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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Feb 12. 2024

#15 뭐? 와이프 친구들이 또 왔다고?

이런 건 필요 없어.

작년 이야기.



와이프와 와이프 친구들은 8월 말 베트남 여행을 앞두고 있다. 약 3주가 조금 안되게 남은 상황.



그런데 굳이 또 우리 집에 놀러 온다고 한다.



참 다행인 것은

내가 야간 근무 출근하는 날이라는 것.



앗싸.



와이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기분이다. 

섬유유연제 한통을 다 넣고 이불 빨래를 돌린다. 



그래, 향기 듬뿍 나는 이불 덮고 잠이라도 잘 자다 조심히 들어가렴.




이번에도 와이프와 친구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레슬링을 즐길 수 있도록 경기장을 정비해 두고 출근한다. 이번에는 아랫집에서 안 쫓아 오게 적당히들 싸우다 자거라.



오늘따라 유난히 출근길 발걸음이 가볍다. 




다음 날 아침.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간다. 부디 와이프 친구들이 집에 갔기를 바라며, 또한 집이 멀쩡하기를 바라며.



이런. 와이프 친구들은 아직 존재한다. 



그럼 집을 한번 확인해 봐야지. 

욕실부터 진입해 본다.



치약 뚜껑 좀 닫고 다녀라.



얘네 이번에는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나. 

머리카락을 뜯었으면 좀 치워라.



비참한 심정으로 욕실 밖을 나온다. 



헐.



욕실 밖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은 나를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갑자기 내 이름을 외치며



"김북꿈! 김북꿈! 김북꿈!"

팔뚝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러 좀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자세를 낮추고 침착한 어투로 협상을 시도해 본다.



"그래 너네 뭐가 필요한데.."



"왕손곱창 가서 곱창전골이랑 염통구이 좀 포장해다 주면 안 될까..? 우리 그거랑 쏘맥 한잔 하자.. 우리가 직접 다녀오고 싶은데 우리 몰골이 말이 아니라ㅠ"



왼쪽부터 차례로 몰골을 확인해 본다. 



오.. 다음



이야.. 다음



헐.. 다음



아..





"알겠어. 갔다 올게"





곱창을 포장하고 돌아오니 아까 그 농민봉기 친구들은 온데간데없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있다.



정말 신기하다. 

비트코인도 아니고 무슨 변동폭이 이렇게 큰 건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얼마 전 구입한 캠핑 장비들을 테스트해 보기로 한다. 캠핑 테이블을 펼치자 친구들이 또 흥분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이 메인이라고. 

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한두 잔 먹고 말 줄 알았던 소맥.

그러나 계속 말고 있는 소맥.



염통구이를 싹쓸이하고 곱창전골로 메뉴를 바꿔본다. 



오늘 대화의 주제는 

본인이 생각하는 경제적 여유란?



농민 1: 

나는 조카들 용돈 두둑하게 챙겨줄 수 있는 정도.



농민 2: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돈 생각 안 하고 모든 밥을 사줄 수 있는 정도.



농민 3: 

지그재그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옷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주문할 수 있는 정도.



공주: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오마카세처럼 모든 음식을 에르메스랑 디올 접시에 대접할 수 있는 정도.



북꿈이: 

여행 갈 때 내가 여행 경비를 다 지불하며 다른 사람들이 돈이 아닌 그 시간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정도.



오랜만에 진지한 이야기가 오간다.





진지한 이야기 와중에 내가 왜 잘 끓고 있던 그리드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들었다.



그리고



참사가 발생한다. 

이때 맨손으로 곱창만 낚아채던 애도 있더라.



와이프 친구들의 시선은 와이프에게로 향한다. 그러고는 이내



"괜찮아. 북꿈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우리가 닦을게"



이때 이 친구들의 됨됨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친구들도 나에게 됨됨이를 느꼈을 것이다.





ㅈ됨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정리 후 카페에 가기로 한다. 




카페에 자리를 잡으니 곧 음료가 나온다. 




이번에는 아무도 나를 커버해주지 않는다.

친구들 네 명과 카페 안 사람들이 다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아무래도 와이프 친구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긴 것 같다. 얘네만 오면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급하게 자리를 마무리하는데, 와이프 친구들이 나에게 고맙다며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한다.



"우리 북꿈이에게 교보문고 상품권 같은 거라도 선물해 주자. 매번 이렇게 챙겨주고 고맙잖아."



그래도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에 뿌듯해진다. 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교보문고 상품권 같은 거 안 줘도 돼 그냥 앞으로 오지 말아 줘.."




그리고 다음 날.



재빨리 교보문고 기프트카드가 도착한다.



카드 메시지 문구가 거슬린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려요"



아.





정말이지, 와이프 친구들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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