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꿈이네 Jan 08. 2024

#10 킹더랜드

킹받네.


지난해 7월.




어제부터 감기몸살+장염까지 제대로 왔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나는 개 보다 못한가 보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형견이었는데.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오늘은 또 중요한 일정이 있다. 지방 아파트 사전점검이 있는 날. 



출발 전, 편의점에서 약을 종류별로 사서 풀 도핑을 한다.


.

.

.


그렇게 하루를 편의점 약으로 잘 버텼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니 와이프가 핑크색 앞치마를 입고 고상하게 죽을 담고 있다.



주방 한 구석에는 본죽 포장지가 굴러다닌다. 



입 맛이 없다. 

대충 몇 숟가락 먹고 방으로 들어간다.



와이프는 불금인데, 혹시나 나를 신경 쓰느라 불금을 즐기지 못할까 봐 미리 이야기한다.



"여보는 불금이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거실에서 티비 크게 틀어놓고 놀아"



침대와 온전히 한 몸이 되어 휴식을 취하니 금세 잠에 빠져든다.



z

Z





그런데,

갑자기 거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꺄아--------- 멋있다~~~!"




잠결이지만 누구한테 멋있다 했는지는 알 것 같다.



와이프가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킹더랜드" 속 주인공 준호.




아파서 질투할 힘도 없다. 

그래 오늘은 그놈이랑 실컷 놀다 들어오거라.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와이프가 슬금슬금 침실로 들어온다. 살짝 잠에서 깨긴 했지만 잠든 척을 유지한다. 



이내 옆에 눕더니, 갑자기 내 손을 깍지 끼고 쓰다듬기 시작한다. 



매번 기운이 넘치는 남편인데, 아파서 골골대는 모습을 보니 와이프도 안쓰러운가 보다.



그렇게 우리 둘은 손을 꼭 깍지 끼고 같이 잠에 들게 된다.





아침이 밝았고, 여전히 나는 기운이 없다. 



침대에서 계속 휴식을 취하는 나를 뒤로하고 와이프는 거실로 나가 또 티비를 시청한다. 



대충 소리를 들어보니 이번에는 하트시그널 4 인 것 같다. 그래. 티비를 보는 게 더 낫다. 소파에서 다리 꼬고 발을 까딱까딱하는 것보다는. 



잠시 후




"꺄아!!!!! 민규 너무 멋있다~~~~"



어젯밤 들었던 비명소리가 또 들린다. 어제는 잠결에 들었지만 오늘은 생생하게 들었다. 





밖에 나가서 와이프에게 한마디 한다.

어젯밤 일이 생각났기 때문.




"그렇게 다른 사람들 멋있다 해도 남편이 좋긴 한가보지? 어제 잠자기 전에 손에 깍지는 왜 끼고 날 쓰다듬었던 거야?




와이프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그러면서 수줍은 말투로 대답한다.







"그거 준호라고 생각하고 손 잡은 건데.."












나가. 


겟아웃.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이전 09화 #9 와이프의 다이어트 식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