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지 않는 전화기를 붙잡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험가입을 완료한 후 불안한 마음에 계속 집주인의 전화번호를 눌러본다. 여전히 응답은 없다. 왜일까? 점 점 더 불안해진다, 하지만 그 불안함도 잠시 이직한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애써 집 문제는 잊어버린다. 그리고 또 몇 개월이 지난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집주인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그것도 무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의 버스를 타고 부산에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집주인의 집으로 도착한다. 이윽고 문을 두드리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나온다.
“네~ 누구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OO지역 세입자입니다. 아버지 존함이 혹시 A 씨가 맞나요?”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집까지 찾아오셨나요?”
“아 아버지가 연락이 되지 않아서 서울에서 직접 찾아왔어요, 아버지 A 씨가 지금 전화가 되지 않아요. 혹시 다른 연락처는 없을까요? 있으면 드릴 말씀이 있으니 꼭 좀 알려주세요.”
“아버지 요즘 전화를 잘 안 받으시고 집에도 자주 안 들어오세요.”
“그래도 다른 전화번호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제가 편지를 썼는데 이것 좀 받아뒀다가 아버지께 전달 좀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집주인의 집 앞 문을 사이에 두고 작은 대치가 끝났다. 허튼짓을 했다가는 계속 연락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집 안까지 쳐들어가지도 못했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는 마치 잘 훈련받은 병사 같았다. 딱 맞는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날 응대했다. 그때 직감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찾아왔다는 사실을.... 낯선 어른이 왔는데도 당황한 기색 하나 없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기계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순수함이라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눈망울에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잠시, 나는 여전히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집주인은 부산/경남지역에 꽤 많은 집을 보유한 것으로 보였다. 갭투자를 했으나, 갑작스러운 집값 폭락으로 빚이 생기고 감당하지 못해 잠수를 탄 것 같았다.
2주일이 지난 뒤, 다시 한번 집주인에게 갔다. 그리고 그곳엔 다른 사람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A님이 안 계신가요?”
“아 그분은 다른 데로 이사했어요, 부산 내 다른 지역으로 갔다고 하던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네? 2주 전만 해도 있었는데, 진짜인가요?”
“네, 저희는 어제 이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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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마음에 관리실로 찾아가 집주인 A 씨에 대해 물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혹시 0-000호에 살던 A 씨에 대해서 아시나요?"
"알죠, 몇 사람들이 이렇게 찾아왔었어서 더 잘 알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혹시 이사를 갔다고 하는데 어디로 가셨는지는 아시나요?"
"우리는 그거까지는 모르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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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나는 집주인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잃게 되었고, 기계처럼 대답했던 어린아이의 눈빛을 삭제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