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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Feb 14. 2024

1호선의 향기 #2-2

아파트 잔금 친 다음 날, 하락장이 시작되었다 2-2



어느 새벽녘 대전역. 



"타는 곳 4번에 정차 중인 열차는 우리 역에서 05시 55분에 출발하는 서울 가는 KTX 116 열차입니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자고 있는 동안 누가 망치로 내려친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몸은 바삐 움직이지만 정신은 아직 집에 머물러 있다. 



대전-서울 장거리 출퇴근을 한지도 벌써 2년.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 대전에서 서울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본인이 직접 해보지 않았을 때나 하는 소리다. 



심지어 나는 서울역에서 내려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1호선을 타고 노원구까지 30분을 더 달려가야 하는 상황.



결혼하면서 의정부에 있던 전세 자취방을 뺐다. 그 전세금을 신혼집 전세금에 보태기 위해서. 내 몸만 조금 힘들면 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결혼했는데 주말부부를 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와이프가 주말부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농담하는데 참 안타깝다. 그렇게 따지면 와이프는 전생에 나라를 구할 '뻔'했던 것이니까.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밀정이라도 되었던 건가.



잠시 독백에 빠져있는 사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열차 칸에 도착한다.



길고 긴 KTX의 제일 끝 칸. 18호차.

장거리 출퇴근러들을 위한 공간. 자유석.



졸려서 처진 눈과는 상반되게 다리는 바삐 움직이고 있다. '나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려 하는데, 그 생각이 무색할 만큼 자유석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하다.



느낌 가는 대로 아무 자리에나 앉는다. 좌석을 고를 이유가 없다. 어차피 오송, 천안아산역에서 자리는 만석이 될 테니까.



열차 출발시간이 다 되자 승강문이 퉁명스럽게도 닫힌다. 



삐익- 툭. 


읭~읭~읭~읭-!



동력장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제일 끝 칸이라 그런지 열차 엔진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바쁜 하루를 알리는 새벽 첫 고속열차가 구름 위를 미끄러지듯 대전역을 출발한다. 



"잠시 후 우리 열차는 오송, 오송역에 도..착..하..ㅂ.니ㅣ..다.."


.

.

.


"잠시 후 우리 열차의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때는 두고 가시는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안내방송과 함께 국악풍의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18 호칸 자유석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들 뒷머리는 눌려있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새벽녘 첫 열차에서 05:55에 동반 기절을 하고 있다.



'음- 서울의 향기.'

탁하지만 매력 있는 이 공기. 



서울역의 공기를 느껴볼 틈도 잠시. 

1호선으로 재빨리 환승을 하러 간다. 




살짝 눅눅하고 퀴퀴한 1호선만의 향기를 수면유도제 삼아 다시 한번 기절을 해본다. 그렇게 30분을 더 달려 회사에 도착한다. 



몸은 이미 지쳐있지만 내 업무는 이제서야 시작이다.





회사에 도착해 200원짜리 자판기 믹스커피를 마신다. 



자판기 앞은 늘 시끌벅적하다. 우리 회사의 모든 루머와 열애설, 여론전이 펼쳐지는 곳. 회사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런 곳. 



최근 들어 자판기 앞에서 많이 나오는 주제는 바로 부동산이다. 젊은 직원, 나이 든 직원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부동산 이야기다. 



같은 대학교 출신의 후배 한 명이 있는데, 몇 년 전 서울로 취업하면서 자취를 하기 위해 아파트를 매매했다고 한다. 



서울 노원구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미*, 미*, 삼* 아파트. 그 당시 부모님의 권유와 약간의 도움으로 3억대에 매수했다고 하는데 그 집이 지금 7억이 넘는다. 



말도 안 된다. 



후배가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같은 과에서 먼저 취업한 선배인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입장이 조금 바뀐 것 같다. 분명 내가 직급도 더 높은 선배인데, 어딘가 모르게 위축되고 불편하다.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 한 명도 최근에 내 집마련을 하게 되었다. 2020년 2월에 결혼하면서 전세로 시작했는데 집도 좁고 집값 오르는 것을 지켜만 보자니 안 될 것 같아서 추격매수에 동참했다고 한다. 이 형이 매매한 아파트는 서울 청량리 인근 30평대 6억 이하 구축 아파트.



"형 대출도 잘 안 나올 텐데 어떻게 샀어요?"



과도한 대출규제로 대출도 잘 안 나올 텐데 어떻게 샀냐고 물어보니,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을 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금자리론을 이용해 집값의 70%를 대출받고, 나머지 금액은 부모님 찬스를 조금 쓰겠다고. (당시 보금자리론은 소득 조건이 충족되면 6억 이하 아파트에 한해 LTV 60%, 생애 최초일 경우 7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회사에서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다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나만 신나서 잽싸게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 해서 좋을 것 없다는 정보는 다들 어디서 들은 건지. 왜 나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아무도 해주지 않은 건지 원망스럽기만 하다. 혼인신고만 안 했어도 대출 더 당겨서 '둔산동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 



대상 없는 원망은 잠시 접어두고 동기 형에게 진짜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그래서 형이 집 사고 나서 집값은 좀 올랐어요?"



동기 형이 별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투로 대답한다. 



경상북도 김천 출신의 동기 형. 

샤프한 얼굴과는 다르게 말투는 참 촌스럽다.



"부욱~꿈아~ 쬐끔 오르긴 했데이. 계약하고 아직 잔금 치르기 전인데 큰 거 한 장은 올랐데이~"



'오. 서울치고 큰 거 한 장이면 많이 오른 것도 아니네. 우리 집은 대전인데도 벌써 큰 거 네 장. 4000만 원이나 올랐는데'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우리 집은 큰 거 4장 올랐다고 무심하게 자랑하고 싶지만 꾹 참아본다. 



"그래도 서울인데 생각보다 많이 안 올랐네요??"



"부욱~꿈아~ 그래도 나는 이 정도면 만족한데이. 계약하고 두 달 만에 1억이면 많이 오른 거 아이가!"



뭐?



1.. 1억? 큰 거 한 장이 1억을 이야기하는 거였어?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다. 



지방 촌놈 둘이 같은 날 입사해 서울로 발령받았지만 성적은 늘 내가 앞섰다. 샤프한 얼굴과는 다르게 어딘가 늘 허술한 형이었다. 



길 가다 새똥을 맞기도 하고, 근무하다 개똥을 밟고 쭉 미끄러지기도 하고.. 업무 중 자잘한 실수도 늘 있었던 그런 챙겨주고 싶은 형. 



이랬던 형에게 이제는 '자산'으로 뒤쳐지고 있는 것 같다. 분명 내 집값도 올랐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질투라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이 자본주의 게임 안에서 

누가 누가 돈을 더 잘 버는지 

'경쟁'을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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