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녀의 비장한 새해 준비

갑진년..

by 북꿈이네


2023년이 다 지나고 2024년이 밝았다.



2023년은 나에게 특별한 한 해였다. 작년 초 와이프가 블로그를 시작해 보겠다며 구매했던 노트북 덕에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많은 분들이 꾸준히 재미있어해 주고 좋아해 주신 덕에 이렇게 수십개의 시리즈가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가장 감사해야 할 대상은 와이프다. 꾸준히 알 수 없는 행동을 무한리필 해주고 있기 때문.



에피소드 무한리필 명륜진사와이프.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피소드가 계속 나온다는 것은 우리 집 '시발비용'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나의 흰머리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인데.



이제는 와이프가 먼저 나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여보, 알 수 없는 와이프 시리즈 언제 올라와?"



그걸 네가 나한테 물어볼 것은 아니지.

이게 남 이야기니?



어쨌든,



새해를 며칠 앞두고 와이프는 무척이나 분주해진다. 새해부터는 회사에서 어쩌구 저쩌구, 집 안에서는 어쩌구 저쩌구, 취미활동은 어쩌구 저쩌구 재잘재잘 잘도 떠든다.



대충 들어보니 새해 다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곧이어 핸드폰을 보며 언제나 그랬듯 숨을 헐떡이기 시작한다. 집중할 때 나오는 콧구멍 벌렁벌렁 까지.



이내 와이프는 눈을 살포시 감더니 한쪽 귀를 넘기고, 열 손가락을 우아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저 우아한 손짓은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






취미로 가야금이라도 배우려 하는 건가.

아니면 피아노?



불안한 마음에 "뭐 해?" 하며 와이프 휴대폰 화면에 도킹을 시도해 보지만 어림없다. 혼자 뭐 할 게 있다며 철통방어에 들어가는 와이프.



철통방어에 성공한 것이 뿌듯했는지 혼자 뒤통수로 웃고 있다.





그러나 나에겐 다 방법이 있지.






우리 부부는 쿠팡 계정을 공유하고 있다.



쿠팡 어플에 접속해 와이프가 지금 무엇을 보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지 염탐해 본다.





우아한 열 손가락 쓰임새의 정체는 키보드였나 보다. 새해를 맞이하여 회사에서 사용할 키보드를 고르고 있는 듯하다.



키보드는 그렇다 치고,

너 뭐 핑크색이랑 원수 졌니.



며칠이 지났을까.

와이프가 주문한 키보드의 배송이 완료되었다.





와이프에게 이런 키보드를 고객 앞에서 쓰면 민망하지 않냐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와이프는 정곡을 찔렸는지 사색이 되어 곧 죽어도 쓸 거라고, 이번에 절대 반품은 없다고 기세등등하게 못을 박는다.






그런데 그 못을 우리 집 방구석에 박아 놓은 듯하다.



일주일째 미동이 없는 키보드.

반품 없이 당근 할 계획인가 보다.



올해는 당근 매너온도 좀 그만 올라가야 할 텐데.



이미 고열로 쓰러지기 직전인데.




내친김에 판도라의 상자인 와이프 쿠팡 “찜 리스트”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본다. 그녀는 요즘 어떤 아이템에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을까.



스크롤을 내려 보니 탁상용 캘린더들에게 무더기로 "찜" 공격을 해놓았다.




키보드는 몰라도 캘린더는 인정이다.



중요한 일정을 잊지 않고자 메모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니까.



캘린더는 나도 두 개를 쓰고 있다. 하나는 개인 약속을 메모해 두는 캘린더, 또 하나는 금융, 청약일정 등 재테크 관련 일정을 메모해 두는 캘린더.



그렇기 때문에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캘린더를 구매하려는 와이프가 기특해 보인다. 2024년부터는 J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인가.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 와이프는 캘린더 본연의 기능과는 상관없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이건 글씨체가 맘에 안 들어.

이건 스티커가 없는 것 같아.

이건 여기 구석탱이에 있는 꽃 모양이 싫어.










"5 !"

"4 !"

"3 !"

"2 !"

"1 !"




"푸른 용의 해,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와이프와 11번째 함께 맞는 새해. 스물둘에 만났던 우리가 어느새 서른셋이 되었다.



11년이라는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나와는 다르게 와이프는 아직도 11년 전 그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옅었던 쌍꺼풀이 조금 진해졌다는 것. 아차차



"띵-"





몽글몽글한 감성에 스며들 시간을 주지 않는 택배 아저씨. 거의 매일 14층까지 와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세요.



와이프가 고심 끝에 고른 캘린더가 도착했나 보다. 어떤 캘린더를 골랐을까 궁금해 죽겠다. 목숨 걸고 포장지를 한 번 뜯어본다.



오 웬일. 이번엔 핑크색이 아니다.



그린 파스텔 톤의 테디베어 캘린더. 예쁜 거 잘 샀네. 거기에 아기자기한 스티커까지.




와이프에게도 캘린더 예쁜 거 잘 샀다고 칭찬의 카톡을 하나 남겨준다. 고르느라 고생했다고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자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포장지를 치우려는데 가만 보니 뭔가 이상하다. 어딘가 어색한 캘린더.



눈을 비비고 다시 캘린더를 꼼꼼히 살펴본다.










again 2023.








이야 새해 첫날부터 진짜.

Get Out.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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