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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Feb 05. 2024

#14 정말이지, 장인어른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장인어른의 빤스런.

북꿈이네의 첫 번째 캠핑.



캠핑장비를 구매할 때 적지 않은 금액을 찬조해 주신 장인어른. 장인어른의 속내는 뻔히 보였다.


'나 이제 퇴직했으니 시간 많다. 북꿈아 평일에 나랑 캠핑 다니자'



뭐 나는 장인어른 좋아하니까. 속내를 알면서도 흔쾌히 찬조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의 첫 캠핑일이 다가왔다.




장모님을 혼자 두고 가려하니 마음이 쓰인다. 장인어른께 전화를 걸어본다.


"아버님! 어머님은 안 가신대요? 같이 가면 좋을 텐데요."


장인어른이 헛기침을 한 번 하시더니 잠시 후 대답하신다. 아무래도 방에 들어가서 전화를 받으시는 듯하다.


"저번에 안 간다고 했었어. 우리끼리 다녀오자"


"제가 다시 전화해서 여쭤볼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우리끼리 가자. 그리고 지금 장모님과 일반적인 상태가 아니야. 우리끼리 가자.."


"혹시 지금 전시상태인가요?"


"맞아."


"아..... 그럼 11시까지 모시러 갈게요. 팬티랑 양말 칫솔만 챙기셔서 후딱 나오셔요"



그렇게 장인어른의 빤스런이 시작되었다.





장인어른과 둘이 먼저 캠핑장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캠핑 의자 먼저 펼치고 캔맥주를 하나 꺼내 장인어른에게 드린다.



"아버님 의자에 앉아서 경치 보며 맥주 드시고 계셔요. 저 텐트 치는데 두 시간 걸려요."



"아버님, 거기는 텐트 쳐야 하니까 다른 데 가서 드시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살짝 옆으로 자리를 옮기신다. 약 30cm 정도.

알 수 없는 분이시네.



그래도 장인어른이 도와주신 덕에 이번 피칭은 약 20분 컷으로 끝낼 수 있었다.



대박. 나 이제 텐트 좀 치네.



나머지 자잘한 테이블과 의자 같은 것을 세팅하기 위해 장인어른을 잠시 독방에 넣어드린다.



그리고 잠시 뒤.



세상 근엄한 자세로 잠에 드셨다. 정말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와이프도 한쪽 다리 들고 자는데.



장인어른이 주무시는 틈을 타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장인어른의 위치가 90도 회전되어 있다.



진짜 역시 피는 못 속이네.



육퇴 후 주변 경치를 살펴본다. 맥주를 살짝 가미하고 싶지만 참는다. 이제 와이프 데리러 가야 하니까.




그 사이 장인어른은 잠에서 깨셨고, 와이프 픽업을 가기 전 장모님께 동영상을 하나 찍어 보내본다.



고려장에디션.



그리고 곧장 답장이 도착한다.






와이프를 픽업하고 우린 다시 금산 인삼골요양 아니 인삼골캠핑장에 도착한다. 와이프는 오자마자 고기 고기를 외친다.




불은 참 신기하다. 서로 평소에는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오장육부 저 아래에 있던 이야기들이 입 밖으로 나온다.



와이프는 소장융털에서부터 얘기 꺼내더라.

부녀간의 서로 서운했던 이야기.



얘기 중간에 조금 흥분하신 아버님이 신발을 벗어던지신다.



부녀간의 진지한 대화를 위해 조용히 한걸음 뒤로 물러나본다.



어느 한쪽 편을 들어도 불씨는 산불이 되어 나에게 옮겨 붙을 것이기에. 조용히 퇴장.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퇴실일이 밝았고.



아버님의 표정이 부쩍 긴장되어 보인다. 집에 들어가기 두려우신 모양.



분위기 전환 후 집에 들어가는 것을 도와드리기 위해 장모님과 점심 약속을 잡아본다. 장모님도 흔쾌히 나오시고, 우리는 한마디 말없이 칼국수를 흡입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왔는데.



두 분 뭐 카톡으로 대화하시나요?

처음 보는 사이도 이렇게 떨어져 앉지는 않겠다.



이제는 정말로 헤어져야 할 시간.

장인어른을 장모님 곁으로 돌려보내드려야 한다.



이대로 집 가기 아쉬우신지

장인어른이 3일 뒤에 또 만나자는 사인을 보낸다.



그러나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장모님의 말에



장인어른의 2박 3일간의 빤스런은 마무리되었다.



이번 추석에 만나 장인어른에게

“어머님은 다 풀리셨어요? 어떻게 풀어드렸어요?’라고 물으니 장인어른이 대답하신다.



“풀어주고 자시고 할 게 없어. 혼자 시작하고 혼자 끝나”



장인어른도 울고 나도 울었다.

처가 이모부님도 옆에서 울고 계시더라.



그때, 장모님이 장인어른을 호출하신다.

“단아아빠. 이리 와서 이 것 좀 도와줘요.”



장인어른의 표정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장인어른은 이미 튀어나가셔서 장모님 옆에 계시다.



이야 진짜 빠르시네.

정말 짱인 어른.



정말이지, 장인어른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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