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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Jan 01. 2024

#9 와이프의 다이어트 식품

치킨을 마다한다고?


와이프는 베트남에 다녀온 뒤 몸무게 유지를 위해 또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지금의 허벅지는 그동안 본인이 알던 허벅지가 아니라며 맘에 쏙 든다고. 그렇게 와이프는 평일 저녁 단식을 선언한다.




와이프의 저녁 단식 2일 차.



와이프를 데리고 퇴근하는 길.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한다.



"저녁 단식투쟁은 끝났어?"

괜히 물어봤다.



와이프가 갑자기 정신 차려야지 하며 고사리 주먹으로 본인 머리를 내려친다. 내 머리를 내려칠 때는 헐크 주먹이었는데 본인 머리 내려칠 때는 고사리 주먹이네.



와이프가 조금 예민해진 상태인가 보다.



갑자기 우리 집 재테크에 관련해 당사자인 나에게 악성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재테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서로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재테크에 관한 서로의 가치관 차이만 확인하게 되었다. 분명 이렇게까지 다툴 문제가 아닌데 감정싸움까지 번지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도 조금 서럽다. 다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재테크인데 와이프가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로 집에 도착한다.

와이프와 나는 서로 한마디도 섞지 않은 채 씻고 나와 각자의 위치로 흩어진다.



와이프는 티비 앞 소파.

나는 작은방.



이렇게 보니 서열 확실하네. 내가 아래는 맞구나 방구석으로 피신하는 거 보니.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나.



밖에 나가 와이프 얼굴을 보니 화가 좀 누그러지는 것 같다. 화장기 없이 머리 묶고 안경 쓰고 있는 저 초딩같은 모습.



에휴. 내가 얘랑 싸워서 뭐 하겠나.

조용히 지코바 치킨을 주문한다.



치킨이 도착했지만 와이프는 자존심 때문인지 다이어트 때문인지 치킨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면서 주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오더니 조용히 옆에서 먹는다.



뭘 먹나 슬쩍 옆을 보니 김을 먹고 있다. 치킨을 앞에 두고 김을 먹다니 자존심 한번 대단하군.



치킨을 대충 마무리하고 정리하는데 장렬하게 전사한 김들이 눈에 들어온다.





와 혼자서 김 다섯 봉을 까네.



달인 김오봉 선생.





다음날.



우리는 전 날의 다툼이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다.라고 하기엔 와이프가 나에게 말을 안 건다.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누워 다리 꼬고 발을 까딱까딱. 앗 저 자세는.



휴대폰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만 들어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시에(SIE) 라이브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손을 덜덜덜 떤다. 콧구멍도 벌렁벌렁, 호흡도 불안정해지고, 얼굴도 창백하다.



그렇게 이틀 만에 나에게 말을 건다.



“ㅇ 여보, 기ㅁ 김!”



얘 무슨 김단현상 왔나.



"오늘은 딱 일 봉 만이야. 하나만 먹어야 돼."

카리스마 있는 말투로 와이프를 제압한다.



그녀의 손이 재빠르다. 한 장을 집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두 장씩 집어 먹는다. 그러다 보니 금방 바닥을 드러낸 김.



어느새 돗대다.



마지막 남은 김 한 장은 몇 분에 걸쳐 아껴먹기 시작한다.




김 씨 아줌마.

너 그 옆에 묻은 김은 언제 먹을 생각인 건데.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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