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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Jan 15. 2024

#11 남편 비자금 특검

남편의 완벽한 비자금 전략


길고 긴 지루한 싸움.



몇 해 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 것이 있다. 바로 "통상임금소송"



간략하게 설명해 보면 원래는 받았어야 하는 임금인데 그동안 받지 못했기에 이 것을 소급해 일시 지불하라는 소송이다.



소송한 지 벌써 3년은 된 듯하다.



잊고 있었는데 이번 10월에 결과가 확정된다는 찌라시가 있다. 소송 원금과 세후 실지급 금액까지 구체적으로 항간에 떠돌게 된다.



진짜 승소하려나.






10월 어느 날.



띠링-



"김북꿈님의 계좌로 x,xxx,xxx원이 입금되었습니다"



?



우리가 승소했다고 한다. 회사로부터 소송 원금과 이자가 입금이 된 것이다.



갑자기 천만원에 가까운 돈이 입금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돈인데.



와이프도 내가 소송한 것은 알고 있는 상태다. 소송 금액만 정확하게 모를 뿐.

어쨌든 이 반가운 소식을 와이프에게 전해준다.



한참 동안 카톡이 없다.



얘 분명 카톡 미리 보기로 봐놓고 지금 뭐 사야 할지 온라인을 떠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회사에서 다리 꼬고 발을 까딱까딱 하고 있겠지.



와이프에게 답이 오지 않는 사이 나 역시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다음 달이면 결혼기념일에.. 그다음 달은 크리스마스.. 그리고 그다음 달은 11주년.. 그다음 달은 와이프 생일'



무슨 기념일들이 이렇게 줄줄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동안 결혼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언제나 내 지갑사정은 보릿고개였던 기억이 난다.



가벼운 지갑 사정에,

나는 위험한 결정을 하게 된다.









횡령.

조금 더 고급진 단어로는 삥땅.



그렇게 결혼 후 첫 삥땅을 결심하게 된다.



'그래 내가 이 돈으로 허튼짓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 와이프 선물 사는데 들어가는 돈이잖아. 다 좋은 곳에 쓰일 돈이라고.'







그렇게 나는 이번에 받은 금액  정확히 30 원을 횡령한다. 그리고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와이프 통장으로 10 단위까지 이체를 한다.






완벽 범죄.





그리고 그날 밤.






참 피곤했던 하루.



일찍 잠에 들기 위해 방에 불을 다 끄고 와이프와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우리 부부는 잠들기 전에 약 1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드는데, 오늘의 주제는 바로 오늘 입금된 '통상임금'이다.



내가 먼저 운을 띄워본다.



"여보 그래도 이렇게 보너스처럼 돈 받아서 참 좋다. 기대도 안 했던 돈인데"



어두컴컴한 방 안.

와이프의 초딩같은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그러게.. 그런데 여보 이번에는 조금 이상하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지는 것을 감지한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대답을 한다. 자칫 잘못해서 침이라도 삼켰다가는 세무조사가 들어올 것이 뻔했기에 최대한 침착해야 한다.



"뭐가?"



"아니.. 평소에 성과급 들어오면 뒤에 자투리 금액은 여보가 용돈 쓴다 하고 보내면서 이번에는 1원 단위까지 보낸 게 조금 이상하네.."



귀엽고 초딩같던 와이프의 목소리는 점점 전설의 고향 구미호 목소리로 변해간다.



"솔직하게 말해봐. 얼마 삥땅 쳤어?"



이럴 땐 맞불을 놔야 한다.



"삥땅은 무슨 삥땅이야;;; 내가 그동안 삥땅 치는 거 봤어? 못 믿겠으면 내 통장 입금내역 봐보던가"



"응 그래 보여줘 봐"



쥐도 구석에 몰리면 문다는데, 나는 운다.



아 이게 아닌데. 와이프도 똑같이 맞불을 놓다니.

이제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만만치 않은 이 상황에 웃음만 난다. 실소.

그러나 웃는 순간 끝이다.

소리 내면 안 된다. 



그래도 올라가는 입꼬리는 막을 수 없다.

어차피 어두컴컴해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내 입으로 구수하고 촉촉한 와이프의 손바닥이 올라온다.










"내가  이럴  알았다."




결국 나는 와이프의 촉감 수사법이라는 덫에 걸려 자수하게 되었고 내 계좌는 불법 비자금 형성이라는 죄목으로 현재까지 계좌동결 상태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아니 무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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