방하게 추려면 준비해야 할 기초체력과 근력이 정말 많은 것 같았어.

유연성은 물론이고 '온몸'에 힘이 필요하지. 특히 코어. 코어가 잡혀야 모든 동작에 힘이 붙고 밸런스가 쫀쫀하게 잡히는 거야. 아기가 태어나서 달리기를 하려면, 먼저 앉을 줄 알아야 하고, 그다음에 일어서고, 그다음에 걷고, 그다음에서야 비로소 뛰는 것처럼 어려운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어느 정도 운동을 해서 기초 근력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오히려 하체에 근육이 많은 것이 방해가 되어서 심지어 다리 찢기 같은 기초 동작도 못 했어. 수업 내내 조용한 강의실에서 터져 나오는 곡소리를 참아가며 배웠지. 한 동작이라도 정확히 구현해 내는 것이 정말 어렵더라. 나는 계속 실패했지만, 그날의 내 몸의 움직임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촬영을 해뒀어. 언젠가는 꼭 여기서 더 발전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첫 투지의 흔적이었지.           



첫 힐댄스 수업에서.




  수업이 다 끝난 후, 펑키와이님께 어떤 근육이 가장 중요한지 물어봤어. 돌아온 답은 역시나 "온몸의 근육이 다 필요하다"였어. 당시에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보이고 느껴져. 함께 춤을 춰보면 몸을 통해서 그 사람의 노력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 지금은 힐을 신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렵고 어색하지만, 언젠가 그녀의 베스트 댄서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손목 아대를 선물했어.



'나를 꼭 기억해 달라'라고, 언젠가 당신의 옆에서 춤을 출 수 있는 댄서가 되고 싶다고.



몸 선이 보이는 의상을 처음 입어보았다.







 힐댄스를 하기 위해서 춤의 기본기를 어떻게 다져야 할지 고민됐어. 하이힐을 신고 움직이려면, 먼저 발 끝으로 서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는 동작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발레가 가장 기본이 되는 것 같아서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서 발레를 열심히 배웠어. 발레는 모든 춤의 기본이 되는 동작들을 배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춤이야. 우선 춤의 기본이 되는 코어를 강화시키는 훈련들을 많이 배울 수 있고, 유연성을 강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돼. 앉아있는 사무직을 하는 직장인들이나 학생인 경우, 몸의 근육이 많이 굳고 코어가 무너지기 쉬운데, 발레를 배우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요즘에는 취미 발레반도 어렵지 않게 많이 찾아볼 수 있더라고.


       



나의 힐댄스 '베스트 영상.'

                        



  발레로 몸의 유연성과 체력을 어느 정도 단련시키고, 몇 개월 후 펑키와이 선생님의 수업을 다시 들으러 갔어. 비록 함께 작품을 할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걸 나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너무 만족스러워. 그 모든 과정은 다 나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들이었고, 그 노력들은 아무리 하더라도 정답만 있고, 오답은 없더라고. 누군가를 위한 세레나데를 만들려던 노력은, 결국 나를 위한 세레나데로 돌아왔어. 결과가 어떻든 나를 사랑하려는 마음과 열정으로 나를 대하다 보니 삶 자체를 너무나 소중하게 느끼게 됐지. 중증 우울증 환자였던 나는 이제 정신과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졌어. 내가 좋아하는 게 이렇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지금의 삶이 너무 즐겁고 좋아. 춤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춤이 나를 살리기도 했지. 나 춤에게 참 감사해.


  내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 온 열정을 다 쏟아 바치는 일은, 결국 나를 사랑해 주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었어. 춤을 통해 아름다움을 증명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아름다움이란 결국 '나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야. 그것보다 더 큰 아름다움은 없어.

그러니까, 너도 너만의 멋진 춤을 만들면 돼.



아름다움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건 처음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거니까.


연말인 지금, 한 해를 돌아보며 나의 춤 여정을 되돌아보고 있는데, 나 눈물이 날 것 같아. 닮고 싶은 롤 모델이 되고 싶은 댄서, 펑키와이가 늘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기에, 나도 지치지 않고 꾸준한 여정을 해 올 수 있었음에 참 감사해. 그녀를 만날 수 있어서도 감사하지만, 이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모든 댄서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전하고 싶어. 그들은 누군가의 멋진 롤 모델이자,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는 멋지고 귀한 분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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