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법
이 작품을 보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좀 냉혹하다는 생각이었다. 작품이 전체적으로 차갑고 따뜻한 빛을 비추는 것은 뜨는 해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마저도 너무 작아 풍경을 다 비추지 못했다. 그래서 난 이때까지 이 작품이 얼어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 작품 스스로 녹을 수 없는, 딱딱하게 얼어 있는 작품.
<인상, 해돋이>는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다. 인상주의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와 질감을 다룬 작품들을 말하는 개념인데, 클로드 모네의 다른 작품 <건초더미, 연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건초더미 연작은 늦여름의 건초더미, 아침의 건초더미, 건초더미를 표현한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인상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모네의 작품들이 얼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초더미만 봐도 그렇듯 <수련, 연작> <양산을 든 여인> 등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 많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모네의 색감이 살아났지만 이 작품만 유독 얼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왜 얼어있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는데 자세히 보면 얼어있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차가워 보이는 면도 있었지만 해가 뜨고 있는 시점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는 이 작품이 냉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강가에 배를 타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한 명은 앉아 있고, 한 명은 일어서 있었다. 그중 일어서 있는 사람을 보면 이 해를 쳐다보면서 배를 움직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 사람은 일출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 자기 세상조차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해를 왜 쳐다보고 있을까? 그 답은 해 위 하늘에 있었다. 하늘이 이미 변하고 있었다. 차가운 세상 속에 붉은색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넓게,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서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내가 느끼기로는 <인상, 해돋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어쩌면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을 비추는 것은 조금밖에 되지 않는데, 벌써 하늘은 변하고 있는 이 모습. 사람들은 물만 보고 아직 해가 덜 떴다며, 투덜댈 수도 있다. 신에게 이 차가운 세상 속에서 언제 벗어나게 해 주실 거냐며 화를 내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바닥을 보지 않고 하늘을 봤다. 그리고 하늘 속에는 이제 아침이 될 거라는 예고가 있었다. 이제 곧 냉혹한 세계가 끝나고 희망찬 곳이 될 거라는 그 예고.
그 예고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어나서 하늘을 보는 게 다였다. 이 차가움 속에서 나오는 빛을 보는 것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햇살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과 이 그림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 그림은 사람들이 못 보고 지나치든, 보든 계속 피어오른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내가 보지 못하면 사라져 버린다. 해가 영원히 뜨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아버리면 정말 해는 다시 뜨지 않는다는 현실. 현실의 해는 알아서 떠주지 않는다.
현실의 해도 이 그림처럼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그림의 해도 조금만 있으면 세상을 비출 것이고 현실의 해도 마찬가지다. 빛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세계 같아도, 해는 언젠가 뜬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이 그림처럼.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너의 상황처럼 언젠가 너무 어두워져도 언젠가 해는 뜬다. 우리는 그걸 또 너무 쉽게 볼 수 있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