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서 저녁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곤 합니다. 그런데 산책을 하다 보면 잔디보다는 '잡초'를 잘 기른 집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잡초를 잘 기른 집을 만나게 되면 '잡초방제학'을 전공하던 선배가 생각납니다. 그 선배에게 듣기로, 잡초방제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잡초를 키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잡초가 있어야 연구하고 있는 방법이 실제로 잡초를 방제하는데 효과적인지를 시험할 수 있으니, 잡초를 키우는 것이 연구에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문외한인 제 생각과는 다르게 잡초를 키우는 것이 매우 어려워 대부분의 연구실이 잡초를 키우는데 실패를 한다고 합니다. 상당히 의외의 얘기였습니다. 잡초는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이 잡초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잡초를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선배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의 말에 의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연구실이 잡초를 열심히 키워서 실패한다고 합니다. 열심히 시간에 맞추어 물도 주고, 햇빛도 비추어 주고 하면 잡초는 잘 자라지 않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배가 공부했던 실험실이 잡초를 잘 키우는 방법은 크게 신경을 안 쓰고 '대강' 키우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물도 줬다가 말았다가 제 멋대로 주고, 관심을 많이 안 주고 키우면 잡초가 잘 자란다고 했습니다.
그 설명을 들을 때는 참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우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제 글에서 종종 설명드렸듯이 종간의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좀 더 평범한 말로 설명하면 주어진 환경에서 다른 종들보다 더 잘 자란다는 것이고, 잡초라는 식물종들이 자연에서 다른 일반 식용 식물종들보다 더 잘 자라는 이유는 자연적인 환경이 불규칙적이고 식물에게 비호의적이기 때문입니다. 야생에서는 비도 띄엄띄엄 오고, 햇빛도 주기적으로 비추지 않으며 날씨도 좋았다가 궂었다가 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환경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환경에서는 잡초가 더 잘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식용으로 키우는 많은 식물들은 물도 주고 비료도 주고, 잡초도 속아주는 정말 이상적인 상태에서만 이러한 잡초들보다 더 잘 자라는 식물인 것입니다. (오해하실까 봐 첨언하면, 원래의 식용작물들은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식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수확을 위해서 교배와 유전자 조작등을 거치면서 그러한 환경을 제공해 주면 훨씬 더 많은 수확물을 주는 식물들로 바뀌었을 겁니다.) 그러기에 농부님들이 그렇게 뙤약볕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으시는 것이겠죠.
이러한 잡초의 생태를 좀 더 전문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이 잡초라고 불리는 식물들은 식용작물에 비해서 견딜 수 있는 환경의 범위가 넓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선구종들(pioneer species)이 이런 행태를 보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극심한 환경변화를 주게 되면,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들이 잘 견딜 수 없게 되고 이러한 잡초들만 잘 자라게 되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족이긴 하지만, 이러한 극심한 환경변화가 현재의 지구 기후 변화(global climate change; 지구온난화가 아님에 유의해 주세요)의 결과이고 이 때문에 이러한 기후 변화가 식량생산에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음을 제 이전글(산불과 엘리뇨)을 읽으신 독자분들은 이미 짐작하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잡초'라는 단어의 정의를 보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잡초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인간에 의해 재배되지 않고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잡다한 풀로서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식물이다 (위키백과)." 여기서 잡초에게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이란 말을 붙이는 것은 사실 이들에게 미안한 표현이긴 합니다. 인간이 식용으로 사용하는 일 년생 초본 식물은 전체 초본류의 1%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 잡초가 생태적인 관점에서는 농경생활에 이용되는 식물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까지 온갖 천대를 받고 뽑히고 태워지고, 화생방 테러를 당해왔을 것을 생각하면, 잡초라 불리는 식물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듭니다. 세상의 많은 곳에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며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하는 많은 '잡초'들에게 감사를 하며 이글을 마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