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유물론 (3): 생명주의와 낭만주의에 학문적 무기
이번 "부정의 유물론"시리즈는 3부작으로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1부는 맑스의 유물론에 대한 설명과 역사, 재구성의 필요성을 간략히 제시할 것이고 2부는 기존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심층적 비판을 다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부는 맑스의 유물론을 부정과 비판의 사유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를 설명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부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의식과 실재 중 무엇이 우선하며 선행하는 관계인가는 철학사에서 유서깊은 논쟁이다. 또한 이러한 논쟁은 종교의 지배를 받았던 중세, 르네상스 이후 과학과 근대성의 지배를 받는 현대 등 순수한 철학적 논쟁이 아닌 사회적 배경에 연관된 정치적 요소들과도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해방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 그동안의 유심론-실재론 논쟁을 뛰어넘는 새로운 철학적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는 맑스의 유물론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며, 어떻게 왜곡되었고 그 기능을 상실했는지, 그리고 그 사유를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제시했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도구적 이성으로써의 유물론을 넘어서는 해방의 추상으로의 유물론에 대해 개괄할 것이다. 물론 매우 힘들고, 모순이 많은 작업일 수도 있다. 자칫하면 변증법적 유물론과 같이 기계주의와 결정론으로 곡해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맹신하는 관념론적 이론으로 왜곡될 여지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먼저, 부정의 유물론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재론의 주장을 수용한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자유'란 추상은 사회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부정의 유물론에서 순수한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은 주어진 환경 내에서 스스로를, 또한 사회를 주체적으로 형성하고 구성해 나간다.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역사에, 사회에 존재할 지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비판과 부정의 기준, 즉 해방의 추상을 사회에 초월하여 인식하고 사유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가진다. 섬광처럼 스쳐가는 해방의 추상을 붙잡을 지, 현실을 관조하고 주저앉을 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의 유물론은 일부 모순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와 애매모호함을 내포한다. 첫 번째로, 위와 같이 개인의 자유가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면, 인간이 주체로서 해방될 수 있는가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소외와 억압을 극복하고 자유라는 해방의 추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부정의 유물론의 핵심인데, 사회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자유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꽤나 모순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지만, 우리는 '자유'라는 개념이 어디까지나 추상적이고 변화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 자유를 재산권, 참정권 등의 구체화된 권리와 성격으로 규정한다면 이는 분명 이에 대응하는 사회가 선행되어야 할 테지만, 자유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비동일자들의 투쟁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한 마디로, 자유는 시공간을 초월한 초현실주의적 개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또한 유물론이란 단어가 실재론에서의 실재를 '물질'로 국한시켰다면 부정의 유물론은 실재를 단순히 물질로 일원화하지 않는다. 인류가 축적해온 역사와 사회, 언어 등 맑스-레닌주의가 상부구조로 규정했던 요소들 역시 개인의 의식을 구성하며, 이러한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서로 상호작용하며 작동한다. 그러므로 부정의 유물론은 단순한 유물론이 아닌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더 가까운 위치에 서있다. 더 나아가 부정의 유물론은 과학주의와 결정론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는데, 기존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원자론을 발전된 과학에 뿌리에서 수용하며 결정론적이고 과학주의적 성격을 띄게 되었다. 하지만 과학에서 파동의 발견은 과학이 결정론적이지 않으며 우연적 요소를 내포함을 드러내었기에 자연 역시 정해진 법칙으로만 운동하는 것이 아닌, 다원적이고 우연적 요소들이 운동 과정에서 포함될 수 있다는 비결정론적 사유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유의 연장선에서,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자연이 인간 외부에서 운동하는 성격을 띈다 하더라도, 그 운동 역시 우연적이고 다원적이기 때문에 정해진 자연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부정의 유물론은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부정변증법적 사고 체계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실재론을 단순히 물질주의로 해석한 기존의 유물론을 파기하고 물질이라는 하부구조와 언어, 역사와 같은 사회의 산물, 즉 상부구조라는 두 요소가 인간 외부에서 의식과 자유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며 두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나간다. 또한 자연이란 존재 역시 법칙과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고 우연적이며 다원적인 운동을 내포하기 때문에, 일원론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부정의 유물론은 법칙을 발견하고 사회를 규정하려는 근대성과 과학주의적 이론이 아닌, 이성과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을 정당화했던 이론과 억압자들에게 대항하는 생명주의와 낭만주의에 학문적 무기이다. 정해진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써내려가는 것이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 또한 우리 스스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