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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Jan 29. 2024

#13 정말이지, 와이프 친구들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감당하기 힘든 그녀들


몇 달 전.





와이프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오기로 한 날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놀러 온다기보다는 밖에서 술 먹고 잠은 우리 집에서 잔다는 것.



방문 일주일 전부터 긴장된다.



한 번은 새벽 네시까지 신나게 떠들면서 놀다가 나는 잠 한숨 못 자고 출근한 적이 있었고 한 번은 누가 루비큐브를 가져와서 새벽 네시까지 술 한잔 안 먹고 루미큐브만 하더라.



그때 얘네 주부 도박단인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같은 단지에 사는 와이프 친구 부부 집도 있는데 왜 늘 우리 집에서 자는지 모르겠다. 그 남편은 이럴 때마다 자유고 나는 늘 독박육아 아닌가.



어쨌든, 나는 퇴근 후 집으로 향한다.



분명 친구들 온다고 하루 전에 열심히 청소하던 와이프인데. 집에 들어가 보니 급하게 나갔나 보다. 드라이기와 고데기가 그대로 꽂혀있고 몇 번을 갈아입었을지 짐작이 되는 옷들도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이럴 거면 청소를 왜 한 건지 모르겠다.

#시간낭비



여자 넷에 기빨릴 생각하니 벌써 아찔하다. 맨 정신으로 못 버티겠다. 나도 초밥을 시켜서 맥주를 하나 까본다.



치익- 꼴깍꼴깍

이 맛이다. 자유남편이란 이런 것일까. 몇 시간 안 남았다. 즐기자.



밤 10시가 되어도 와이프에게는 아직 연락이 없다.



잘됐다. 차라리 술을 많이 먹고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럼 들어와서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 테니까.



좋다.



이렇게 된 거 그녀들이 잠들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세팅해 놓자.








그녀들이 와서 바로 환복 후 잠들 수 있게끔 '옷마카세'를 준비해 본다. 잠옷에는 비누향 페브리즈도 뿌려둔다. 맘 같아선 수면제를 뿌려놓고 싶지만 그것은 법 테두리에 벗어나는 일이니까.



맞다,

이렇게 와이프 잠옷을 입혀놓으면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와이프 친구들은 와이프와 키도 다들 비슷하다. 그래서 와이프 잠옷을 입혀놓으면 뒷모습만 보면 누가 와이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조심하자.

저번에 설거지하고 있는 와이프가 예뻐 보여서 엉덩이 툭툭 치려다 와이프가 아닌 괴생물체인 것을 확인하고 간신히 1cm 앞에서 급제동에 성공한 적이 있다.




자, 잠옷 '옷마카세' 세팅은 끝냈으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들어오자마자 눕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거실에 폭신한 이불까지 세팅을 완료해 둔다. 제발 오자마자 씻지도 말고 그냥 누워라.



열두 시가 조금 넘었을까. 집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들이다. 인사를 나누며 그녀들의 눈상태를 확인해 본다.



풀려있다. 오예. 자라.



다행히 '옷마카세'는 흥행에 성공했다. 

오자마자 환복에 성공. 그런데 포근한 저 잠자리는 이상하게 변질이 되었다.



잠자리가 아닌 레슬링장이 된 것이다.



관전을 하니 꽤 흥미롭고 재밌다. 흰색 잠옷 내 와이프 이겨라. 5000원 건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고 참 중재해야지.

내 와이프의 뒷모습이 을용타처럼 늠름하다.

두 명을 무찔렀다.


아니다. 한 명은 부활했다. 좀비 같은 것.



그래도 다행히 한 명은 안치에 성공했다. 아니 취침에 성공했다.



와이프와 10년째 만나다 보니 이 친구들과도 10년 지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너무 편하게 생각한다.



뒤에 안치된 저 친구도 다리를 너무 대짜로 뻗고 자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편해도 여자애가 저러고 자는 게 조금 안쓰럽기도 해서 흰색 천을 덮어줬다. 머리끝까지.



몇 분뒤 아까 부활했던 좀비도 사냥에 성공했다. 꿈속에서 수컷 강아지가 되어서 산책하고 있나 보다. 신나게 영역표시 하고 있네.



그 사이 아까 먼저 뻗은 친구의 잠자리 방향이 90도 회전되어 있다. 미래의 너의 남편도 꽤나 고생 좀 하겠구나..




또 다른 친구는 그나마 점잖다. 나와 대화가 통한다.



늦은 새벽시간,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친구는 남자를 볼 때 학벌과 직업을 조금 보는 편인데 이유를 들어보니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를 보기 위함이라고 한다.



자만추로 스며들어서 연애를 하면 상관없겠지만 소개팅의 경우에는 알아갈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인생을 살아오며 '작은 성공'을 얼마나 성취해 봤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속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입장 바꿔 내가 지금 결혼할 상대를 소개받는다고 하면 따지지 않을 자신이 있겠는가?



그렇게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대화가 종료되었다.




다음 날 아침.



3시에 잤으면서 뭐 이리들 빨리 일어나는지. 아침 7시부터 시끌시끌하다. 누구는 속이 안 좋다. 누구는 태평소국밥이 먹고 싶다. 가지각색



안방에서 자는데 태평소국밥 매운 갈비찜 이야기만 7번은 들은 것 같다. 나도 사실 그때부터 깨어 있었지만 10시까지 안방 밖에서 절대 나가지 않았다.



나와 함께 고생한 동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리 집 화장실. 여자 넷이 화장실 쓰는데 두 시간 동안 화장실이 빈 적이 없다.



태평소국밥을 노래 부르던 친구가 배달로 다른 국밥을 주문한다. 해장을 시작한 것이다.



해장 도중 국밥 국물을 이불에 다 쏟는다.

엄마 보고 싶다.




자. 해장했으니 이제 다들 집 가야지? 제발



다행히 두 친구가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씻고 준비하라며 등 떠민다. 그렇게 한 친구가 드디어 씻기 시작한다.



모든 친구들이 다 씻고 이제 내가 씻을 차례다. 와이프가 내 얼굴을 보더니 "여보 얼른 가서 좀 씻어 상태가 이상하다" 한다.



옆에서 듣던 친구가 와이프에게 한마디 한다.

"씻으면 뭐 좀 달라져? 남자라 화장하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이미 씻고 나온  친구에게 한마디 한다.



"xx아 너 언제 씻게?"

(씻으러 피신)




씻고 나오니 또 다른 친구는 그새 또 송장이 되어있다.



아무리 내가 편해도 바지에 손은 왜 넣고 자는 건데. 우리 집에서 왜 꼬카인 하는데.



그렇게 와이프 친구들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



다들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젯밤에 봤던 친구들은 온데간데없다.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성격도 고상해지나 보다. 참 이해할 수 없다.



와이프 친구들이 떠나고, 와이프도 오늘 출근을 했다. 집에 남겨진 것은 나와 이불빨래들 뿐이다.



돈 열심히 벌어서 앞으로는 호텔 같은 거 잡아줘야겠다. 당분간 혼자 있고 싶다.



정말이지 와이프 친구들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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