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사랑 Mar 15. 2024

(15) 자랑하고 싶지만, 자랑 못하는 아빠의 마음

신개념 팔불출

제가 학력고사를 보고 대학에 들어갈 때, 수험생이 99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4년제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수는 15만 명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게다가 저희 때는 지금처럼 여러 학교, 여러 학과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대학의 한 전공만을 지원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들어가는 사람도 작았고 또 소위 말하는 인서울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도 적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제게 해주신 말씀이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주위의 아시는 분들이 아이가 고1에는 당신들 자녀가 서울대, 연대, 고대쯤을 갈 것이라고 얘기를 하다가, 고2 때는 좋은 학교를 갈 정도는 된다고 얘기를 하고 고3이 되면 아이의 학교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아무 말도 안 한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왠지 제 자랑을 꽤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근거없는 의심은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자식 공부 자랑을 안 하면서 살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저희가 자랑을 하게 되면 아이들에 대한 주위의 기대가 높아져서 아이가 칭찬을 못 받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업적 자체가 아이의 노력의 결과로 인정 받아야 할 텐데, 아빠와 엄마의 말로 인해 아이의 칭찬을 빼앗을 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었습니다. 특히나 주위에서 들리는 말은 아빠가 교수니 아이들을 얼마나 공부를 많이 시키겠냐였습니다. 사실 전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학원한번 보낸적도 없고, 보통 빨리 들어가서 자라거나, 아빠랑 놀자거나, 학교 땡땡이치고 여행 가자는 말만 하는 아빠였는데도 말이죠. 저희 부부가 자랑한 것들은 아이가 착하고, 열심히 자기일 하고, 엄마아빠 말을 잘 듣는 그런 밖에서 쉽게 보이는 것들만 자랑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아이 앞에서 자랑을 하면 아이가 더 착하고, 열심히, 그리고 말을 잘 듣는 아이로 크지 않을까 - 일종의 가스라이팅일까요? -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 제가 아이를 교육한 방법을 잠시 말씀드리면 (이 문단을 그냥 넘기셔도 이 글을 읽으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 아이와의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고, 또 제가 아이에게 가진 애정으로 인해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부담을 줄 저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이에게 가능하면 공부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지 어떤 마음 가짐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지, 각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방향만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으로 말이죠. 대신 두 가지 규칙을 지켰습니다. 첫째는 아이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얘기해 주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자라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그 선택을 할 때, 공부를 잘한 경우 선택할 폭이 넓어진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가능하면 선택을 기다리는 것보다 선택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더 편하다는 말과 함께요. 다시 말해서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둘째는 잘 놀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저의 믿음은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입니다. 자기가 할 일을 다 한 다음에는, 텔레비전을 보던 놀던 자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얼마나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제약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만화 영화를 1시간을 본다던지, 친구네 집에서 1박 2일을 놀다 온다).




아이들은 청개구리 기질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행히도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아이들이 우등상 정도는 받을 정도로 공부를 곧잘 하고, 자신의 용돈은 열심히 벌어서 잘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축구 심판을 하고 있는 큰아이는 작년 여름 하루에 10-25킬로를 뛸 정도로 열심히 심판을 했습니다. 축구 심판을 해서 자기가 사고 싶은 것도 사고, 그리고 건강도 유지하고 스트레스도 푸는 것 같아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작년에는 U15 전국 선수권 대회의 개막전 대회의 심판도 맡고, 앨버타주의 올해의 젊은 심판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성적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축구 심판도 잘하는 아이가 참 자랑스럽고,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랑을 하고 다니면 아이가 시샘을 받을까 봐, 또 제가 할지 모르는 말실수에 혹시라도 아이에게 피해가 될까 봐, 오늘도 팔불출 아빠는 속에 있는 자랑을 어떻게 조금 해볼까 고민을 합니다. 젊어서는 남의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제 실수가 아이에게 누를 끼칠까 봐 조심하게 됩니다. 이게 늙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의 마음이란 게 이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 시샘이란 감정은 기본적으로 장착된 (default) 기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도 늘 최우등상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만, 그것보다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PEO International Scholarship의 장학생으로 추천을 받았습니다. 이 장학금은 고등학교에서 한명의 학생을 추천하고, 그렇게 추천 받은 학생들이 각 챕터 안에서 경쟁을 하고 (서류와 인터뷰), 한 챕터에서는 한 학생만을 장학생으로 추천합니다. 이렇게 추천된 학생들을 캐나다 본부에서 다시 검토하고 통과된 학생들만 국제 경쟁 (international competition)에 올려지게 됩니다. 현재 제 아이는 국제 경쟁까지 올라가 있고, 내달말에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간단히 설명을 보시면 알겠지만 단지 한두 명만 받는 아주 희소한 장학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많은 학생들이 쉽게 다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장학금도 아닙니다. 이 소식을 듣고 기뻤던 저는 당연히 부모님께 자랑을 했고, 제 어머니는 친한 친구에게 자랑을 하셨더군요. 그분의 손녀도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는 비슷한 또래였는데, 그 친구분이 제 어머니에게 뉴욕에서는 누구나 받는 별것 아닌 장학금을 가지고 자랑을 한다고 타박을 하셔서 어머니를 진정시켜 드리느라 꽤 애를 먹었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너무나 주위에 자랑을 하고 싶지만, 이런 걸 보면서 다시 한번 제 혀를 깨물고 참습니다. 이웃 중에서는 겨우 제 친하게 지내는 제 사범님 한분께만 자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은 아이의 일로 자랑을 하고 싶으실 때, 어떻게 하시나요? 여러분의 의견이 듣고 싶은 팔불출 아빠 이만 줄입니다.



* 여러분의 좋아요와 댓글이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자신이 겪으신 비슷한 일이 있으시다면 경험을 나누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회고 14) 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